파시스트 독재에 가장 적극적으로 대항했던 마지막 세대 민주주의자 작가들 가운데 하나로, 군부의 박해, 투옥, 고문을 당한 끝에 에스파냐와 미국으로 망명을 떠났다. 그 후 두 개의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가 되고, 여러 학술·문학상을 받았다. 다수의 문학작품과 논저를 출간하고, 여러 잡지와 심포지엄을 주도하면서 국제 에스파냐·라틴아메리카학 분야에서 걸출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는 1989년 파라과이에 쿠데타가 발발했다는 소식을 들은 뒤, 캘리포니아 대학교 교수직을 사임함으로써 자신의 학문적 입지, 경제적 풍요, 직업적 안정성을 포기하고 조국 파라과이로 돌아간다. 파라과이에서 하원의원, 상원의원, 교육부 고문을 역임하고 1991년에 노르떼 대학교를 설립한다. 또한, 잡지 <끄리떼리오>와 노래운동 <파라과이 신시가> 세대의 주요 인물로서 1970년대부터 파라과이의 현대시와 연극의 지형을 바꾸어 오고 있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후안 마누엘 마르꼬스는 파라과이 사회에 널리 유포된 비열함, 정치가들의 파렴치한 태도, 그들을 옹호하고 도와주는 지적인 용렬함에 맞서고 있다.
파시스트 독재에 가장 적극적으로 대항했던 마지막 세대 민주주의자 작가들 가운데 하나로, 군부의 박해, 투옥, 고문을 당한 끝에 에스파냐와 미국으로 망명을 떠났다. 그 후 두 개의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가 되고, 여러 학술·문학상을 받았다. 다수의 문학작품과 논저를 출간하고, 여러 잡지와 심포지엄을 주도하면서 국제 에스파냐·라틴아메리카학 분야에서 걸출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는 1989년 파라과이에 쿠데타가 발발했다는 소식을 들은 뒤, 캘리포니아 대학교 교수직을 사임함으로써 자신의 학문적 입지, 경제적 풍요, 직업적 안정성을 포기하고 조국 파라과이로 돌아간다. 파라과이에서 하원의원, 상원의원, 교육부 고문을 역임하고 1991년에 노르떼 대학교를 설립한다. 또한, 잡지 <끄리떼리오>와 노래운동 <파라과이 신시가> 세대의 주요 인물로서 1970년대부터 파라과이의 현대시와 연극의 지형을 바꾸어 오고 있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후안 마누엘 마르꼬스는 파라과이 사회에 널리 유포된 비열함, 정치가들의 파렴치한 태도, 그들을 옹호하고 도와주는 지적인 용렬함에 맞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