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유학자들, 특히 실학자들은 동물에 관해 기록들을 많이 남겼다. 이들은 산과 바다, 초목과 산천, 곤충과 물고기, 동물과 사람에 관한 기록을 통해 당대의 사회상을 꼬집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동물 세계는 인간 세계의 축소판이자 척도라 할 수 있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들은 자신의 관찰대로 세계를 해석하려는 경향이 강하였다. 이덕무와 이익 등 조선의 유학자들이 온갖 짐승과 날짐승 심지어 벌레까지 관찰했다는 사실은 굉장히 놀랍다. 파리 한 마리가 날아다니는 것을 보면서 파리의 드나듦과 쓰임새를 적고야 만다.
『유학자의 동물원』은 조선의 선비들이 남긴 동물 관찰기를 토대로, 유학으로 인간세상의 규율을 정하려 했던 조선 유학자의 세계관을 다루고 있다. 책 속에는 20세기식 동물원에서는 볼 수 없는 아주 기이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인간보다 더 인간적으로 그려지는 동물의 이야기가 상당하다. 유학자들은 소박하고 다소 비과학적인 관찰을 통해 인간의 본성과 습성이라는 거대한 문제를 고민했다. 유학자들은 음풍농월하며 속세의 일과 거리를 두려 하지 않았다. 성인 군자가 인간의 모범이라 여겼지만, 인간도 하나의 벌레(짐승)에 불과하다 생각했다. 그러한 유학의 세계관이 바라보는 동물의 세계란 무엇일까?
동물들을 관찰하면서, 실제로는 유학자들이 인간의 본성과 습성에 대해 사고하였음을 이 책의 저자는 말하고 있다. 저자 최지원은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문화학과에서 조선 유학자들의 동물 관찰기를 주제로 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동물 다큐멘터리와 기록물을 즐겨보면서 동물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 저자는 먼저 동물 관찰기를 쓴 유학자들의 동물관을 보여준 후, 이를 현대 과학의 성과와 자주 비교/분석한다. 미국에서 간행되는 영어판 학술지 《Chinese Science》에 유학과 과학을 비유/비교하는 논문들이 가끔 나오지만, 책으로서는 저자의 시도가 최초일 것이다.
Contents
서문 벌레와 나
1부 유학자, 동물원을 가다
1. 학을 춤추게 하는 법: 동물, 마음의 노예
2. 벌레, 인간의 조상: 유학자의 만물친족설
3. 승냥이와 모기의 밥: 유학자들의 육식
4. 자연은 없다: 유학자의 자연관
2부 너와 나를 먹여 살리는 동물원의 정치학
1. 고양이의 도둑질: 영혼의 빈익빈부익부
2. 눈치 보는 말똥구리: 인간과 동물의 눈치 게임
3. 꿀벌의 복종: 너는 나의 일벌
4. 비둘기, 권위를 말하다: 넌 내 친구가 아니야
3부 생명의 억하심정
1. 파리의 억하심정: 동물의 앙갚음
2. 소와 말의 억하심정: 내 목숨을 사고파는 동물원의 경제
3. 순 임금과 제비새끼의 억하심정: 자식이라는 업보
4부 인간이라는 미신
1. 어리석은 비둘기와 깁스하는 꿩: 초월적인 종교는 없다
2. 첩보원 쥐와 사기꾼 족제비: 동물 앞에 선 인간 지능
3. 원숭이의 자살: 동물 앞에 선 인간성
4. 우리 집 성인, 병아리: 기술로서의 인간성
5부 인간, 동물이 설계한 인공지능
1. 코로 소리를 듣는 소: 동물의 감각
2. 무지갯빛 까마귀: 사람의 감각
3. 최초의 짐승: 결론을 대신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