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메트리 철학 선집』은 유물론철학자이자 의사로 현대 뇌과학의 선구자 역할을 한 라 메트리의 주요 저작들인 「인간기계론」, 「영혼론」, 「인간식물론」 번역본과 더불어 라 메트리 철학이 갖는 현대적 의미에 대한 해제를 덧붙이고 있다. 의사들의 파업이라는 사상 초유의 현실 앞에서, 의학과 철학의 관계를 살피는 일은 현재 우리 의학이 부딪친 현실의 문제를 풀어나갈 단서를 찾아나가는 일이 될 것이다.
Contents
추천사
1. 해제 · 10
1. 라 메트리의 생애 · 13
2. 기계론의 계보와 데카르트 · 15
3.『영혼론』 · 23
4. 인간기계론』 · 31
5. 인간식물론』 · 36
6. 라 메트리 철학의 평가 · 39
2. 인간기계론 43
3. 영혼론 · 127
1장 저작의 소개 · 129
2장 물질에 대하여 · 132
3장 물질의 연장 · 134
4장 연장에 의존하는 물질의 기계적·수동적 속성 · 137
5장 물질의 원동력에 대하여 · 140
6장 물질의 감각능력에 대하여 · 145
7장 실체형상에 대하여 · 149
8장 식물혼에 대하여 · 152
9장 동물의 감각혼에 대하여 · 155
10장 감각혼에 귀속되는 몸의 능력 · 161
11장 감각기관의 습관에 의존하는 능력들 · 196
12장 감각본체로서 혼의 여러 흥분 상태들에 대하여 · 206
13장 지적 능력, 혹은 이성적 혼에 대하여 · 229
14장 신앙만이 이성적 혼의 본질에 대한 우리들의 신념을 결정할 수 있다는 것 · 242
15장 모든 관념이 감각으로부터 유래한다는 사실을 확증하는 이야기들 · 250
4. 인간식물론 · 275
제1장 · 277
제2장 · 287
제3장 · 293
옮긴이 후기 · 301
Author
라 메트리,여인석
18세기 유물론의 대표자 중 한 사람인 라 메트리(Julien Offray de La Mettrie, 1709∼1751)는 1709년 12월 19일 프랑스의 생 말로에서 부유한 직물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파리의과대학과 렝스의과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의사가 되었다. 그가 저술한 최초의 철학저서 『영혼의 자연사』는 영혼을 기계작용의 결과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함으로써 종교계와 보수적 권력층의 반발을 자아내어 1746년 분서 처분을 당했다. 이후 네덜란드로 피신해 집필한 『인간기계론』(1747) 역시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그로 인해 라 메트리는 다시 네덜란드를 떠나 프레데릭 2세가 있는 베를린에 갔다. 그는 프레데릭 2세의 후원을 받아 베를린 왕립과학아카데미의 회원으로 선출되고, 왕의 주치의가 되는 등 화려한 경력을 쌓아갔다.
그는『식물로서의 인간』(1747), 『행복론』(1748), 『기계 이상인 동물』(1750),『에피쿠로스의 체계』(1750) 등의 철학 저서와 의학서들을 발표하는 등 왕성한 집필 활동을 이어가던 중 1751년 11월 11일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았다. 라 메트리의 묘비명에는 그가 했던 다음과 같은 말이 새겨져 있다. “재산은 아무것도 아니며, 생각의 자유가 전부인 사람은 행복하다. 진정한 조국은 생각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곳이다.”
18세기 유물론의 대표자 중 한 사람인 라 메트리(Julien Offray de La Mettrie, 1709∼1751)는 1709년 12월 19일 프랑스의 생 말로에서 부유한 직물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파리의과대학과 렝스의과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의사가 되었다. 그가 저술한 최초의 철학저서 『영혼의 자연사』는 영혼을 기계작용의 결과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함으로써 종교계와 보수적 권력층의 반발을 자아내어 1746년 분서 처분을 당했다. 이후 네덜란드로 피신해 집필한 『인간기계론』(1747) 역시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그로 인해 라 메트리는 다시 네덜란드를 떠나 프레데릭 2세가 있는 베를린에 갔다. 그는 프레데릭 2세의 후원을 받아 베를린 왕립과학아카데미의 회원으로 선출되고, 왕의 주치의가 되는 등 화려한 경력을 쌓아갔다.
그는『식물로서의 인간』(1747), 『행복론』(1748), 『기계 이상인 동물』(1750),『에피쿠로스의 체계』(1750) 등의 철학 저서와 의학서들을 발표하는 등 왕성한 집필 활동을 이어가던 중 1751년 11월 11일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았다. 라 메트리의 묘비명에는 그가 했던 다음과 같은 말이 새겨져 있다. “재산은 아무것도 아니며, 생각의 자유가 전부인 사람은 행복하다. 진정한 조국은 생각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