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맨은 더욱 편리해지는 카메라의 자동화를 호기로 삼아 그 기능이 더욱 단순하고 쉬워지기를 바란다. 카메라의 완전자동화에 감탄하고, 또 그렇게 감탄한 사람들이 아마추어 사진클럽까지도 만든다. 카메라는 자동적으로 돌아가고, 카메라맨은 쉴 새 없이 사진을 찍어대기만 하면 된다. 니체가 짚었던 일종의 ‘동일자의 영겁회귀’가 지속된다. 그렇게 되면 카메라맨이 아무리 재빠르다고 해도 그는 오직 카메라를 통해서만, 기껏 해봐야 사진의 카테고리로만 세상을 관찰할 뿐, 사진 찍기의 그 ‘위’에 설 수는 없다. (…) 그래서 카메라맨의 앨범에서는 사람 냄새나는 어떤 체험이나 새로운 인식 혹은 새로운 가치를 찾아낼 수 없고, 다만 자동적으로 영상화된 장치적 가능성만을 엿볼 수 있을 뿐이다.”(162~163쪽)
카메라의 기능에 종속된 카메라맨은 자신의 행위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도, 예술적으로 고민할 수도 없는 상태에서 자동화하라는 영겁회귀의 굴레에 완전히 휘말리게 된다는 분석과 시각은 사진을 통해 인간을 이해하겠다는 사진철학의 단면을 보여준다. 하나의 대표적인 사례를 더 살펴보자. 플라톤의 ‘동굴의 우상’에서는 가상과 현실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뒤바뀐다.
“오늘날 가상은 단순한 가상이 아니라 바로 현실이고, 사이버공간 자체가 곧 우리의 현실세계이다. 오히려 우리의 현실세계가 가상의 세계로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익히 알려진 대로 플라톤은 우리의 현실을 가상으로 보면서, 이데아의 세계를 참된 현실로 보았다. 이 관점에 따르면 전통적 예술작품의 아우라 역시 사라져가는 것이 디지털영상시대에는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다.”(208쪽)
사이버네트워크 환경을 플라톤으로는 어떻게 풀어내는지 읽다보면 그 명료함에 절로 감탄사가 터진다. 여기서 논의를 조금만 더 넓히면 플라톤을 되살려내 “지금 우리의 이 현실이 가상이 아니고 무엇인가?”(25쪽)라고 물을 수도 있는 것이다.
Contents
프롤로그 사진철학으로 가는 길
I 사진과 사람, 그리고 사진철학
1. 사진과 사진철학
사진, 철학에서 길을 찾다
사진, 회화에서 길을 찾다
2. 사진과 인간의 의식
사실의 사진
의미의 사진
의식의 사진
캔버스 위를 움직이는 표면들
3. 디지털시대의 사진
사진에 대한 눈높이
아날로그사진의 역사
디지털사진의 등장
디지털사진과 비트겐슈타인
디지털사진과 하이데거
4. 사진의 인간화
II 사진의 역사와 사진예술
1. 벤야민의 사진의 작은 역사
2. 복제시대의 예술작품과 사진기술
3. 사진기술과 회화기법
4. 예술작품과 사진예술
5. 사진의 예술화
III 사진의 정보와 사진철학
1. 플루서와《사진의 철학》
플루서의 생애
플루서의 사진철학
2. 사진철학의 근거인 현실세계
제1장 그림
제2장 영상
3. 사진철학을 위한 사진의 도구적 장치
제3장 사진기
제4장 사진 찍기
제5장 사진술
4. 사진철학을 위한 사진의 담론적 정보
제6장 사진의 배포
제7장 사진의 수용
제8장 사진의 우주(세계)
5. 사진의 철학화
제9장 사진철학의 필연성
IV 《사진의 철학》을 가능케 한 철학들
인터넷에서의 활발한 논의들
전통철학과 플루서
데카르트와 플루서
니체와 플루서
베르그송과 플루서
후설, 사르트르와 플루서
하이데거와 플루서
야스퍼스와 플루서
헤겔과 플루서
칸트와 플루서
다시 야스퍼스와 플루서
주석
부록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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