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반세기 가까이 민화 작가 정승희가 올곧게, 차근차근 쌓아온 작품 세계를 담은 책입니다. 뿌리 없이 시절의 유행만 좇아 ‘이름만 민화’ ‘재료만 민화’ ‘도상만 민화’인 요즘 그림들에 정승희의 민화가 던지는 묵직한 경종을 만나실 테고요. 무엇보다 ‘제-대로; 본래 상태 그대로’ 된 민화의 아름다움을 한껏 느끼실 수 있을 테지요.
자, 눈을 감고 상상하세요. 자박자박 비 내리는 봄밤, 여염집 처자가 책가도 병풍 앞에서 바느질 중입니다. 겨울에도 변치 않는 창밖의 벗, 매화가 그 곁에 자리하죠. 그림 속엔 문방의 네 벗지,필,묵과 벼루이 놓여 있어요. 서역에서 넘어온 진귀한 기물도 그림 안에 그득하군요. 이런 곳에서라면 맹물 마시며 시를 읊조려도 그 맛을 어디에 견줄 바가 없겠네요. 이렇듯 시정詩情 가득한 민화 속으로 한 걸음 성큼 들어오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