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벽은 “선의 황금시대”에 활약한 가장 영향력이 큰 선사 가운데 한 사람이었으며, 선종 청규淸規의 원조로 유명한 백장회해(749~814)의 제자였다. 또한 임제종 종조인 임제의현(?~867)의 스승으로서 선종 정통계보의 중심에 위치하는 인물이었다. 그 강력하고 압도적인 인물에 관한 이야기들이 천년의 세월을 넘어 영국 캠브리지의 블로펠드에게까지 전해지게 된다. 그렇게 블로펠드에게 전해진 불교는 근대 낭만주의의 흐름을 타고 서구에서 그 진가를 발하게 된다. 그렇게 블로펠드는 황벽을 중심으로 불교를 서구에 전한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 중 하나가 되었다.
이제 낭만주의의 시대를 지나 ‘포스트모던’, ‘포스트로맨틱’이니 하는 ‘포스트’로 지칭되는 시대가 되었다. 이 ‘포스트’에는 이 세상이 블로펠드가 중국으로 향하던 1930년대의 문화, 그리고 그의 황벽 어록 번역에 담긴 50년대의 문화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인식, 소망 또는 전제가 들어있다. 그래서 이 책에서 데일 라이트는 그 차이가 선불교에 대한 이해를 어떻게 바꾸어놓았는지, 또한 지금은 황벽을 선배들과는 어떻게 다르게 읽고 받아들이는지를 탐구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