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조선 교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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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23/05/18
Pages/Weight/Size 153*224*35mm
ISBN 9788994445014
Categories 사회 정치 > 교육
Description
이 책의 설명 우리 교육사의 최고 고전 조선교육사를 다시 읽다! 『다시 읽는 조선교육사』는 일제시대와 해방 이후의 민족주의자로서 35년간을 민족교육에 헌신한 교육자 이만규의 를 다시 편찬한 책이다. 종래 친일 학자들이 파놓은 ‘정체론’의 함정을 뛰어넘어 조선의 독특한 ‘내재적 발전 법칙’이라고 보이는 중요한 단서를 찾아 사회경제학과 민족주의 사학의 종합을 시도하고 있다. 한국의 교육 역사를 교육학적 관점과 교육사상의 조명을 통해 잘 보여주며, 우리 교육이 안고 있는 갈등을 긴 안목에서 통사적으로 정리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일반 독자들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평이한 문체로 쓰여져 있다.북소믈리에 한마디!이 책은 해방 이후 한국 교육이 지향해야 할 방향을 찾는 중요한 근거를 제공하였다. 문학사학, 민족사학, 사회경제사학이라는 3차원성이 어우러진 그의 교육사학이 근처를 이루는 이 책은 국내에 나와 있는 대부분의 한국교육사 개설서에 인용되어있을 정도로 남북한 교육사에서 원조 혹은 고전의 위치를 점하고 있다.
Contents
머리말
이만규의 삶과 교육사관 / 심성보(부산교육대학교 교수)

제1장 서론
1. 교육사│2. 교육사상의 변천│3. 개인주의 교육사상│4. 사회주의 교육사상│5. 조선교육사 연구의 목적

제1부 조선시대 이전의 교육

제2장 원시시대의 교육 1. 연구의 목표│2. 지능│3. 사회조직│4. 신앙사상│5. 경제관념│6. 교육적 설명
제3장 부여와 한(韓) 시대의 교육 1. 시대상│2. 부여·한 시대의 교육사상
제4장 삼국시대의 교육 1. 시대상│2. 문자교육│3. 학교│4. 사회상│5. 교육의 목적과 방식│6. 화랑도 교육│7. 중국류의 교육
제5장 남북조시대의 교육 1. 남조(통일신라)의 교육│2. 북조(발해)의 교육
제6장 고려시대의 교육 1. 시대상│2. 교육 성쇠의 개관│3. 교육제도│4. 과거│5. 고려의 사상싸움과 교육사상│6. 저명한 교육가

2부 조선시대의 교육

제7장 조선시대 교육의 개요 1. 시대상(1884년까지)│2. 교육 성쇠의 개관
제8장 조선시대의 교육기관 1. 성균관│2. 사학(四學)│3. 향학(향교)│4. 서당(사숙)│5. 서원
제9장 잡과교육 1. 잡과교육의 필요성|2. 과별 학생 정원|3. 장학│4. 과시와 과목│5. 취재(取才)와 과목│6. 잡과교육의 결함
제10장 여자교육 및 아동교육 1. 여자교육│2. 아동교육
제11장 과거 및 장학 1. 과거│2. 장학(특히 임금의 장학)
제12장 조선의 교육사상 1. 삼봉 정도전│2. 양촌 권근│3. 야은 길재│4. 강호 김숙자│5. 점필재 김종직│6. 정암 조광조│7. 화담 서경덕│8. 남명 조식│9. 퇴계 이황│10. 율곡 이이│11. 성호 이익│12. 교육사상의 총괄
제13장 조선교육의 개괄적 평가 1. 제도의 진보│2. 교육사상의 특징과 결함│3. 기형 교육

제3부 조선시대 말 27년간 교육

제14장 신교육의 유도 1. 새 교육과 새 사상│2. 서양의 기계와 서적 유입│3. 서양학에 대한 선인의 사상│4. 쇄국주의의 몰락│5. 기독교의 활동
제15장 신교육의 태동기(1884~1894) 1. 시대상│2. 신교육의 태생(胎生)
제16장 신교육의 계몽기(1894~1905) 1. 시대상│2. 신교육의 출발│3. 실시와 내용(관립학교│4. 사립학교| 5. 새 교육에 대한 일반의 태도│6. 학교를 통하여 본 교육사조
제17장 신교육의 각성기(1905~1910) 1. 시대상│2. 교육사조의 전모│3. 학부의 교육방침│4. 일본인의 태도│5. 각 관계 법규와 실시의 대강│6. 법규의 내용과 실시│7. 사립학교│8. 교과서

제4부 일제강점기 36년간 교육

제18장 실용주의 표방기(1910~1919) 1. 데라우치의 언명│2. 실용주의의 속셈│3. 교육의 착안점│4. 교육령│5. 학제의 가치│6. 학제의 내용과 실시│7. 교원이 반드시 알아야 할 사항│8. 사립학교 규칙│9. 사립학교의 고통│10. 사립학교의 태도│11. 기독교 선교사단의 항의│12. 교육상황 일람│13. 독립운동과 학원│14. 학생의 향학열 침체와 부흥
제19장 준거주의 표방기(1919~1931) 1. 전기―교육 개혁기(1919~1925)│2. 후기―교육 침체기(1926~1931)
제20장 ‘교육이 곧 생활’주의 표방기(1931~1936) 1. 교육이 곧 생활의 의의│2. 농촌진흥운동과 교육│3. 농촌 갱생과 교육보급 정책의 속셈│4. 근로교육과 정신교육│5. 교육의 실제 시설│6. 조선 여자 교육에 대한 일본인의 태도│7. 제2차 초등교육 확충계획│8. 학원 내의 사상
제21장 교육 파멸기(1936~1945. 8. 14) 1. 자본주의의 말기 시대상│2. 파멸적 교육│3. 교육령 개정과 조선어 폐지│4. 학교의 뒤바꿈질│5. 시설│6. 사립학교│7. 학교의 전모(1943년 5월 현재)│8. 교육의 식민지 정책│9. 일본 유학생 단속│10. 전란 중의 기독교계 학교│11. 학생의 사상│12. 스승의 길
제22장 교육가 전기 1. 서설│2. 남강 이승훈│3. 한서 남궁억
제23장 신교육의 총평과 전망 1. 이원성 해소│2. 생산교육│3. 애국사상│4. 민주주의 교육│5. 문화재건 교육│6. 예술교육│7. 국민교육상으로 본 종교

교육 연표
Author
이만규
이만규는 일제시대에는 중등학교 교사로서의 교육실천가, 교장으로서의 교육행정가였다. 해방 후에는 식민지교육학을 극복한 자주적 교육사가, 새 국가 건설의 기초를 놓은 통일운동가였다. 1888년 강원 원성에서 태어났으며, 서울의 경성의학강습소에서 5년간 공부했고 외과의사로 활동했다. 이후 그는 민족적 사명을 자각하면서 의사의 길을 접고 교사의 길에 들어섰다. 개성 송도보통학교와 서울 배화여자중학교 교사로 학생들에게 반일애국사상을 교육하였다. 민족주의자 중심의 실력양성운동단체인 흥업구락부사건(1938년)에 연루되어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이 기간 동안 『조선 교육사』의 집필 구상을 했다. 1929년 설립된 조선어학회원, 위원장을 맡아 국어 철자법을 통일하고 보급하는 활동을 하였고, 이 일로 33인이 연루된 조선어학회사건(1942년)으로 감옥에 갇힌다. 1946년 6월 배화고등여학교의 교장직을 그만둘 때까지 교직생활을 했다. 일제치하에서 이만규는 총 2년간의 옥중생활을 하였고, 2년 7개월간의 해직교사 생활을 했다. 이 해직 기간에 『조선교육사』를 저술하게 된다. 이만규의 교육실천과 교육사상에 영향을 미친 사람은 몽양 여운형 그리고 민족주의자 한서 남궁억과 남강 이승훈이었다. 『조선교육사』에 유일하게 등장하는 뒤의 두 사람은 후세가 추앙해야 할 인물로 선정하였다. 건국준비위원회와 근로인민당에 참여하여 교육과 문화 부문에 관한 강령과 정책을 수립했다. 1947년 여운형이 암살되고, 5·10총선거 등 정치적인 변화로 인하여 1948년 평양에서 열린 ‘남북조선제정당사회단체지도자협의회’에 근로인 민당 대표로 김구·김규식 등과 함께 북한에 갔다가 남는다. 북한에서의 활동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 교육성 산하 보통학교국장을 역임했고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거쳐 ‘민주조선’ 의 사장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하여 1978년 세상을 떠났다 고 한다. 민족·민중에 기초한 『조선교육사』는 해방 후 한국 교육이 지향 할 방향을 찾는 중요한 근거를 제공하였다. 문화사 학, 민족사학, 사회경제사학이라는 3차원성이 어우러진 이만규의 교육사학이 근저를 이루는 『조선교육사』는 남북한 교육 사학사에서 ‘원조’ 또는 ‘고전’의 위치를 점하고 있으며, 국내에 나와 있는 대부분의 한국 교육사 개설서에는 『조선교육사』를 인용하지 않는 것이 아예 없을 정도이다.
이만규는 일제시대에는 중등학교 교사로서의 교육실천가, 교장으로서의 교육행정가였다. 해방 후에는 식민지교육학을 극복한 자주적 교육사가, 새 국가 건설의 기초를 놓은 통일운동가였다. 1888년 강원 원성에서 태어났으며, 서울의 경성의학강습소에서 5년간 공부했고 외과의사로 활동했다. 이후 그는 민족적 사명을 자각하면서 의사의 길을 접고 교사의 길에 들어섰다. 개성 송도보통학교와 서울 배화여자중학교 교사로 학생들에게 반일애국사상을 교육하였다. 민족주의자 중심의 실력양성운동단체인 흥업구락부사건(1938년)에 연루되어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이 기간 동안 『조선 교육사』의 집필 구상을 했다. 1929년 설립된 조선어학회원, 위원장을 맡아 국어 철자법을 통일하고 보급하는 활동을 하였고, 이 일로 33인이 연루된 조선어학회사건(1942년)으로 감옥에 갇힌다. 1946년 6월 배화고등여학교의 교장직을 그만둘 때까지 교직생활을 했다. 일제치하에서 이만규는 총 2년간의 옥중생활을 하였고, 2년 7개월간의 해직교사 생활을 했다. 이 해직 기간에 『조선교육사』를 저술하게 된다. 이만규의 교육실천과 교육사상에 영향을 미친 사람은 몽양 여운형 그리고 민족주의자 한서 남궁억과 남강 이승훈이었다. 『조선교육사』에 유일하게 등장하는 뒤의 두 사람은 후세가 추앙해야 할 인물로 선정하였다. 건국준비위원회와 근로인민당에 참여하여 교육과 문화 부문에 관한 강령과 정책을 수립했다. 1947년 여운형이 암살되고, 5·10총선거 등 정치적인 변화로 인하여 1948년 평양에서 열린 ‘남북조선제정당사회단체지도자협의회’에 근로인 민당 대표로 김구·김규식 등과 함께 북한에 갔다가 남는다. 북한에서의 활동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 교육성 산하 보통학교국장을 역임했고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거쳐 ‘민주조선’ 의 사장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하여 1978년 세상을 떠났다 고 한다. 민족·민중에 기초한 『조선교육사』는 해방 후 한국 교육이 지향 할 방향을 찾는 중요한 근거를 제공하였다. 문화사 학, 민족사학, 사회경제사학이라는 3차원성이 어우러진 이만규의 교육사학이 근저를 이루는 『조선교육사』는 남북한 교육 사학사에서 ‘원조’ 또는 ‘고전’의 위치를 점하고 있으며, 국내에 나와 있는 대부분의 한국 교육사 개설서에는 『조선교육사』를 인용하지 않는 것이 아예 없을 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