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쉰 문학 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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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11/06/25
Pages/Weight/Size 162*232*40mm
ISBN 9788994372259
Categories 소설/시/희곡 > 중국소설
Description
루쉰의 수많은 저작 중에 소설집 『납함』『방황』을 제외하고 가려 뽑아 1권에 5책을 담은 ‘선집’이다. 5책은 『잡문』,『수필집』,『서한집』, 『양지서』,『고사신편』이다. ‘1권 5책’ 이란 표현을 쓴 것은 다섯 권을 한 권으로 묶었다는 뜻이다.

글을 뽑은 잣대는, 루쉰의 저작 가운데 널리 읽히고, 지금 우리나라의 사회역사적 상황과 세상을 독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글들, 대학생들과 지식인들의 비판적 글쓰기 능력을 키울 수 있는 글들을 중심으로 뽑아 한 권에 다섯 책을 담은 선집으로 엮었다. 또한 중국의 역사와 문학에 대한 백과사전적인 주석을 해당 쪽의 밑에 달아 독자들이 글을 읽으면서 바로 참고 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책의 맨 마지막에는 루쉰의 생애를 연도별로 상세하게 적은 「루쉰 연보」를 실었다.
Contents
차례

영원한 루쉰 / 송춘남
왜 루쉰인가? / 박홍규 교수의 해설

1 잡문
무덤
‘눈을 똑바로 뜨고 보라’를 논함
천재가 있기에 앞서
이런 저런 추억
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
뇌봉탑이 무너짐을 다시 논함
노라는 집을 나간 뒤 어떻게 되었을까
등불 아래서의 만필

열풍
수감록 25
수감록 40
수감록 41
수감록 56 “왔다”
수감록 59 “성무”
수감록 62 분해서 죽다
수감록 65 폭군의 신하와 백성
수감록 66 생명의 길

화개집
문득 떠오르는 생각
전사와 파리
잡생각
이것과 저것
지도자
만리장성
여름벌레 세 가지

화개집 속편
꽃 없는 장미
죽음의 땅
약간한 비유
황제를 말한다
유화진군을 기념하여
빈말
담화기록

화개집 속편의 보충
「아큐정전」을 쓰게 된 원인

이이집
황화절의 잡감
중국 사람의 얼굴을 논함
혁명시대의 문학
유황 선생에게 드리는 답장
미움 죄
느낌의 단편들
문학과 땀

삼한집
깡패의 변천
소리 없는 중국
통신(Y의 편지를 함께)
답장
어떻게 쓸 것인가(밤에 쓰는 글1)

이심집
“상가집” “자본가의 무맥한 앞잡이”
“지식 노동자” 만세
비혁명적 급진 혁명론자
습관과 개혁
중국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선구자의 피


남강북조집
여성해방에 대하여
여성에 대하여
경험
“제3부류의 인간”을 논함
“재난에 뛰어들기”와 “재난을 피하기”에 대하여
욕설과 위협은 절대로 전투가 아니다
-「「문학월보」」 편집부에 보내는 편지
모래
처세술 삼매경 1)
어찌하여 나는 소설을 쓰게 되었는가


위자유서
풍자에서 유머에로
언론자유의 한계

준풍월담
“놀고먹기”
야수훈련법
밤의노래
지식의 과잉

화변문학
욕설
여자라고 반드시 거짓말을 더 하는 것은 아니다
물의 속성

차개정 잡문
나폴레옹과 제너
“고기 맛을 모른다”와 “물맛을 모른다”
애에게 사진을 찍어주면서 떠오른 생각
“체면”을 말한다
운명
중국의 두세 가지 일에 대하여
중국 사람은 자신심을 잃어버렸는가ㆍ
중국문단의 요괴


차개정 잡문 2집
“사람의 혀가 무섭다”를 논함
풍자를 논함
풍자란 무엇인가
-문학사의 물음에 대답함
현대 중국에서의 공자

차개정 잡문 말편
나는 사람을 속이고 싶다
깊은 밤에 적노라
죽음

2 수필집

들풀
머리말
가을밤
그림자의 고백
걸인
복수
복수(2)
희망


아름다운 이야기
나그네
죽은 불
개의 반박
잃어버린 좋은 지옥
묘비명
퇴락한 줄의 떨림
주견
죽은 뒤
이런 전사
어진 사람과 어리석은 자, 그리고 노비
겨울 잎사귀
희미해진 핏자국
-죽은 자와 살아 있는 자와 태어나지 않은 자를 기념하여
각성



3 서한집
1919년 1월 16일 허수상에게 보낸 편지
1920년 5월 4일 송숭의에게 보낸 편지
1920년 12월 14일 아오기 1)에게 보낸 편지
1924년 9월 24일 이병중에게 보낸 편지
1925년 4월 11일 조기문에게 보낸 편지
1926년 6월 17일 이병중에게 보낸 편지
1926년 10월 4일 위총무, 위소원, 이제야에게 보낸 편지
1927년 9월 25일 대정농에게 보낸 편지
1929년 4월 7일 위소원에게 보낸 편지
1930년 9월 20일 조정화에게 보낸 편지
1931년 2월2일 위소원에게 보낸 편지
1931년 2월 4일 이병중에게 보낸 편지
1932년 6월 18일 대정농에게 보낸 편지
1933년 6월 20일 유화사에 보낸 편지
1933년 6월 25일 야마코트 하쯔1)에게 보낸 편지
1933년 10월 31일 조정화에게 보낸 편지
1933년 11월 5일 요극에게 보낸 편지
1934년 4월 24일 양제운에게 보낸 편지
1934년 5월 6일 양제운에게 보낸 편지
1943년 6월 3일 양제운에게 보낸 편지
1934년 10월 13일 합중서점 1)에 보낸 편지
1934년 12월 6일 소군, 소흥에게 보낸 편지
1934년 12월 10일 소군, 소흥에게 보낸 편지
1934년 12월 6일 양제운에게 보낸 편지
1934년 12월 18일 양제운에게 보낸 편지
1934년 12월 25일 조가벽에게 보낸 편지
1934년 12월 26일 소군, 소흥에게 보낸 편지
1934년 12월 31일 유위명에게 보낸 편지
1035년 1월 4일 소군, 소홍에게 보낸 편지
1935년 2월 7일 조정화에게 보낸 편지
1935년 2월 9일 소군, 소홍에게 보낸 편지
1935년 4월 23일 소군, 소홍에게 보낸 편지
1935년 6월 29일 뇌소기에게 보낸 편지
1935년 10월 4일 소군에게 보낸 편지
1936년 3월 26일 조백에게 보낸 편지
1936년 4월 1일 조백에게 보낸 편지
1936년 4월 5일 왕야추에게 보낸 편지
1935년 4월 15일 안여민에게 보내는 편지
1936년 4월 23일 조정화에게 보낸 편지
1936년 5월 8일 이제야에게 보낸 편지
1936년 8월 28일 양제운에게 보낸 편지
1936년 9월 15일 왕야추에게 보낸 편지
1936년 10월 15일 대정농에게 보낸 편지
1936년 10월 15일 대정농에게 보낸 편지

4 양지서

머리말
제1집
북경
(1925년 3월부터 7월까지)

제2집
하문ㆍ광주
(1926년9월부터 27년 1월까지)

제3집 …
북평ㆍ상해
(1929년 5월부터 6월까지)

5 고사신편 …

머리말
하늘을 메우다
달나라로 가다
물을 다스리다
벼린검
비공1)


루쉰 연보
Author
루쉰,송춘남,박홍규
중국의 문학가, 사상가, 혁명가이자 교육가. 본명은 저우수런이고 자는 위차이이다. 중국 현대 문학의 창시자로 여겨지는 루쉰은 당대의 중국 예술과 화에서 다른 어떤 작가와도 비견될 수 없는 위치를 차지한다. 중국 공산당이 국민적 영웅으로 찬양한 루쉰은 중국혁명의 지적 원천으로서 추앙받아 왔으며, 마오쩌둥을 위해 사상적 기반을 마련한 인물이기도 하다.

저장성 사오싱(紹興)의 지주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조부의 하옥, 아버지의 병사 등으로 어려서부터 고생스럽게 살았다. 청년시대에 진화론과 니체의 초인철학, 톨스토이의 박애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1898년 난징의 강남수사학당에 입학, 당시의 계몽적 신학문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1902년 졸업 후 일본에 유학, 고분학원을 거쳐 1904년 센다이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였으나, 문학의 중요성을 통감하고 의학을 단념, 국민정신의 개조를 위하여 문예 활동에 힘썼다.

1905~1907년 혁명당원의 활동에 참가하고, ‘마라시력설’, ‘문화편지론’ 등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 무렵 유럽의 피압박민족 및 슬라브계 작품에 공감하여 1909년 동생 저우쭤런(周作人)과 ‘역외소설집’을 공역하는 한편, 망명중인 장빙린(章炳麟)에게 사사하였다. 1909년 귀국하여 고향에서 교편을 잡다가 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나자, 남경임시정부와 북경정부의 교육부원이 되어 일하면서 틈틈이 금석 탁본의 수집, 고서 연구 등에 심취하였다. 1918년 문학혁명을 계기로, 처음으로 ‘루쉰(魯迅)’이라는 필명을 사용, 중국현대문학사상 첫번째의 백화소설인 ‘광인일기’를 발표하여 신문학운동의 기초를 다졌다.

5·4운동 전후 ‘신청년’ 잡지의 일에 참가하여 ‘5·4’ 신문화운동의 선봉이 되었다. 1918년에서 1926년에 이르는 동안 창작을 계속하여 소설집 ‘눌함’, ‘방황’, 논문집 ‘분(墳)’, 산문시집 ‘야초’, 산문집 ‘조화석습’, 잡문집 ‘열풍’, ‘화개집(華蓋集)’, ‘화개집 속편’ 등을 출판하였다. 이 중에 ‘공을기(孔乙己)’, ‘고향’, ‘축복’ 등을 발표하여 중국 근대문학을 확립하였는데, 1921년 12월에 발표된 중편소설 ‘아Q정전(阿Q正傳)’은 중국현대문학사상 불후의 대표작으로 세계적 수준의 작품이다. 많은 외국 작가의 작품을 번역하였고, 1920년 이후에는 베이징대학, 베이징여자사범대학 등에서 교편을 잡았다.

1924년 저우쭤런과 어사사를 조직하고, 1925년 청년문학사와 미명사(未名社)를 조직하였으나, 1926년 8월 베이양 군벌의 문화 탄압과 격돌한 베이징 학생애국운동 지지로 말미암아 베이징을 탈출, 아모이대학 중문과 주임으로 부임하고, 1927년 1월 당시의 혁명 중심 광저우(廣州)에 이르러 중산대학의 교무주임이 되었다. 1927년 가을 상하이의 조계에 숨어 쉬광핑(許廣平)과 동거하며 문필생활에 몰두하는 한편, 창조사, 태양사 등 혁명문학을 주창하는 급진적 그룹 및 신월사(新月社) 등 우익적 그룹에 대한 논전을 통하여 매우 전투적인 사회 단평(短評)의 문체를 확립하였다.

한편 소비에트 러시아 문학작품을 번역하여 소개하기도 하였다. 1930년 전후하여 중국자유운동대동맹, 중국좌익작가연맹과 중국민권보장동맹에 참가하여 국민당 정부의 독재 통치와 정치 박해에 항거하였다. 1931년 만주사변 뒤에 대두된 민족주의 문학, 예술지상주의 및 소품문파(小品文派)에 대하여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였다. 1927년부터 1936년까지 역사소설집 ‘고사신편’을 출판하였고, 대부분의 작품과 잡문은 ‘이이집’, ‘삼한집’, ‘이심집’, ‘남강북조집’, ‘위자유서’, ‘준풍월담’, ‘화변문학’, ‘차개정잡문’, ‘차개정잡문 이편’, ‘차개정잡문 말편’, ‘집외집’과 ‘집외집습유’ 등에 수록되었다.

또 1931년부터 판화 운동도 지도하여 중국 신판화의 기틀을 다졌다. 루쉰의 일생은 중국 문화사업에 지대한 공헌을 이룩하였다. ‘미명사(未名社)’, ‘조화사(朝花社)’ 등 문학 단체를 영도하고 지지하였으며, ‘국민신보부간’, ‘망원(莽原)’, ‘어사(語絲)’, ‘분류(奔流)’, ‘맹아(萌芽)’, ‘역문(譯文)’ 등 문예잡지를 주편하였고, 청년 작가를 열성적으로 적극 배양하였다. 외국의 진보된 문학 작품을 번역하는 데 힘쓰고, 국내외의 저명한 회화, 목각을 소개하였으며, 대량의 고전문학을 수집, 연구, 정리하고, ‘중국소설사략’, ‘한문학사강요’를 저술하였으며, ‘혜강집’을 정리하고 ‘회계군고서잡록’, ‘고소설구침(古小說鉤沈)’, ‘당송전기록’, ‘소설구문초’ 등등을 집록하였다. 죽기 직전에는 항일투쟁 전선을 둘러싸고 저우양(周揚) 등과 논쟁을 벌이기도 하였으나, 그가 죽은 뒤에는 대체로 그의 주장에 따른 형태로 문학계의 통일전선이 형성되었다.

그의 문학과 사상에는 모든 허위를 거부하는 정신과 언어의 공전이 없는, 어디까지나 현실에 뿌리박은 강인한 사고가 뚜렷이 부각되어 있다. 1936년 10월 19일 폐결핵으로 말미암아 상하이에서 세상을 떠나고 민중 만여 명이 자발적으로 공제(公祭)를 거행하여 훙자오만국공묘에 묻혔다. 1956년 루쉰의 유해는 훙커우공원에 이장되었다. 1938년 ‘루쉰전집’ 20권이 출판되었다. 그를 혁명의 모범이자 사상의 근원으로 여긴 마오쩌둥에 의해 20세기 내내 중국을 지배한 개혁과 혁명적 변화의 선동가로서 거의 신적인 존재로까지 추앙받았다.

인민정부 성립 후, 루쉰의 저서는 분야별로 나뉘어 ‘루쉰전집’ 10권, ‘루쉰역문집’ 10권, ‘루쉰일기’ 2권, ‘루쉰서신집’이 간행되었고, 루쉰이 편교(編校)한 고적(古籍) 여러 종류도 다시 간행되었다. 1981에는 ‘루쉰전집’ 16권이 출판되었다. 베이징, 상하이, 사오싱, 아모이 등지에는 전후하여 루쉰 박물관, 기념관 등이 건립되었다.
중국의 문학가, 사상가, 혁명가이자 교육가. 본명은 저우수런이고 자는 위차이이다. 중국 현대 문학의 창시자로 여겨지는 루쉰은 당대의 중국 예술과 화에서 다른 어떤 작가와도 비견될 수 없는 위치를 차지한다. 중국 공산당이 국민적 영웅으로 찬양한 루쉰은 중국혁명의 지적 원천으로서 추앙받아 왔으며, 마오쩌둥을 위해 사상적 기반을 마련한 인물이기도 하다.

저장성 사오싱(紹興)의 지주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조부의 하옥, 아버지의 병사 등으로 어려서부터 고생스럽게 살았다. 청년시대에 진화론과 니체의 초인철학, 톨스토이의 박애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1898년 난징의 강남수사학당에 입학, 당시의 계몽적 신학문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1902년 졸업 후 일본에 유학, 고분학원을 거쳐 1904년 센다이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였으나, 문학의 중요성을 통감하고 의학을 단념, 국민정신의 개조를 위하여 문예 활동에 힘썼다.

1905~1907년 혁명당원의 활동에 참가하고, ‘마라시력설’, ‘문화편지론’ 등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 무렵 유럽의 피압박민족 및 슬라브계 작품에 공감하여 1909년 동생 저우쭤런(周作人)과 ‘역외소설집’을 공역하는 한편, 망명중인 장빙린(章炳麟)에게 사사하였다. 1909년 귀국하여 고향에서 교편을 잡다가 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나자, 남경임시정부와 북경정부의 교육부원이 되어 일하면서 틈틈이 금석 탁본의 수집, 고서 연구 등에 심취하였다. 1918년 문학혁명을 계기로, 처음으로 ‘루쉰(魯迅)’이라는 필명을 사용, 중국현대문학사상 첫번째의 백화소설인 ‘광인일기’를 발표하여 신문학운동의 기초를 다졌다.

5·4운동 전후 ‘신청년’ 잡지의 일에 참가하여 ‘5·4’ 신문화운동의 선봉이 되었다. 1918년에서 1926년에 이르는 동안 창작을 계속하여 소설집 ‘눌함’, ‘방황’, 논문집 ‘분(墳)’, 산문시집 ‘야초’, 산문집 ‘조화석습’, 잡문집 ‘열풍’, ‘화개집(華蓋集)’, ‘화개집 속편’ 등을 출판하였다. 이 중에 ‘공을기(孔乙己)’, ‘고향’, ‘축복’ 등을 발표하여 중국 근대문학을 확립하였는데, 1921년 12월에 발표된 중편소설 ‘아Q정전(阿Q正傳)’은 중국현대문학사상 불후의 대표작으로 세계적 수준의 작품이다. 많은 외국 작가의 작품을 번역하였고, 1920년 이후에는 베이징대학, 베이징여자사범대학 등에서 교편을 잡았다.

1924년 저우쭤런과 어사사를 조직하고, 1925년 청년문학사와 미명사(未名社)를 조직하였으나, 1926년 8월 베이양 군벌의 문화 탄압과 격돌한 베이징 학생애국운동 지지로 말미암아 베이징을 탈출, 아모이대학 중문과 주임으로 부임하고, 1927년 1월 당시의 혁명 중심 광저우(廣州)에 이르러 중산대학의 교무주임이 되었다. 1927년 가을 상하이의 조계에 숨어 쉬광핑(許廣平)과 동거하며 문필생활에 몰두하는 한편, 창조사, 태양사 등 혁명문학을 주창하는 급진적 그룹 및 신월사(新月社) 등 우익적 그룹에 대한 논전을 통하여 매우 전투적인 사회 단평(短評)의 문체를 확립하였다.

한편 소비에트 러시아 문학작품을 번역하여 소개하기도 하였다. 1930년 전후하여 중국자유운동대동맹, 중국좌익작가연맹과 중국민권보장동맹에 참가하여 국민당 정부의 독재 통치와 정치 박해에 항거하였다. 1931년 만주사변 뒤에 대두된 민족주의 문학, 예술지상주의 및 소품문파(小品文派)에 대하여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였다. 1927년부터 1936년까지 역사소설집 ‘고사신편’을 출판하였고, 대부분의 작품과 잡문은 ‘이이집’, ‘삼한집’, ‘이심집’, ‘남강북조집’, ‘위자유서’, ‘준풍월담’, ‘화변문학’, ‘차개정잡문’, ‘차개정잡문 이편’, ‘차개정잡문 말편’, ‘집외집’과 ‘집외집습유’ 등에 수록되었다.

또 1931년부터 판화 운동도 지도하여 중국 신판화의 기틀을 다졌다. 루쉰의 일생은 중국 문화사업에 지대한 공헌을 이룩하였다. ‘미명사(未名社)’, ‘조화사(朝花社)’ 등 문학 단체를 영도하고 지지하였으며, ‘국민신보부간’, ‘망원(莽原)’, ‘어사(語絲)’, ‘분류(奔流)’, ‘맹아(萌芽)’, ‘역문(譯文)’ 등 문예잡지를 주편하였고, 청년 작가를 열성적으로 적극 배양하였다. 외국의 진보된 문학 작품을 번역하는 데 힘쓰고, 국내외의 저명한 회화, 목각을 소개하였으며, 대량의 고전문학을 수집, 연구, 정리하고, ‘중국소설사략’, ‘한문학사강요’를 저술하였으며, ‘혜강집’을 정리하고 ‘회계군고서잡록’, ‘고소설구침(古小說鉤沈)’, ‘당송전기록’, ‘소설구문초’ 등등을 집록하였다. 죽기 직전에는 항일투쟁 전선을 둘러싸고 저우양(周揚) 등과 논쟁을 벌이기도 하였으나, 그가 죽은 뒤에는 대체로 그의 주장에 따른 형태로 문학계의 통일전선이 형성되었다.

그의 문학과 사상에는 모든 허위를 거부하는 정신과 언어의 공전이 없는, 어디까지나 현실에 뿌리박은 강인한 사고가 뚜렷이 부각되어 있다. 1936년 10월 19일 폐결핵으로 말미암아 상하이에서 세상을 떠나고 민중 만여 명이 자발적으로 공제(公祭)를 거행하여 훙자오만국공묘에 묻혔다. 1956년 루쉰의 유해는 훙커우공원에 이장되었다. 1938년 ‘루쉰전집’ 20권이 출판되었다. 그를 혁명의 모범이자 사상의 근원으로 여긴 마오쩌둥에 의해 20세기 내내 중국을 지배한 개혁과 혁명적 변화의 선동가로서 거의 신적인 존재로까지 추앙받았다.

인민정부 성립 후, 루쉰의 저서는 분야별로 나뉘어 ‘루쉰전집’ 10권, ‘루쉰역문집’ 10권, ‘루쉰일기’ 2권, ‘루쉰서신집’이 간행되었고, 루쉰이 편교(編校)한 고적(古籍) 여러 종류도 다시 간행되었다. 1981에는 ‘루쉰전집’ 16권이 출판되었다. 베이징, 상하이, 사오싱, 아모이 등지에는 전후하여 루쉰 박물관, 기념관 등이 건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