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 마르그리트 도나디외(Marguerite Donnadieu). 1914년 베트남 지아딘에서 태어났다. 1918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프랑스어 교사인 어머니의 인사 이동에 따라 베트남 곳곳으로 이사를 다니며 어린 시절을 보낸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1933년 프랑스로 영구 귀국하여 대학교에서 정치학과 법학을 공부한다. 졸업 후 식민지청에서 비서로 일하다가 1941년 퇴직, 1943년 플롱 출판사에서 ‘뒤라스’라는 필명으로 첫 소설 『철면피들』을 출간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한다. 이차대전중에는 프랑수아 미테랑과 함께 레지스탕스로서, 1950년대에는 열렬한 공산주의자로서 현실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알제리전쟁 반대운동과 68혁명 등 프랑스 현대사의 현장에도 함께한다. 1950년대 말 누보로망과 결부되기도 했던 뒤라스는, 특유의 반복과 비정형적인 문장으로 통속성과 서정성을 뒤섞어 자기만의 글쓰기 영역을 구축해간다. 여러 작품을 통해 주로 부재와 사랑, 고통과 기다림, 글쓰기와 광기, 여성성과 동성애의 기이한 결합 등을 묘파해 보인다.
‘누보로망’ 작가로 불리며, 영화 시나리오 작업 및 연출로도 주목받았다. 인도차이나에서 보낸 어린 시절의 기억은 『태평양을 막는 방파제』를 비롯해 『갠지스 강의 여인』 등 수많은 작품들로 변주되었다. 1980년부터 함께한 삶의 동반자 얀 앙드레아와의 관계를 바탕으로 『죽음의 병』, 『파란 눈 검은 머리』, 『에밀리 L.』 등의 작품을 집필한다. 노년에 찾아온 알코올중독과 간 경화의 고통을 이겨 내고 1984년 프랑스에서 가장 영예로운 문학상인 공쿠르 상을 수상한 『연인』은 프랑스를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수백만 부가 팔렸고 영화로도 제작되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일찍부터 연극과 영화의 매력에 눈을 떠 여러 가지 형태로 이 예술 장르들과 특별한 인연을 맺는데 [공원] 및 알랭 레네 감독의 [히로시마 내 사랑]의 다수의 희곡과 시나리오를 시나리오를 쓰면서 영화 [나탈리 그랑제], [오렐리아 슈타이너], [라 뮤지카] 등에서는 제작 및 연출에 직접 참여하는 등 활동 영역을 확장한 뒤라스는 감독을 맡은 [인디아 송]이 1975년 칸 영화제 예술ㆍ비평 부문에서 수상하면서 유럽 영화사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오르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레지스탕스 활동에 참여하는 등 사회운동에도 적극적이었고, 이 당시의 경험을 담은 소설 『고통』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멈추지 않는 열정으로 『북중국의 연인』, 『얀 앙드레아 슈타이너』, 『글쓰기』, 『태평양을 막는 방파제』, 『온종일 숲 속에서』, 『모데라토 칸타빌레』, 『롤 V. 스탱의 황홀』, 『부영사』, 『복도에 앉은 남자』 등 다수의 작품을 썼고 ‘누보로망’ 작가로 불렸다. 1995년 마지막 작품 『이게 다예요』로 평생 40여 권의 작품들을 집필한 왕성한 경력에 마침표를 찍고 1996년 3월 3일, 파리에서 세상을 뜬다.
본명 마르그리트 도나디외(Marguerite Donnadieu). 1914년 베트남 지아딘에서 태어났다. 1918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프랑스어 교사인 어머니의 인사 이동에 따라 베트남 곳곳으로 이사를 다니며 어린 시절을 보낸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1933년 프랑스로 영구 귀국하여 대학교에서 정치학과 법학을 공부한다. 졸업 후 식민지청에서 비서로 일하다가 1941년 퇴직, 1943년 플롱 출판사에서 ‘뒤라스’라는 필명으로 첫 소설 『철면피들』을 출간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한다. 이차대전중에는 프랑수아 미테랑과 함께 레지스탕스로서, 1950년대에는 열렬한 공산주의자로서 현실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알제리전쟁 반대운동과 68혁명 등 프랑스 현대사의 현장에도 함께한다. 1950년대 말 누보로망과 결부되기도 했던 뒤라스는, 특유의 반복과 비정형적인 문장으로 통속성과 서정성을 뒤섞어 자기만의 글쓰기 영역을 구축해간다. 여러 작품을 통해 주로 부재와 사랑, 고통과 기다림, 글쓰기와 광기, 여성성과 동성애의 기이한 결합 등을 묘파해 보인다.
‘누보로망’ 작가로 불리며, 영화 시나리오 작업 및 연출로도 주목받았다. 인도차이나에서 보낸 어린 시절의 기억은 『태평양을 막는 방파제』를 비롯해 『갠지스 강의 여인』 등 수많은 작품들로 변주되었다. 1980년부터 함께한 삶의 동반자 얀 앙드레아와의 관계를 바탕으로 『죽음의 병』, 『파란 눈 검은 머리』, 『에밀리 L.』 등의 작품을 집필한다. 노년에 찾아온 알코올중독과 간 경화의 고통을 이겨 내고 1984년 프랑스에서 가장 영예로운 문학상인 공쿠르 상을 수상한 『연인』은 프랑스를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수백만 부가 팔렸고 영화로도 제작되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일찍부터 연극과 영화의 매력에 눈을 떠 여러 가지 형태로 이 예술 장르들과 특별한 인연을 맺는데 [공원] 및 알랭 레네 감독의 [히로시마 내 사랑]의 다수의 희곡과 시나리오를 시나리오를 쓰면서 영화 [나탈리 그랑제], [오렐리아 슈타이너], [라 뮤지카] 등에서는 제작 및 연출에 직접 참여하는 등 활동 영역을 확장한 뒤라스는 감독을 맡은 [인디아 송]이 1975년 칸 영화제 예술ㆍ비평 부문에서 수상하면서 유럽 영화사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오르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레지스탕스 활동에 참여하는 등 사회운동에도 적극적이었고, 이 당시의 경험을 담은 소설 『고통』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멈추지 않는 열정으로 『북중국의 연인』, 『얀 앙드레아 슈타이너』, 『글쓰기』, 『태평양을 막는 방파제』, 『온종일 숲 속에서』, 『모데라토 칸타빌레』, 『롤 V. 스탱의 황홀』, 『부영사』, 『복도에 앉은 남자』 등 다수의 작품을 썼고 ‘누보로망’ 작가로 불렸다. 1995년 마지막 작품 『이게 다예요』로 평생 40여 권의 작품들을 집필한 왕성한 경력에 마침표를 찍고 1996년 3월 3일, 파리에서 세상을 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