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와 섹스, 에이즈와 죽음, 사랑과 환멸에 대한 고뇌이자
관습과 성별, 도덕과 형벌, 상식과 타인의 시선 그 너머에 있는 인간의 자화상
타이완을 대표하는 여성 소설가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주톈원의 장편 『황인수기』는 “‘황인’으로 일컫는 동성애자의 일기”라는 뜻의 제목으로 남성 동성애자를 화자로 내세우고 있다. 이 작품은 이 세기의 문명이 다다를 수 있는 최고의 수준에 도달했다는 가정 하에 ‘동성애’라는 소재를 통해 인간이 겪는 황폐한 감정과 사랑에 대한 열정을 섬세하게 묘사했다. 중국 본토는 물론 일본어, 영어로도 번역되어 많은 독자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았으며, 타이완 주간지 《중국시보》에서 최고의 책으로 선정되는 등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다.
소설은 화자인 샤오가 그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평생에 걸쳐 마음속 연인이었던 아야오에 대한 회상으로 시작된다. 소년 시절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거부하며 평범을 지향했던 화자와 달리, 당당하게 동성애자인 자신을 드러내고 동성애자들의 권리를 주장했던 아야오는 얼마 전 세상을 떠났다. 화자는 아야오에 대한 회상 속에서 동성애자인 자신의 내면을 인정하게 되면서도, 사회에서 금기시 되는 동성애자로서의 고통스런 삶을 서술한다. 타락과 환멸을 경험하며 존재의 이유를 발견해나가는 샤오의 여정은, 사랑과 이별에 관한 비가(悲歌)이기도 하다.
이 작품의 화자를 비롯해 등장인물 다수가 동성애자들이지만 그들이 단순히 동성애자만을 대변하는 인물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젊은 시절의 샤오는 불확실한 미래와 죽음에 대한 막연한 공포 때문에, 눈앞의 환락과 순간적인 쾌락에 몰두하며 슬픔을 감추려고 했다. 저자 주톈원이 세기가 전환되는 시기라고 표현한 ‘이 순간들’은 모든 것이 너무나 빠르게 변하면서도 더 이상의 성장이 이뤄지지 않는 세기말이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샤오의 모습은 현대사회에서 열외자들의 풍경이자 이시대의 자화상으로 비춰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