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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도 색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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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U
9788993964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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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10/09/27
Pages/Weight/Size 136*205*30mm
ISBN 9788993964233
Description
먹고살기 위해 몸을 파는 여자들의 까만 삶을 그린 문제작

프랑스에서 '혁명적 창녀'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왕립묘지에 묻힌 작가 그리젤리디스 레알의 첫 소설이다. 출간 당시 성(性)에 관대한 프랑스에서도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이 작품은 매춘부로서의 삶을 고스란히 드러낸 자전적 소설이다. 작가는 매춘부의 생생한 모습을 유머러스하게 보여주며, 매춘여성들의 서비스를 이용하면서도 매춘여성을 비난하는 사회의 위선을 비난한다. 엄숙한 도덕주의에 물든 기존 관념을 뒤흔들며 우리 사회의 위선을 정면으로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가 살던 시기에는 '검정'을 저주받은 색으로 여기며 아예 색의 범주에 넣지도 않고 혐오시하였다. 창녀들을 비롯한 죄인들에게 검정의 굴레를 뒤집어 씌운 것도 그 때문이다. 1960년대, 전쟁이 끝난 독일의 뮌헨에는 이러한 '검정들'의 삶이 넘쳐났다. 먹고살기 위해 몸을 파는 여자들, 그런 여자들을 찾는 사내들, 강제수용소 생활을 견뎌낸 집시들까지……. '혁명적 창녀'로 불린 작가는 이러한 '검정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신이 만난 사람들과 매춘, 강간, 매독, 마약, 감옥 생활 등의 경험을 회한이나 비관에 사로잡히지 않고 단호하면서도 씩씩하게 이야기하는 그의 모습은 까만 삶이 치밀한 '위선'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희뿌연 삶보다 더욱 아름답다는 사실을 일깨워줄 것이다.
Author
그리젤리디스 레알,김효나
1929-2005. 제네바의 왕립묘지에 신교개혁자 장 칼뱅과 아르헨티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와 나란히 위치한 그의 묘지에는 다음과 같이 그의 직업이 표기되어 있다: 작가, 화가, 창녀.

스위스 로잔에서 태어난 그는 이집트와 그리스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취리히 장식예술학교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네 아이의 엄마로서 1961년부터 독일에서 매춘업을 시작하였고, 1974년에는 자전적 소설 『검정도 색깔이다』를 출간하며 그가 걸었던 역동적인 삶의 길을 담담하면서도 경쾌하고 유머러스한 필체로 그려냈다. 그 이후부터는 매춘부들의 권리를 찾기 위한 투쟁에 나섰으며 1975년에는 500명의 동료들과 함께 파리의 생베르나르 성당을 점거하면서 그 유명한 ‘혁명적 창녀’가 되었다. 스위스 제네바에 기반을 둔 매춘부지원협회(ASPASIE)의 공동설립자이며, 역시 제네바의 파키 지구에 소재한 자신의 작은 아파트에 매춘에 관한 국제문서고를 창설하기도 했다.

『고급매춘부의 무도카드』, 서한집 『상상력의 열쇠』와 『스핑크스』, 옥중일기 『내가 아직 살아 있나요?』의 저자이기도 한 그는, 글, 그림, 시, 언론과의 인터뷰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매춘을 ‘예술이자 휴머니즘, 그리고 과학’이라 명명하며 그 명예를 살리고, 성노동자뿐 아니라 사회적 소수자 전반의 권리와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혁명을 전개했다.
1929-2005. 제네바의 왕립묘지에 신교개혁자 장 칼뱅과 아르헨티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와 나란히 위치한 그의 묘지에는 다음과 같이 그의 직업이 표기되어 있다: 작가, 화가, 창녀.

스위스 로잔에서 태어난 그는 이집트와 그리스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취리히 장식예술학교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네 아이의 엄마로서 1961년부터 독일에서 매춘업을 시작하였고, 1974년에는 자전적 소설 『검정도 색깔이다』를 출간하며 그가 걸었던 역동적인 삶의 길을 담담하면서도 경쾌하고 유머러스한 필체로 그려냈다. 그 이후부터는 매춘부들의 권리를 찾기 위한 투쟁에 나섰으며 1975년에는 500명의 동료들과 함께 파리의 생베르나르 성당을 점거하면서 그 유명한 ‘혁명적 창녀’가 되었다. 스위스 제네바에 기반을 둔 매춘부지원협회(ASPASIE)의 공동설립자이며, 역시 제네바의 파키 지구에 소재한 자신의 작은 아파트에 매춘에 관한 국제문서고를 창설하기도 했다.

『고급매춘부의 무도카드』, 서한집 『상상력의 열쇠』와 『스핑크스』, 옥중일기 『내가 아직 살아 있나요?』의 저자이기도 한 그는, 글, 그림, 시, 언론과의 인터뷰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매춘을 ‘예술이자 휴머니즘, 그리고 과학’이라 명명하며 그 명예를 살리고, 성노동자뿐 아니라 사회적 소수자 전반의 권리와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혁명을 전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