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1년 11월 22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출생했으며, 심리학자 지크문트 프로이트의 조카(친조카 겸 처조카)이다. 곡물상으로 성공한 아버지 일라이 버네이스는 프로이트의 아내인 마사 버네이스의 오빠이고, 어머니 안나 프로이트는 프로이트의 여동생이다. 한 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 뉴욕으로 건너갔으며, 아버지의 뜻에 따라 코넬 대학교에서 농학을 전공했다. 1912년 대학을 졸업하고 뉴욕시상품거래소에서 곡물 유통 업무를 하다가 그만두고 친구의 의학 잡지사에서 기자로 일하며 홍보(PR) 업무를 시작했는데, 언론 대행인으로서 여러 문화 행사를 성공리에 이끌었다. 제1차 세계대전 때는 연방공보위원회(CPI)에 발탁되어 독일 등에 맞서 뛰어난 선전 전략을 펼쳤다.
전후 1919년에는 뉴욕에서 최초로 ‘PR 고문’이라는 직함을 달고 PR 전문 사무실을 열었다. 대중심리학에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결합하여 최초로 선전과 홍보에 이용했고 홍보를 과학으로, 산업으로 정립했다. 1923년에는 뉴욕 대학교에서 최초로 ‘홍보’라는 교과과정을 가르쳤고 최초의 PR 전문서인 『여론 정제(Crystallizing Public Opinion)』도 출간했다. 그는 거의 반세기 동안 435명의 의뢰인에게 PR 자문을 했는데, 의뢰인 명단에는 대통령부터 노동조합에 이르기까지 미국 정계, 재계, 교육계, 언론계, 문화예술계 등을 대표하는 유명 인사와 기업, 기관과 단체가 망라됐다. 1995년 3월 9일 103세에 세상을 떠났으며, 수많은 언론과 지식인들이 그를 ‘PR의 아버지’로 기렸다. 저서로 『프로파간다(Propaganda』, 『홍보(Public Relations)』, 『합의의 조작(The Engineering of Consent)』 등이 있다.
1891년 11월 22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출생했으며, 심리학자 지크문트 프로이트의 조카(친조카 겸 처조카)이다. 곡물상으로 성공한 아버지 일라이 버네이스는 프로이트의 아내인 마사 버네이스의 오빠이고, 어머니 안나 프로이트는 프로이트의 여동생이다. 한 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 뉴욕으로 건너갔으며, 아버지의 뜻에 따라 코넬 대학교에서 농학을 전공했다. 1912년 대학을 졸업하고 뉴욕시상품거래소에서 곡물 유통 업무를 하다가 그만두고 친구의 의학 잡지사에서 기자로 일하며 홍보(PR) 업무를 시작했는데, 언론 대행인으로서 여러 문화 행사를 성공리에 이끌었다. 제1차 세계대전 때는 연방공보위원회(CPI)에 발탁되어 독일 등에 맞서 뛰어난 선전 전략을 펼쳤다.
전후 1919년에는 뉴욕에서 최초로 ‘PR 고문’이라는 직함을 달고 PR 전문 사무실을 열었다. 대중심리학에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결합하여 최초로 선전과 홍보에 이용했고 홍보를 과학으로, 산업으로 정립했다. 1923년에는 뉴욕 대학교에서 최초로 ‘홍보’라는 교과과정을 가르쳤고 최초의 PR 전문서인 『여론 정제(Crystallizing Public Opinion)』도 출간했다. 그는 거의 반세기 동안 435명의 의뢰인에게 PR 자문을 했는데, 의뢰인 명단에는 대통령부터 노동조합에 이르기까지 미국 정계, 재계, 교육계, 언론계, 문화예술계 등을 대표하는 유명 인사와 기업, 기관과 단체가 망라됐다. 1995년 3월 9일 103세에 세상을 떠났으며, 수많은 언론과 지식인들이 그를 ‘PR의 아버지’로 기렸다. 저서로 『프로파간다(Propaganda』, 『홍보(Public Relations)』, 『합의의 조작(The Engineering of Consent)』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