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 리더십』은 다산 정약용 선생의 명저인 목민심서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책으로서, 지도자적 소임을 감당하고자 하는 사람을 위한 정약용 선생의 생생한 가르침을 전해주는 책이다. 정치, 경제, 사회 등 다양한 분야의 지도자들의 사례를 제시함으로써, 까다롭고 생소한 목민심서를 쉽고 흥미 있게 읽을 수 있게 하였다. 정약용 리더십을 목민, 전인, 토종, 실용 리더십으로 이해하고, 바람직한 지도자상으로 목민심서형 지도자를 제시하였다.
Contents
1. 취임
01 스스로 직위를 구하지 않기
02 간소하게 부임하기
03 대중의 여망에 부응하기
04 직무에 대해 듣기
05 다스릴 방법 생각하기
06 업무 체제 갖추기
3. 공적 신분
13 목표와 비전 전파하기
14 법 지키기
15 관계 원만하게 하기
16 문서 간편하게 하기
17 비리 없게 거두기
18 궂은 일에 솔선하기
4. 백성 사랑
19 노인 봉양하기
20 어린이 사랑하기
21 외로운 사람 구제하기
22 죽은 사람 애도하기
23 환자 구호하기
24 재난 당한 자 구제하기
5. 인사 관리
25 구성원 관리하기
26 대중 통솔하기
27 적재적소에 기용하기
28 인재 발탁 양성하기
29 물정 살피기
30 공적 평가하기
6. 경제 문제
31 토지 제도 바르게 하기
32 세금 투명하게 징수하기
33 대출 제도 운용하기
35 공평하게 거두기
36 농업 중시하기
7. 규범 교육
37 올바른 제사의식 지니기
38 절도 있게 접대하기
39 가르쳐 교화하기
40 실제적 배움 중시하기
41 위계질서 확립하기
42 시험 제도 마련하기
8. 국방
43 병역 기피자 없게 하기
44 군사 훈련 강화하기
45 무기 관리하기
46 전술 전략 개발하기
47 비상사태에 대처하기
48 적의 침략 물리치기
9. 법률
49 사실 밝히기
50 신중 신속하게 판결하기
51 형벌 남용하지 않기
52 죄수에게 온정 베풀기
53 세력자의 횡포 막기
54 해로운 집단 단속하기
10. 환경 산업
55 산림 가꾸기
56 수자원 관리하기
57 건물 환경 개선하기
58 방위 시설 구축하기
59 도로 구비하기
60 도구 제작하기
11. 불황 위기 극복
61 물자 비축하기
62 넉넉한 사람이 나누기
63 규모 정하기
64 시스템 마련하기
65 대체 방안 찾기
66 정책 평가하기
12. 퇴임
67 언제든지 물러날 준비하기
68 청렴하게 물러나기
69 유임 청원하기
70 용서 구하기
71 목숨 바쳐 소임 다하기
72 사랑 남기고 떠나기
Author
정약용,김정진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대학자로, 호는 다산(茶山)이다. 1762년 경기도 광주부(현재의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서 출생하여 28세에 문과에 급제했다. 1789년 대과에 급제한 이후 정조의 총애를 받으며 관료 생활을 했다. 곡산부사, 동부승지, 형조참의 등의 벼슬을 지냈다. 문장과 유교 경학에 뛰어났을 뿐 아니라 천문, 과학, 지리 등에도 밝아 1793년에는 수원성을 설계하는 등 기술적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정조 승하 후 당시 금지되었던 천주교를 가까이한 탓으로 벽파의 박해를 받기 시작해 1801년(순조 1년)에 강진으로 귀양을 갔으며, 무려 18년에 걸친 귀양살이 동안 10여 권의 책을 저술하였다. 정약용은 나라의 정치를 바로잡고 백성들의 생활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을 학문적으로 연구하여 많은 저서를 남긴 조선 최대의 정치·경제학자이다. 1818년 귀양에서 풀려나 고향으로 돌아온 뒤 1836년 별세하기까지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죽은 후 규장각 재학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문도(文度)이다.
『목민심서(牧民心書)』, 『경세유표(經世遺表)』, 『흠흠신서(欽欽新書)』 등 500백여 권의 책을 썼다.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대학자로, 호는 다산(茶山)이다. 1762년 경기도 광주부(현재의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서 출생하여 28세에 문과에 급제했다. 1789년 대과에 급제한 이후 정조의 총애를 받으며 관료 생활을 했다. 곡산부사, 동부승지, 형조참의 등의 벼슬을 지냈다. 문장과 유교 경학에 뛰어났을 뿐 아니라 천문, 과학, 지리 등에도 밝아 1793년에는 수원성을 설계하는 등 기술적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정조 승하 후 당시 금지되었던 천주교를 가까이한 탓으로 벽파의 박해를 받기 시작해 1801년(순조 1년)에 강진으로 귀양을 갔으며, 무려 18년에 걸친 귀양살이 동안 10여 권의 책을 저술하였다. 정약용은 나라의 정치를 바로잡고 백성들의 생활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을 학문적으로 연구하여 많은 저서를 남긴 조선 최대의 정치·경제학자이다. 1818년 귀양에서 풀려나 고향으로 돌아온 뒤 1836년 별세하기까지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죽은 후 규장각 재학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문도(文度)이다.
『목민심서(牧民心書)』, 『경세유표(經世遺表)』, 『흠흠신서(欽欽新書)』 등 500백여 권의 책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