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위의 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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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12/09/17
Pages/Weight/Size 153*224*30mm
ISBN 9788992920766
Categories 인문 > 동양철학
Description
『논어』는 어떻게 식탁에 오르게 되었는가



송용준 교수와 가족들의 "논어"공부를 팟캐스트를 통해 일반에 공개하여 화제를 모았던 팟캐스트 [식탁 위의 논어]가 책으로 묶여 나왔다 송용준 교수와 가족들의 논어 강독은 2,500년 전의 공자가 제자들과 공부를 할 때 사용하던 ‘대화와 토론의 방식’을 그대로 따르는 듯하다. 전반적인 교안과 진행은 아버지인 송용준 교수가 맡고 있지만, 어머니의 재치있는 지적과 젊은 두 딸이 덧붙이는 현대적 해석 및 질문은 듣는 이의 흥미를 더욱 불러일으킨다.



그간 중국 고전의 번역에 상당한 업적을 쌓아온 송용준 교수는 금번 논어 번역에서도 단지 흥미로운 논어 해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논어"에 대한 충실한 번역과 해설을 부기했다.번역과 그 이면의 의미를 알 수 있게끔 했다.



무엇보다도 다른 책들과 뚜렷이 구분되는 이 책의 특성은 오디오 강의와 연계한 ‘팟캐스트 매치북’ 이라는 점에 있을 것이다. 『식탁 위의 논어』각 편에는 오디오 강의 웹페이지로 연결되는 QR코드를 삽입하여 귀로 듣고 눈으로 읽는 원격 독서가 가능하도록 했다. 스마트폰으로 저자의 강의를 들으며 흥미와 의문점을 품은 후에 책을 통해 정리를 해도 되고, 책을 먼저 접하고 나서 강의를 들으며 현대적인 해석과 시사점을 고민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식탁 위의 논어'영상보기*클릭*
Contents
머리말 [논어]가 식탁에 오르기까지
[논어]를 읽기 전에 공자의 [논어], 왜 고전인가?

1. 학이편(學而篇)
너무도 당연한 가르침, 예(禮) / 배움을 청하는 귀한 손님, 붕(朋) / 각양각색, 군자(君子)의 의미 / 공자의 ‘인(仁)’이 가리키는 숨은 뜻 / 영주제의 기반, 효제(孝悌) 사상
의문에 싸인 “현현이색(賢賢易色)”의 의미 / 법(法)보다 효(孝), 가부장제 확립의 의지
동전의 양면, 예(禮)와 화(和) / ‘절차탁마(切磋琢磨)’의 진정한 뜻

2. 위정편(爲政篇)
북극성, 덕망 있는 군주의 상징 / 지천명(知天命), 하늘의 힘을 아는 분투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아는 앎

3. 팔일편(八佾篇)
군주 없는 중원을 근심하다 / 태산의 제례는 가볍지 않다 / 천하가 놓인 손바닥의 암시
왕손가의 속담을 물리친 공자 / 예를 물을 줄 아는 예 / “사부주피(射不主皮)”의 뜻
인신공양을 요구하는 무서운 토지신, 사(社)

4. 이인편(里仁篇)
인심 좋은 마을을 택하는 지혜 / 춘추시대 관용적 표현의 한 단면
백성을 떠나게 하는 정치 / 모호한 소인(小人)의 의미 / 부모의 곁을 지키는 도리

5. 공야장편(公冶長篇)
딸과 질녀, 서로 다른 사위의 조건 / “모른다”는 말의 속뜻
공자의 총애를 나타내는 “무소취재(無所取材)” / 공자의 제자 추천 전략
잠이 오면 잠을 자는 재여 / 내가 남이 될 수 있는가? / [논어]에 쓰인 성(性)의 뜻
자로의 걱정 / 공자의 맞춤형 교육 / 공자가 본 백이와 숙제
미생고(尾生高)의 ‘직(直)’에 대한 새로운 해석

6. 옹야편(雍也篇)
안회의 불천노(不遷怒) / 출신과 배경을 초월한 염옹
공자의 제자 사랑 / 송조의 아름다움이 불행을 가져온다?
아는 것, 좋아하는 것, 즐기는 것 / 인자(仁者)의 수명 / 노나라에 개혁이 이루어지면?
명실상부(名實相符)의 중요성

7. 술이편(述而篇)
“술이부작(述而不作)”, 공자의 신념 / 계발(啓發)의 주체는 누구인가?
제자를 훈도하는 공자의 독특한 방식 / 자공의 유도심문
[역경]은 언제 유가의 경전이 되었을까? / 교양 있는 춘추시대 사람들이 두루 쓰던 말
공자에게 스승이 있었을까? / 자로의 꼼수

8. 태백편(泰伯篇)
천하를 양보한 태백(泰伯) / 악(樂), 인격의 최종 단계
공자는 왜 우임금에 대한 평가에 소극적이었을까?

9. 자한편(子罕篇)
공자가 이(利)를 말하는 방식 / 공자가 마부를 택한 이유
공자의 호언장담 / 유가와 장례식 / ‘묘(苗)’와 ‘수(秀)’와 ‘실(實)’의 관계
겨울이 되어야 알 수 있는 것 / 근심은 어디서 오는가?
그리운 그대는 멀리 있지 않다

10. 향당편(鄕黨篇)
공자가 식사 때 침묵한 이유 / 자리에 앉을 때의 법도
사람과 말에 대한 공자의 태도 / 불사가행(不俟駕行), 신속히 부름에 응하다
공자의 암시적 교육 방법

11. 선진편(先進篇)
‘불급문(不及門)’에 대한 해석 / 공자의 안회(顔回) 사랑
질녀의 배우자감, 남용(南容) / 공자는 왜 안회를 자식처럼 대하지 못했다고 했을까?
공자에게 ‘섬김’이란 무슨 의미였을까? / 자로를 위한 공자의 변명
공자는 왜 증삼을 아둔하다고 했을까? / 공자의 제자 배려
공자가 “말 잘하는 사람이 싫다”고 말한 이유

12. 안연편(顔淵篇)
공자의 ‘극기복례(克己復禮)’에 숨은 뜻 / 신뢰, 국가 존립의 근거
자로의 결단과 실천

13. 자로편(子路篇)
인재를 알아보는 눈 / 위정자는 다만 덕을 쌓을 뿐 / 교육, 사회의 초석
도둑질을 한 아비도 아비다

14. 헌문편(憲問篇)
덕(德)의 함의 / 어떤 사람이 결국 천하를 얻었을까?
신중을 기한 외교문서 작성 / 가신의 그릇과 대부의 그릇
대부 장손흘의 요구는 정당한 것인가? / 관중에 대한 공자의 평가 / 명분을 위한 청
신뢰하되, 맹신은 말라 / 천리마의 덕(德)은 혈통에서 오지 않는다
[논어]에 엿보이는 도가사상 / 뜻이 좌절된 공자의 탄식
깊은 강을 건널 때는 옷을 벗고

15. 위영공편(衛靈公篇)
전쟁을 묻는 위나라를 떠나다 / 하나의 참된 이치로 세상을 꿰뚫다, 일이관지(一以貫之)
‘유(由)’와 ‘유야(由也)’의 차이 / 시대와 함께 성장한 [논어]
실인(失人)도 말고 실언(失言)도 말라 / 후세에 부끄럼 없는 삶
군이부당(群而不黨), 어우러지되 엉기지 않는다 / 평생을 두고 남의 입장을 헤아리다
배움과 사색 / 모두에게 열린 가르침

16. 계씨편(季氏篇)
공자가 본 천하의 흥망성쇠 / 물러날 때를 모르는 노욕

17. 양화편(陽貨篇)
‘흥(興), 관(觀), 군(群), 원(怨)’에 대한 풀이 / [시경]의 효용
예(禮)와 악(樂)의 본질 / 옛사람을 거론해 현시대를 비판하다
가르침을 거절하는 가르침 / 청개구리 제자, 재아
공자가 칭한 ‘여자(女子)’와 ‘소인(小人)’의 뜻

18. 미자편(微子篇)
공자의 출사(出仕)와 대우

19. 자장편(子張篇)
자하와 자장의 견해는 과연 달랐는가? / 규범에 대한 집착을 경계하다
격식과 근본 / 학문은 출사(出仕)의 유력한 무기
자장에 대한 증자의 평가 / 겉잡을 수 없는 악평의 파급효과

20. 요왈편(堯曰篇)

가족 후기 [논어] 공부를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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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송용준
기원전 551년 노(魯)나라 창평향(昌平鄕) 추읍(?邑)에서 아버지 숙양홀(叔梁紇)과 어머니 안씨(顔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태어나면서부터 정수리가 움푹 들어가 둘레가 언덕처럼 솟아 있어 이름을 구(丘: 언 덕 구)라고 했다. 3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17살 때 어머니를 여의었으며, 19살 때 송나라 출신 여인과 혼인했다. 20살 때부터 계씨(季氏) 가문의 창고지기로 일했고 가축 사육일도 맡았지만 학문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48살 때 정치에서 물러나 본격적으로 제자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3년 뒤 양호가 망명하면서 중도(中都)를 다스리는 책임을 맡았고 다시 사공(司空) 벼슬과 대사구(大司寇) 벼슬을 지냈다. 기원전 497년 이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다가 기원전 484년 노나라로 돌아왔다. 기원전 479년 73살 때 세상을 떠나 노나라 도성 북쪽 사수泗水(언덕)에 묻혔다.
기원전 551년 노(魯)나라 창평향(昌平鄕) 추읍(?邑)에서 아버지 숙양홀(叔梁紇)과 어머니 안씨(顔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태어나면서부터 정수리가 움푹 들어가 둘레가 언덕처럼 솟아 있어 이름을 구(丘: 언 덕 구)라고 했다. 3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17살 때 어머니를 여의었으며, 19살 때 송나라 출신 여인과 혼인했다. 20살 때부터 계씨(季氏) 가문의 창고지기로 일했고 가축 사육일도 맡았지만 학문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48살 때 정치에서 물러나 본격적으로 제자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3년 뒤 양호가 망명하면서 중도(中都)를 다스리는 책임을 맡았고 다시 사공(司空) 벼슬과 대사구(大司寇) 벼슬을 지냈다. 기원전 497년 이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다가 기원전 484년 노나라로 돌아왔다. 기원전 479년 73살 때 세상을 떠나 노나라 도성 북쪽 사수泗水(언덕)에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