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서 ‘모던 걸’은 자기 시대의 전위로서 모던 걸이라기보다 이제 보통 명사화된 1920년대 메트로폴리스의 신여성 현상에 분석을 한정하고자 한다. 신여성을 하나의 ‘현상’으로 접근하고자 한 것은 그들이 과거분사처럼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이미지, 정보, 소문, 담론을 통해 재현되고 재해석을 거치면서 구성된다는 의미에서다. 특정한 현상으로서 진정한 원본 신여성이 있고 그들의 사본으로서 모방하는 신여성이 별개로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근대 시기의 신여성 담론은 ‘어떤 방식으로든지’ 당대의 남성 지배체제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여성들에 관한 이야기다. 그들은 남성 지배체제에 노골적으로 혹은 은밀하게 공모하면서도 일탈했고, 충성하면서도 배신했으며, 협력하면서 저항했다. 이와 같은 모순적인 양가성의 층위를 동시적으로 들여다본다면,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를 내재화하고 그것에 공손하게 복종한 여성들에게서도 무의식으로 드러나는 젠더 정치성을 찾아낼 수 있고 그 역도 또한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유사 이래 억압받고 억눌려 산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여성들이 남성지배의 역사에 복종하면서 수동적인 희생자 역할에 만족했던 적은 거의 없었다.
담론으로 재현된 신여성들이 보여준 노골적이면서도 은밀하고 무의식적인 가면(masquerade)전략에 주목한다면, 기존의 관점과 차별화되는 분석이 가능할 수 있다. 기존의 다수 선행연구는 교육받은 여성으로서 각성된 ‘진정한’ 신여성 혹은 의식의 각성은 없으면서도 신여성의 겉모습만 흉내 내고 가장하는 모던 걸로 여성을 위계화해왔다. 이 글은 ‘진정한’ 신여성을 미메시스 하는 ‘모단 걸’들을 그런 분류로부터 구출하고자 한다. 신여성 안에 다양하고 다채로운 여성‘들’이 동시에 존재한다면 ‘진정한’ 원본 신여성을 특정하기란 어렵다. 신여성의 실체를 고착화하는 대신 ‘신여성 현상’이라고 지칭한 것은 재현된 담론으로서 신여성을 의미하고자 함이다
Contents
서론
익숙하고 낯선 신여성 현상
참정권 운동과 공적 ‘공간의 침입자’들
1장 근대성과 젠더
메트로폴리스의 퀴어 공간들
근대적 정동의 젠더화
근대적 시공간의 젠더화
근대적 남성 히스테리: 포탄 충격
감각의 위계화와 시각의 젠더 정치
근대적 복장의 정치(1): 댄디즘과 동성애
근대적 복장의 정치(2): 신여성과 크로스드레싱
근대적 사피즘과 퀴어성
주인 없는 땅
사피즘과 ‘다른’ 양성성
젠더 이주 공간으로서 『올랜도』
『고독의 우물』과 퀴어 멜랑콜리아
5장 히스테리 페미니스트
근대적 증상으로서 히스테리 여성들
안나 O의 개인극장
도라의 유혹적인 열쇠
새로 태어난 여성
히스테리 여성 분석가가 되다: 카렌 호나이
6장 붉은 정의의 혁명 전사들
붉은 혁명 전사 알렉산드라 콜론타이
여성 문제의 사회적 기초
날개 달린 에로스와 붉은 사랑
경성의 콜론타이 허정숙
마무리
Author
임옥희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에서 2021년까지 가르쳤다. 경희대학교에서 버지니아 울프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2000년 이후 여성문화이론연구소에서 동료들과 함께 페미니즘 관련한 이론·연구·실천 작업을 해오고 있다. 이들과 함께 여자들의 이야기 공동체를 만들어 가고자 한다. 저서로 『채식주의자 뱀파이어』, 『젠더 감정 정치』, 『메트로폴리스의 불온한 신여성들』, 『팬데믹 패닉 시대, 페미-스토리노믹스』 등이 있다.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에서 2021년까지 가르쳤다. 경희대학교에서 버지니아 울프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2000년 이후 여성문화이론연구소에서 동료들과 함께 페미니즘 관련한 이론·연구·실천 작업을 해오고 있다. 이들과 함께 여자들의 이야기 공동체를 만들어 가고자 한다. 저서로 『채식주의자 뱀파이어』, 『젠더 감정 정치』, 『메트로폴리스의 불온한 신여성들』, 『팬데믹 패닉 시대, 페미-스토리노믹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