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신의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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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18/07/16
Pages/Weight/Size 152*223*20mm
ISBN 9788991428256
Categories 인문 > 서양철학
Description
“이 책은 그리스도교 세계가 가장 불편하게 여기는 책이 될 것이다.”
볼테르, 광신으로 얼룩진 그리스도교를 고발하다!
한국의 그리스도교는 볼테르의 비판에서 자유로운가?


그리스도교 세계에서 볼테르만큼 미움을 산 작가는 없을 것이다. 일종의 적그리스도로 간주되었다. 그는 서양의 사상가 중에서 그리스도교에 가장 비판적이었다. 다양한 장르의 저작에는 그리스도교에 대한 비판과 조롱, 풍자가 넘쳐난다.
볼테르는 평생 종교적 광신에 맞서 싸웠다. 광신은 악을 생성시킬 뿐 아니라 범죄를 저지르게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 책에서 그리스도교에 대한 폭넓은 검토를 통해, 신앙의 뿌리인 성경의 반역사성과 허구성을 폭로하고, 순교와 박해, 기적 같은 교회의 기록과 전승은 과장되거나 조작, 왜곡된 경우가 많다고 고발한다. 따라서 광신으로 얼룩진 그리스도교는 ‘허구와 조작으로 쌓아올린 신앙체계’일 뿐이며, “양식과 덕성을 갖춘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리스도교에 반감을 가지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결론 내린다.
당연히 이 책은 ‘그리스도교 세계가 가장 불편하게 여기는 책’이 되었다. 출간 후 금서로 지정되었지만, 지금까지 ‘그리스도교를 이성적, 논리적으로 비판하는 고전적 전범’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에 국내에 처음 번역, 소개한다는 면에서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Contents
머리말/5
I
1장 모세서·19/2장 모세라는 인물·22/3장 유대서에 부여된 신성·28/4장 모세오경의 저자는 누구인가?·30/5장 유대인은 다른 민족들에게서 무엇을 빌려왔을까?·35/6장 창세기·38/7장 유대인의 풍습·41/8장 유대인의 풍습: 왕정 시대 및 판관 시대, 그리고 로마인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되기까지·46/9장 예언자들·52

II
10장 예수라는 인물·61/11장 예수와 그의 제자들을 어떻게 인식해야 할까?·74/12장 그리스도교의 성립-특히 바울로라는 인물을 중심으로·77/13장 복음서·86/14장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은 로마인을 어떻게 대했을까. 그리고 어떻게 그들은 시빌라의 예언(탁선)을 위조해냈을까?·95/15장 그리스도교인들은 유대교도를 어떻게 대했을까? 예언자들에 대한 황당무계한 설명·101/16장 복음서에 내재된 잘못된 인용과 잘못된 예언·105/17장 세상의 종말과 새로운 예루살렘·108/18장 알레고리(비유, 예표)·112/19장 위조와 위서·114

III
20장 초기 그리스도교인의 주요 기만행위·121/21장 그리스도교 초기 몇 세기 동안 그리스도교인의 교리와 형이상학-유스티누스·129/22장 테르툴리아누스·133/23장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140/24장 이레네우스·145/25장 오리게네스의 삼위일체론·148/26장 순교자들·155/27장 기적·169

IV
28장 디오클레티아누스 시대에서 콘스탄티누스 시대까지의 그리스도교인·177/29장 콘스탄티누스·186/30장 콘스탄티누스 이전 및 그의 치하에서 그리스도교인의 분쟁·190/31장 아리우스주의와 아타나시우스주의·194/32장 콘스탄티누스의 아들들, 그리스도교인들이 “배교자”라는 별명을 붙인 철학자 율리아누스·201/33장 율리아누스에 대한 고찰·210/34장 테오도시우스 시대까지의 그리스도교인·214/35장 이슬람교의 성립까지 그리스도교의 여러 종파와 그리스도교인의 불행·219/36장 교황들의 횡포에 대한 간략한 서술·223/37장 그리스도교 박해의 잔혹성·226/38장 로마 가톨릭교회의 폐해·232

결론/236
편지: 볼링브룩 경이 콘즈버리 경에게·243/콘즈버리 경이 볼링브룩 경에게/252
이 책에 대한 간략한 해설: 광신과 불관용에 맞선 지적 투쟁/256
찾아보기/263
Author
볼테르,고선일
18세기 계몽주의를 대표하는 철학자이자, 시인, 극작가, 비평가, 역사가인 다재다능한 작가 볼테르(필명)는 ‘프랑수아 마리 아루에(Franois Marie Arouet)’라는 이름으로 1694년 11월 21일 파리에서 태어났다. 유복한 공증인의 아들로 태어난 볼테르는 열 살에 예수회가 운영하던 루이 르그랑(Louis le Grand) 학교에 들어가는데, 이 학교에서 금세 두각을 드러내고 평생 이어갈 교유관계들도 형성한다. 한편, 열두 살이 되었을 때 대부(代父)인 샤토뇌프 신부가 그를 쾌락주의적이고 무신론적인 귀족들과 시인들이 모이는 ‘탕플(Temple)’이라는 문학 살롱에 데리고 간다. 17세에 루이 르그랑 학교를 떠나면서 아버지에게 문인이 되고 싶다고 말하지만 아버지는 이에 반대하며 법조계를 택하라고 강경하게 권한다. 그래서 법학 대학에 등록은 하지만 탕플을 계속 드나들면서 사치와 방탕을 선망한다.

이후에도 소(Sceaux)성(城)의 문학 살롱을 드나들면서 재기를 발휘하며 문학적 재능을 증명해 보이던 그는 청년 시대에 섭정 오를레랑 공을 풍자한 시의 작자로 간주되어 바스띠유에 갇혔다가 출옥한 뒤, 볼떼르란 필명으로 24세라는 아주 이른 나이에 『오이디푸스(Oedipus)』(1718)라는 비극 작품으로 유명해진다. 그 시대의 많은 작가들이 그렇듯 볼테르도 존중받는 장르였던 비극과 시로써 작품 활동을 시작했던 것이다. 작가로서의 볼테르는 비극 작품들과 서사시, 역사물 등을 통해 빠른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이런 작품들은 오늘날에는 별로 읽히지도 않거니와 잘 알려져 있지도 않다.

반면, 나중에 재미삼아 쓰고 익명으로 출간한 콩트들이 오늘날까지 매우 잘 알려져 있다. 그중 가장 많이 읽히고 널리 알려진 작품은 『캉디드(Candide, ou l'Optimisme)』(1759), 『자디그(Zadig, ou la Destinee)』(1748), 『랭제뉘(L'Ingenu)』(1767)다. 디드로의 『백과전서』 집필에도 참여하는 등 철학자로서, 작가로서, 행동하는 양심으로서 평생 왕성한 활동을 벌인 볼테르는 84세까지 장수를 누렸지만, 프랑스대혁명은 보지 못하고 1778년 5월 30일에 죽었다. 1791년에는 국가를 위해 큰 공헌을 한 인물들만 들어가는 팡테옹(Pantheon)에 안치된다.

프랑스 계몽기의 대표적 철학자로 꼽히는 볼테르는 프랑스의 지성사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종교적 광신주의에 맞서서 평생 투쟁했던 그는 관용 정신이 없이는 인류의 발전도 문명의 진보도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그의 저서들 속에는 당대의 지배적 종교 권력이었던 가톨릭에 대한 비판이 꾸준히 등장한다. 그의 생각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가 전통적 가치들의 토대인 기독교 정신을 무너뜨리려 하고, 풍기를 문란케 한다고 비난했다. 나이가 70세에 가까웠을 때는 그 유명한 ‘칼라스 사건’을 계기로 종교적 불관용의 희생자들을 변호하고 돕는 활동들을 사재를 털어가면서까지 적극적으로 벌여서 오늘날까지도 관용의 상징적 인물로 손꼽히고 있다. 그는 생전에는 대시인으로 대접받았지만, 그의 재능의 본질은 풍자 작가, 명쾌하고 기지에 찬 프랑스적 산문 작가의 전형에 있으며, 특히 철학적 에세이와 우화 소설에 뛰어났다. 이신론(理神論), 이성론의 입장에서 초자연을 강하게 부정하고 신랄하게 성서를 비판해, 후세에 그의 이름은 회의 정신의 상징이 되었다. 계몽주의의 보급을 통해 대혁명의 정신적 기반을 형성하는데 크게 공헌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철학의 간』(1734), 『깡디드』(1759), 『관용론』(1763), 『철학사전』(1764) 등이 있다.
18세기 계몽주의를 대표하는 철학자이자, 시인, 극작가, 비평가, 역사가인 다재다능한 작가 볼테르(필명)는 ‘프랑수아 마리 아루에(Franois Marie Arouet)’라는 이름으로 1694년 11월 21일 파리에서 태어났다. 유복한 공증인의 아들로 태어난 볼테르는 열 살에 예수회가 운영하던 루이 르그랑(Louis le Grand) 학교에 들어가는데, 이 학교에서 금세 두각을 드러내고 평생 이어갈 교유관계들도 형성한다. 한편, 열두 살이 되었을 때 대부(代父)인 샤토뇌프 신부가 그를 쾌락주의적이고 무신론적인 귀족들과 시인들이 모이는 ‘탕플(Temple)’이라는 문학 살롱에 데리고 간다. 17세에 루이 르그랑 학교를 떠나면서 아버지에게 문인이 되고 싶다고 말하지만 아버지는 이에 반대하며 법조계를 택하라고 강경하게 권한다. 그래서 법학 대학에 등록은 하지만 탕플을 계속 드나들면서 사치와 방탕을 선망한다.

이후에도 소(Sceaux)성(城)의 문학 살롱을 드나들면서 재기를 발휘하며 문학적 재능을 증명해 보이던 그는 청년 시대에 섭정 오를레랑 공을 풍자한 시의 작자로 간주되어 바스띠유에 갇혔다가 출옥한 뒤, 볼떼르란 필명으로 24세라는 아주 이른 나이에 『오이디푸스(Oedipus)』(1718)라는 비극 작품으로 유명해진다. 그 시대의 많은 작가들이 그렇듯 볼테르도 존중받는 장르였던 비극과 시로써 작품 활동을 시작했던 것이다. 작가로서의 볼테르는 비극 작품들과 서사시, 역사물 등을 통해 빠른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이런 작품들은 오늘날에는 별로 읽히지도 않거니와 잘 알려져 있지도 않다.

반면, 나중에 재미삼아 쓰고 익명으로 출간한 콩트들이 오늘날까지 매우 잘 알려져 있다. 그중 가장 많이 읽히고 널리 알려진 작품은 『캉디드(Candide, ou l'Optimisme)』(1759), 『자디그(Zadig, ou la Destinee)』(1748), 『랭제뉘(L'Ingenu)』(1767)다. 디드로의 『백과전서』 집필에도 참여하는 등 철학자로서, 작가로서, 행동하는 양심으로서 평생 왕성한 활동을 벌인 볼테르는 84세까지 장수를 누렸지만, 프랑스대혁명은 보지 못하고 1778년 5월 30일에 죽었다. 1791년에는 국가를 위해 큰 공헌을 한 인물들만 들어가는 팡테옹(Pantheon)에 안치된다.

프랑스 계몽기의 대표적 철학자로 꼽히는 볼테르는 프랑스의 지성사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종교적 광신주의에 맞서서 평생 투쟁했던 그는 관용 정신이 없이는 인류의 발전도 문명의 진보도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그의 저서들 속에는 당대의 지배적 종교 권력이었던 가톨릭에 대한 비판이 꾸준히 등장한다. 그의 생각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가 전통적 가치들의 토대인 기독교 정신을 무너뜨리려 하고, 풍기를 문란케 한다고 비난했다. 나이가 70세에 가까웠을 때는 그 유명한 ‘칼라스 사건’을 계기로 종교적 불관용의 희생자들을 변호하고 돕는 활동들을 사재를 털어가면서까지 적극적으로 벌여서 오늘날까지도 관용의 상징적 인물로 손꼽히고 있다. 그는 생전에는 대시인으로 대접받았지만, 그의 재능의 본질은 풍자 작가, 명쾌하고 기지에 찬 프랑스적 산문 작가의 전형에 있으며, 특히 철학적 에세이와 우화 소설에 뛰어났다. 이신론(理神論), 이성론의 입장에서 초자연을 강하게 부정하고 신랄하게 성서를 비판해, 후세에 그의 이름은 회의 정신의 상징이 되었다. 계몽주의의 보급을 통해 대혁명의 정신적 기반을 형성하는데 크게 공헌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철학의 간』(1734), 『깡디드』(1759), 『관용론』(1763), 『철학사전』(1764)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