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의 이름은 성, 자는 형운(亨運), 호는 홍재(弘齋)·탕탕평평실(蕩蕩平平室)·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홍우일인재(弘于一人齋) 등이다. 정조는 어린 시절부터 책 읽는 것을 매우 좋아하여, ‘안 본 책이 없을’ 정도로 지독한 독서광이었다. 왕위에 오른 뒤에는 평범한 군주가 되는 것을 거부하며, 세도(世道)와 풍속을 바로잡아 한 세상의 치화(治化)를 새롭게 하려는 원대한 포부를 가지고 있었다. 당쟁을 혁파하고 인재를 고루 등용함으로써 정국을 일신하는 데 힘을 기울였으며, 경제를 안정시키고 문예를 부흥시키는 정책을 써서 조선을 민생이 안정된 문화 국가로 만들려 하였다. 또한 군사(君師 : 임금이면서 스승)로 자처하여 정치적으로나 학문적으로 주도권을 행사하였으며, 효성도 지극하여 이에 관해 많은 일화를 남기고 있다.
정조에게는 다양한 수식어가 따라붙는데, 호학 군주, 계몽 군주, 개혁 군주, 천재 군주, 실용 군주, 애민 군주, 문화 군주, 심지어 무인(武人) 군주 등이 그것이다. 그만큼 정조는 다방면에 걸쳐서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였다. 그 가운데 정조를 가장 잘 대변하는 말은 ‘호학(好學)’이다. 정조는 당시 그 어떤 학자들보다 학문과 독서에 힘을 쏟았으며, 그것을 말(言)과 행동(行)으로 적극 실천하였기 때문이다. 『일득록』에 기록된 정조의 언행(言行)도 그 근본을 따져 보면, 모두 치열한 학문과 독서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들이다.
정조는 평소 자기 자신을 반성적으로 성찰하는 데도 매우 적극적이었다. 그래서 세손 시절부터 날마다 일기를 쓰며, 하루하루의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는데, 이것이 『존현각일기(尊賢閣日記)』이다. 이 일기는 훗날 즉위한 뒤 『일성록(日省錄)』으로 발전하였다. 일기가 자기 스스로의 눈으로 자기를 살피는 것이라면, 신하들로 하여금 자기의 언행을 기록하게 한 『일득록』은, 자기의 눈으로 미처 살피지 못한 것을 신하들의 눈으로 살펴서 반성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와 같은 철저한 자기반성은 치열한 학문 자세와 함께, 정조를 오늘의 정조이게 한 토대가 되었다.
『일득록』은 정조 7년(1783) 규장각 직제학 정지검(鄭志儉)의 건의로 처음 시작되었는데, 규장각 신하들이 평소 보고 들었던 것을 그때그때 기록해 두고, 연말에 그 기록들을 모으고 편집하여 규장각에 보관하였다가, 나중에 책으로 엮은 것이다. 정조는 이 책을 편집하게 한 의도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