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무게는 말이 아니라 끌어안아주는 것임을 보이셨고, 맑고 깨끗한 음성으로 백발의 노인이 될 때까지 스스로를 내려놓으시며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갖고 모든 사람의 밥이 되기를 원하셨던 분. 스스로를 바보라 칭하며 언제나 나눔을 실천하셨던 김수환 추기경. 그는 늘 존경받았으나 고독했고, 늘 사랑받았으나 외로웠다.
이 책은 각종 역사적 기록, 사건, 자료를 바탕으로 김수환 추기경이 가지고 있었던 생각들과 고민들 그리고 그가 써내려간 주옥같은 시와 에세이들을 통해 그의 문학적 감수성 및 개인사를 엿볼 수 있다. 이를 통해 독자들에게는 김수환 추기경에 관한 향수와 감성을 불러일으키고 앞으로 우리 시대 김수환 추기경은 어떠한 의미로 인식되어야 하는가를 짐작해 볼 수 있다. 또한 이어령의 추천사를 시작으로 김수환 추기경에게 보내는 법정스님, 김지하 시인, 신달자 시인, 박노해 시인, 한승원 소설가의 시와 서신도 감상할 수 있다.
Contents
이어령 추천사
이해인 수녀 추도시
제1장 바보의 고백
고독
사제 서품식
루르드 동굴 아래서
니체를 좋아한 여인
어떤 질문
마음속의 불덩이
나의 기도
어머니의 바람
밀알 한 알
포화 속으로
평화
고해
수도자 그대는
인생덕목
봉헌기도
제2장 바보의 한숨
가을이 오면
희망엽서
사랑하는 법
사랑
사람다움
인생의 의미
사랑의 육화
진정한 사랑
사랑점수
성공의 다른 면
조건없는 사랑
일보후퇴
침묵은 밤이다
인생의 가치
사랑이 없으면 삶은 빈 껍질
하느님의 사랑에 응답할 것인가
삶의 목적
삶의 의미
김수환 추기경과의 대화
제3장 말할 수 없는 이야기
광대와 불타는 마을
영원히 남는 것
생이지지(生而知之)
반성
고름 짜기
마음의 병
초개(草芥)
가슴 없는 사랑
자유
고독과 소외
스승님의 질문
인간관계
현인, 강자, 부자
기다림
자신(自信)
평화를 위한 나의 기도
생명의 빛
독일 어떤 노인의 시
행복의 조건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제4장 하늘에서 온 편지
벼랑에 선 사람들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시대유감(時代有感)
천상적인 햇살
돈만 있으면
말 한마디
이대로 계속될 수는 없다
공동선(共同善)
행복의 일곱 가지 조건
보다 밝은 내일을
자기 이름을 상실한 사람들
이 땅에 평화를 주소서
빛이 되는 사람들
빛과 소금
강
등불
제5장 별이 된 바보에게
님 │김지하
그리운 당신의 워낭소리│신달자
거룩한 바보│박노해
이 땅의 빛과 소금으로│한승원
김수환 추기경을 보내며│법정
Author
김수환,김영애
1922년 대구에서 태어나 1951년 사제품을 받았다. 안동천주교회 주임(1951), 김천 성의중고등학교장(1955), 주간 가톨릭시보사 사장(1964)을 거쳐 1966년 44세 때 마산교구장으로 임명됐으며, 1968년 제12대 서울대교구장으로 임명되면서 대주교가 되었다. 1969년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한국 최초의 추기경이 되었다. 1998년 서울대교구장에서 물러나 2009년 2월 16일 87세를 일기로 선종했다.
‘교회는 가난한 이들의 눈물을 닦아 주어야 한다’는 믿음으로 평생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해 살아온 추기경은 한국 사회의 정신적인 지도자이며, 사상가이자 실천가였다. 김수환 추기경은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라는 자신의 사목 표어처럼 ‘세상 속의 교회’를 지향하면서 현대사의 중요한 고비마다 종교인의 양심으로 바른 길을 제시해왔다. 추기경으로서의 삶은 그에게 영광인 동시에 ‘행복한 고난’이었다. 하지만 그는 평소 세상에 태어나 가장 잘한 일로 ‘신부가 된 것’을 꼽았고, “나는 행운아였다”라고 고백할 만큼 이 시대의 가장 사랑받은 목자였다. 평생을 나눔과 사랑의 사회활동을 통해 항상 살아 있는 시대정신을 보여주었다.
한국사회의 정신적 지도자이자 사상가, 실천가로 여전히 우리 마음속에 남아 있다.
1922년 대구에서 태어나 1951년 사제품을 받았다. 안동천주교회 주임(1951), 김천 성의중고등학교장(1955), 주간 가톨릭시보사 사장(1964)을 거쳐 1966년 44세 때 마산교구장으로 임명됐으며, 1968년 제12대 서울대교구장으로 임명되면서 대주교가 되었다. 1969년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한국 최초의 추기경이 되었다. 1998년 서울대교구장에서 물러나 2009년 2월 16일 87세를 일기로 선종했다.
‘교회는 가난한 이들의 눈물을 닦아 주어야 한다’는 믿음으로 평생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해 살아온 추기경은 한국 사회의 정신적인 지도자이며, 사상가이자 실천가였다. 김수환 추기경은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라는 자신의 사목 표어처럼 ‘세상 속의 교회’를 지향하면서 현대사의 중요한 고비마다 종교인의 양심으로 바른 길을 제시해왔다. 추기경으로서의 삶은 그에게 영광인 동시에 ‘행복한 고난’이었다. 하지만 그는 평소 세상에 태어나 가장 잘한 일로 ‘신부가 된 것’을 꼽았고, “나는 행운아였다”라고 고백할 만큼 이 시대의 가장 사랑받은 목자였다. 평생을 나눔과 사랑의 사회활동을 통해 항상 살아 있는 시대정신을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