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들은 하(夏)나라가 있었다고 믿지만 하나라는 실체가 없다. 중국의 실질적인 최초의 왕조는 은나라다. 은나라의 지배종족이 동이족이었고 이는 중국에서도 알 만한 사람은 알고 있는 일이다. 그런데 황제(黃帝)가 신농의 후손인 유망을 격파한 의미를 제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드문 것 같다. 황제와 유망의 관계는 황제는 정복자고 유망은 정복당한 원주민의 관계다. 중국이 자랑하는 황제의 실체가 이같이 외래 종족이다. 중국 최초의 왕국인 은나라가 동이고, 은나라를 멸망시킨 주나라는 동이의 일파인 서이고, 중국 최초의 통일왕조 역시 북방유목민 출신인 진나라다. 중국의 중세사도 비슷하다. 오호십육국, 남북조시대뿐 아니라 수나라와 당나라도 이민족이다. 원나라 청나라가 이민족임은 누구나 알고 있는 일이고. 사실은 남북조시대 다음의 송나라도 이상하다. 조광윤은 선비족의 나라인 후주의 세종에게 나라를 물려받았는데 조광윤 자신도 후주의 왕실과 혼맥이 어지럽게 얽힌 인물이다. 결국 중국의 지배종족은 모두 북방유목민족이었던 것이다. 지배종족의 권리 중 하나가 여자를 차지하는 것이다. 당연히 후손도 많이 남긴다. 그 후손들은 누구의 자손인가? 지금 중국은 중화민족주의를 그렇게 강조하면서도 자기네 유전자 지도를 만들지 않는다. 그 기막힌 내력도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Contents
〈하권〉 중국본색
6장 요순 본색 467
1. 요순시절의 진실 472
삼황오제, 후계자 다툼, 순의 등장, 자매를 취한 임금들
2. 단주의 반란 483
3. 은나라 사람들 488
하나라, 나라 이름, 종족, 세력, 문화, 농업, 형벌
4. 기자와 기자조선 502
세 충신, 聖人이 된 기자, 무왕과 기자의 이동거리,
홍범구주, 『상서』의 내력, 전설의 탄생
5. 나라 이름 朝鮮 514
기록 속의 조선, 와전의 과정, 허망한 공상
6. 정도전과 송시열의 조선 521
7. 周 왕실의 족보 525
오제의 족보, 주왕실 족보, 서방 농업의 신
8. 강태공의 정체 534
강태공의 나이, 양치는 무리, 문왕의 점
9. 周의 강역 541
晉 秦 燕, 오나라와 초나라
7장 중국고대사의 진실 549
1. 고대의 성인들 553
2. 황제와 치우 559
호칭의 실체, 『산해경』의 황제와 치우
3. 황제의 족보 567
4. 한자의 창제 571
그림과 기호, 은나라 시대의 한자 발전
5. 염황지손 577
황제의 무덤, 염황지손의 탄생, 신농이 염제가 된 배경,
묘족의 반발
6. 묘족의 전설 586
새가 되려던 사람들, 麻의 전래, 중화삼조당
7. 다른 발명품들 594
전설의 허구, 한의학의 시작, 의관에 대하여, 검의 유래
8. 두 개의 깃털과 높은 곳의 여성 604
9. 『산해경』 610
역사, 평가, 저자에 대한 연구, 샤먼의 경전, 해경과 대황경
10. 제와 제준 623
제의 성격, 제준의 아내들, 제준의 위상
11. 초나라 사람들 631
초백서, 초나라의 지배종족, 산해경도
8장 중국의 자존심 637
1. 한무제의 등극 641
여태후의 보복, 권력 장악, 효문제 유항, 아교와 임강왕
2. 선대의 유산 657
토사구팽, 성군 효문제, 오초7국의 난, 양효왕의 사망
3. 봉선 667
역법 제정, 봉선의 사례, 방사들의 사기극, 鼎의 전설,
봉선 준비, 봉선 이후
4. 무제의 세 신하 682
장탕, 급암, 공손홍
5. 흉노와의 전쟁 693
흉노의 위세, 불운의 이광, 대장군 위청, 위청과 곽거병 6. 당시의 경제 705
재정의 고갈, 재정의 충당, 관리들의 행로
9장 공자가 성인聖人이 되기까지 715
1. 초년시절 721
조두예용, 노자와의 관계, 상중의 음주, 제나라에 갔던 일
2. 협곡회제 728
전말, 노나라 집권세력, 제나라 사정
3. 망명 736
동기, 타삼도, 文의 자부심, 공자의 도, 14년 만의 귀향
4. 노나라를 구한 자공 748
5. 『시경』 해석 753
관저, 공자의 禮, 이상론의 확장
6. 맹자의 호연지기 761
맹자의 仁, 맹자의 순임금 사랑, 儒家로서의 맹자
7. 묵자와 장자 769
8. 순자의 두 제자 773
9. 재여문오제덕 779
장례의 역사, 황제의 삼백년
10장 혈통 삼국지 787
1. 인류의 시작 792
자바원인, 북경원인, 주먹도끼와 대륙간의 자존심,
일본의 수모, 필트다운의 뼛조각, 진화의 기원,
네안데르탈의 유전자, 네안데르탈의 멸종
2. 중국인의 혈통 810
오제 이전의 시대. 오제 이후의 시대. 투루크의 활약,
수나라 당나라의 혈통, 위구르, 기구한 운명의 송나라,
7.7% 유전자
3. 한국인의 혈통 827
고인돌의 통로, 한국인의 얼굴, 허황옥 이야기
11장 상실의 시대 839
1. 동북아의 지도 841
숭정제와 이자성, 청나라의 영토 확장, 유조변의 소멸
2. 손문 852
신해혁명까지, 좌충우돌
3. 장개석 865
장제스의 대두, 초공작전, 장제스와 장쉐량
4. 손문과 장개석의 여인들 875
쑨원과 쑹칭링, 장제스와 쑹메이링
5. 모택동 885
홍군 시절, 문화혁명으로 가는 길, 펑더화이와 린뱌오의 운명
6. 습근평 시대 896
만리장성과 소수민족, 중국의 꿈, 인재 확보, 중국의 물 문제,
중국의 민주화운동, 2030 위기설
참고문헌 917
본문색인 919
Author
박영규
1978년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하고 KBS에 들어간다. 그로부터 20여년을 주로 교양 프로그램을 담당하며 각 분야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세상의 다양한 분야를 조금씩 알게 되지만 그 중 어느 하나에도 깊이 있는 지식을 갖추지는 못한다. 21세기는 빠르게 변하는 격변의 시기였다. 아무 준비 없이 50대의 나이에 야생에 방생된 저자는 별다른 몸부림도 치지 못하고 시간 부자가 되었다. 여기저기 도서관을 전전하던 저자가 우루크의 왕 엔메르카르가 인안나를 자그로스 산악지대에서 메소포타미아로 모셔왔다는 수메르 사람들의 서사시를 보게 된다. 이 서사시는 땅속에 묻혀있던 점토판의 기록을 수메르 학자들이 해독한 것이다. 그런데 그 중요성이 만만치 않다. 당시 저자는 환인의 하늘과 환웅의 삼위태백에 대해 어렴풋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단군신화에 나오는 마늘의 원산지가 자그로스 산악지대라는데 착안하여 환인이 있던 하늘이 우르미아 호수 부근이고 환웅의 삼위태백이 홍산 부근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카인과 아벨 이야기가 길을 막고 있었다. 농경민인 카인이 유목민인 아벨을 죽였기 때문에 유목민이 초원의 길을 따라 동방으로이동했을 것이라는 그의 가설이 힘을 받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카인의 이야기를 액면 그대로 믿을 수는 없었다. 옛날에는 농경민이 양이었고 유목민이 늑대였다. 그런데 어떻게 카인이 승리할 수 있겠는가? 그것이 작가의 의심이었지만 작가에게는 그 사실을 부정할 증거가 없었다. 그런데 드디어 증거가 나타난 것이다. 인안나가 그만큼 중요한 신이었기 때문이다. 수메르 사람들이 메소포타미아를 정복한 다음에는 여호와의 전신인 엔키가 최고의 신으로 등극하지만 그들이 메소포타미아로 이동하기 전에는 전쟁과 사랑의 신인 인안나가 최고의 신이었다. 그런데 우루크가 메소포타미아에서 세력을 잡은 다음에 우르미아 호수 부근의 산악지대에 사는 아라타 왕국에서 인안나를 빼앗아왔다는 것은 그들이 떠날 때에는 인안나를 빼앗을 힘이 없었다는 증명이다. 즉 카인으로 대변되는 농경민들은 에덴 동쪽을 떠날 때에는 유목민보다 세력이 약했던 것이다. 우루크가 데려간 인안나는 보석으로 장식한 동상이었고 살아있는 전쟁의 신 인안나는 초원의 길을 따라 동방으로 이동했다는 가설을 받칠 수 있는 강력한 증거가 등장했던 것이다. 저자는 그때의 심정이 금맥을 찾은 광산업자 같았다고 한다. 그는 한때 《내몸은 내가 고친다》는 책을 기획하여 공전의 베스트셀러로 만든 적이 있었다. 그때의 촉이 발동한 것이다. 하지만 한 권의 역사서를 만드는 일은 마음과는 달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에게는 사람도 없고 책도 없었다. 무엇보다 더 궁핍한 것은 역사에 대한 전문적 지식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생각을 제도권 교수에게 넘기고 싶은 생각도 굴뚝같았지만 그런 세계와는 이미 벽을 쌓고 살던 저자에게는 그것도 어려웠다. 다행이 그에게는 풍부한 시간이 있었고 대한민국에는 도서관들이 많았다. 하지만 저자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어떤 때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는데 글이 써지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것이 신의 가호 아닐까요? 그런 일이 있으면 서쪽 하늘을 보고 인안나의 별인 금성을 찾아보곤 했습니다. 동쪽으로 간 인안나를 서쪽 하늘에서 찾는 것이 우습긴 하지만요.” 그런 행운이 받쳐주었어도 10년 이상의 세월이 지났어야 했다. 저자는 이 책에 주(註)가 없는 것을 이렇게 말한다. “제가 꼼꼼하고는 담을 쌓은 사람이에요. 또 귀찮은 일을 싫어해요. 더 중요한 건, 사실 그렇게 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고요.”
그는 문헌의 출처를 일일이 기록하고 관리할 역량도 없었지만 애초부터 사람들이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싶었다는 것이다. 이는 그가 처음 《환단고기》를 만났을 때의경험에서 기인한다. 읽기가 매우 어려워 그때부터 쉽게 읽는 환단고기의 설명서를 만들겠다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공리주의를 신봉한다는 그는 이런 주장을 편다. “책을 만드는 마음은 내가 만든 책을 읽어주었으면 하는 사람들이 편하고 재미있게 읽고 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면 그게 다가 아닐까요? 작가나 책의 권위를 위한 책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물론 책이 많이 팔리면 좋겠지요. 하지만 권위 때문에 팔리는 것보다 친절해서 팔리는 게 더 좋잖아요.”
1978년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하고 KBS에 들어간다. 그로부터 20여년을 주로 교양 프로그램을 담당하며 각 분야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세상의 다양한 분야를 조금씩 알게 되지만 그 중 어느 하나에도 깊이 있는 지식을 갖추지는 못한다. 21세기는 빠르게 변하는 격변의 시기였다. 아무 준비 없이 50대의 나이에 야생에 방생된 저자는 별다른 몸부림도 치지 못하고 시간 부자가 되었다. 여기저기 도서관을 전전하던 저자가 우루크의 왕 엔메르카르가 인안나를 자그로스 산악지대에서 메소포타미아로 모셔왔다는 수메르 사람들의 서사시를 보게 된다. 이 서사시는 땅속에 묻혀있던 점토판의 기록을 수메르 학자들이 해독한 것이다. 그런데 그 중요성이 만만치 않다. 당시 저자는 환인의 하늘과 환웅의 삼위태백에 대해 어렴풋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단군신화에 나오는 마늘의 원산지가 자그로스 산악지대라는데 착안하여 환인이 있던 하늘이 우르미아 호수 부근이고 환웅의 삼위태백이 홍산 부근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카인과 아벨 이야기가 길을 막고 있었다. 농경민인 카인이 유목민인 아벨을 죽였기 때문에 유목민이 초원의 길을 따라 동방으로이동했을 것이라는 그의 가설이 힘을 받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카인의 이야기를 액면 그대로 믿을 수는 없었다. 옛날에는 농경민이 양이었고 유목민이 늑대였다. 그런데 어떻게 카인이 승리할 수 있겠는가? 그것이 작가의 의심이었지만 작가에게는 그 사실을 부정할 증거가 없었다. 그런데 드디어 증거가 나타난 것이다. 인안나가 그만큼 중요한 신이었기 때문이다. 수메르 사람들이 메소포타미아를 정복한 다음에는 여호와의 전신인 엔키가 최고의 신으로 등극하지만 그들이 메소포타미아로 이동하기 전에는 전쟁과 사랑의 신인 인안나가 최고의 신이었다. 그런데 우루크가 메소포타미아에서 세력을 잡은 다음에 우르미아 호수 부근의 산악지대에 사는 아라타 왕국에서 인안나를 빼앗아왔다는 것은 그들이 떠날 때에는 인안나를 빼앗을 힘이 없었다는 증명이다. 즉 카인으로 대변되는 농경민들은 에덴 동쪽을 떠날 때에는 유목민보다 세력이 약했던 것이다. 우루크가 데려간 인안나는 보석으로 장식한 동상이었고 살아있는 전쟁의 신 인안나는 초원의 길을 따라 동방으로 이동했다는 가설을 받칠 수 있는 강력한 증거가 등장했던 것이다. 저자는 그때의 심정이 금맥을 찾은 광산업자 같았다고 한다. 그는 한때 《내몸은 내가 고친다》는 책을 기획하여 공전의 베스트셀러로 만든 적이 있었다. 그때의 촉이 발동한 것이다. 하지만 한 권의 역사서를 만드는 일은 마음과는 달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에게는 사람도 없고 책도 없었다. 무엇보다 더 궁핍한 것은 역사에 대한 전문적 지식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생각을 제도권 교수에게 넘기고 싶은 생각도 굴뚝같았지만 그런 세계와는 이미 벽을 쌓고 살던 저자에게는 그것도 어려웠다. 다행이 그에게는 풍부한 시간이 있었고 대한민국에는 도서관들이 많았다. 하지만 저자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어떤 때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는데 글이 써지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것이 신의 가호 아닐까요? 그런 일이 있으면 서쪽 하늘을 보고 인안나의 별인 금성을 찾아보곤 했습니다. 동쪽으로 간 인안나를 서쪽 하늘에서 찾는 것이 우습긴 하지만요.” 그런 행운이 받쳐주었어도 10년 이상의 세월이 지났어야 했다. 저자는 이 책에 주(註)가 없는 것을 이렇게 말한다. “제가 꼼꼼하고는 담을 쌓은 사람이에요. 또 귀찮은 일을 싫어해요. 더 중요한 건, 사실 그렇게 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고요.”
그는 문헌의 출처를 일일이 기록하고 관리할 역량도 없었지만 애초부터 사람들이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싶었다는 것이다. 이는 그가 처음 《환단고기》를 만났을 때의경험에서 기인한다. 읽기가 매우 어려워 그때부터 쉽게 읽는 환단고기의 설명서를 만들겠다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공리주의를 신봉한다는 그는 이런 주장을 편다. “책을 만드는 마음은 내가 만든 책을 읽어주었으면 하는 사람들이 편하고 재미있게 읽고 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면 그게 다가 아닐까요? 작가나 책의 권위를 위한 책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물론 책이 많이 팔리면 좋겠지요. 하지만 권위 때문에 팔리는 것보다 친절해서 팔리는 게 더 좋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