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대학자 다산 정약용이 1821(순조 21년) 유배지 전라도 강진의 다산초당에서 완성한 저서로, 논리적이고 실제적인 수령(守令) 지침서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지방의 고을을 맡아 다스리는 수령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일들을 조목조목 짚어내어 자세하고도 예리하게 지시한다.
백성의 고통을 직접 살펴본 경제학자이자 문학의 대가였던 정약용은 사리사욕에만 급급한 당시의 수령들에게 백성이 편안하게 살도록 보살피는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 이 책을 저술했다. 그는 일찍이 수령을 지낸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실정을 본 경험을 바탕으로 매우 구체적이고 실제적 지침을 만들어냈고, 이는 조선시대 실학사상의 실제적인 연구 자료가 되고 있다.
비록 고전(古典)에 속하지, 고서(古書)이기 때문에 오늘날 실정에 부합되지 않고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다. 이 책은 오늘날 실정에 맞게 독자의 눈에 맞추어 풀어 내고 선별하여, 이름 그대로 '하룻밤에 읽을 수 있는' 교양서적으로 만들어졌다. 비록 조선시대 지방 수령들을 대상으로 쓴 책이지만 백성을 위하는 마음만큼은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에게도 큰 교훈이 될 것이다.
Contents
1. 부임 6조
1) 임명
2) 행장을 꾸림
3) 인사
4) 부임하는 길
5) 취임
6) 집무 시작
2. 율기 6조
1) 바른 몸가짐
2) 청렴한 마음
3) 집안을 다스림
4) 객(客)을 물리침
5) 절약
6) 기꺼이 베풂
3. 봉공 6조
1) 덕화를 폄
2) 법을 지킴
3) 예의로 교제함
4) 공문서
5) 세금
6) 출장
5. 진황 6조
1) 물자를 마련함
2) 부자에게 베풀기를 권함
3) 합리적인 진휼
4) 진휼의 계획과 시행
5) 백성의 살림에 보탬이 되는 방안
6) 일을 마침
6. 해관 6조
1) 교대
2) 떠날 때의 행장
3) 백성들이 머물기를 원함
4) 백성들이 용서하기를 빎
5) 임지에서 죽음
6) 덕을 기리는 것
부록 : 목민심서 서(序)
엮은이의 말
Author
정약용,이지영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대학자로, 호는 다산(茶山)이다. 1762년 경기도 광주부(현재의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서 출생하여 28세에 문과에 급제했다. 1789년 대과에 급제한 이후 정조의 총애를 받으며 관료 생활을 했다. 곡산부사, 동부승지, 형조참의 등의 벼슬을 지냈다. 문장과 유교 경학에 뛰어났을 뿐 아니라 천문, 과학, 지리 등에도 밝아 1793년에는 수원성을 설계하는 등 기술적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정조 승하 후 당시 금지되었던 천주교를 가까이한 탓으로 벽파의 박해를 받기 시작해 1801년(순조 1년)에 강진으로 귀양을 갔으며, 무려 18년에 걸친 귀양살이 동안 10여 권의 책을 저술하였다. 정약용은 나라의 정치를 바로잡고 백성들의 생활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을 학문적으로 연구하여 많은 저서를 남긴 조선 최대의 정치·경제학자이다. 1818년 귀양에서 풀려나 고향으로 돌아온 뒤 1836년 별세하기까지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죽은 후 규장각 재학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문도(文度)이다.
『목민심서(牧民心書)』, 『경세유표(經世遺表)』, 『흠흠신서(欽欽新書)』 등 500백여 권의 책을 썼다.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대학자로, 호는 다산(茶山)이다. 1762년 경기도 광주부(현재의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서 출생하여 28세에 문과에 급제했다. 1789년 대과에 급제한 이후 정조의 총애를 받으며 관료 생활을 했다. 곡산부사, 동부승지, 형조참의 등의 벼슬을 지냈다. 문장과 유교 경학에 뛰어났을 뿐 아니라 천문, 과학, 지리 등에도 밝아 1793년에는 수원성을 설계하는 등 기술적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정조 승하 후 당시 금지되었던 천주교를 가까이한 탓으로 벽파의 박해를 받기 시작해 1801년(순조 1년)에 강진으로 귀양을 갔으며, 무려 18년에 걸친 귀양살이 동안 10여 권의 책을 저술하였다. 정약용은 나라의 정치를 바로잡고 백성들의 생활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을 학문적으로 연구하여 많은 저서를 남긴 조선 최대의 정치·경제학자이다. 1818년 귀양에서 풀려나 고향으로 돌아온 뒤 1836년 별세하기까지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죽은 후 규장각 재학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문도(文度)이다.
『목민심서(牧民心書)』, 『경세유표(經世遺表)』, 『흠흠신서(欽欽新書)』 등 500백여 권의 책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