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오 그람시 옥중수고 이전

$21.60
SKU
9788986114372
+ Wish
[Free shipping over $100]

Standard Shipping estimated by Mon 06/3 - Fri 06/7 (주문일로부 10-14 영업일)

Express Shipping estimated by Wed 05/29 - Fri 05/31 (주문일로부 7-9 영업일)

* 안내되는 배송 완료 예상일은 유통사/배송사의 상황에 따라 예고 없이 변동될 수 있습니다.
Publication Date 2011/01/06
Pages/Weight/Size 148*210*30mm
ISBN 9788986114372
Categories 사회 정치 > 사회학
Description
세계 역사의 격동기를 헤쳐나간 젊은 그람시의 혁명적 사유

"사회주의 국가는 피착취 노동계급을 특징짓는 사회 제도들 속에 이미, 잠재적으로 존재하며, 노동계급은 본질적인 기능의 영역에서 부르주아 국가를 인계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 책에 묶인 저술들은 이제까지 『옥중수고』를 중심으로 그람시를 이해해 왔던 편향된 상황에 균형을 잡아줄 것이다. 서구 혁명의 이론가, 혹은 상부구조의 이론가로 그람시가 알려졌던 이유도 『옥중수고』를 바탕으로 한 이해에 기인한 바가 크다.

그러나 이 선집은 검열과 질병, 외부와의 단절로 일그러지지 않은 투옥 이전의 젊은 그람시를 보여준다. 러시아 혁명과 공장 점거, 파시즘의 흥기로 이어지는 이탈리아와 세계 역사의 격동기를 헤쳐나간 명민한 저널리스트이자 열렬한 사회주의 정치가로서의 면모가 그것이다. 또한 이 책에는 그간 포착하기 어려웠던 그람시의 사상적 면모나 요소들이 눈에 들어온다. 예를 들어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노동조합이 갖는 근원적 한계와 평의회 운동이 갖는 함의, 리소르지멘토와 사회주의, 도시의 역사적 역할, 국제적 프롤레타리아 운동에 대한 시각, 인간의 의지와 윤리에 대한 독특한 해석, 그리고 파시즘 분석을 비롯한 구체적 정세분석 방법론 등이 그것이다.

이 책을 통해『옥중수고』와 이 시기의 저작들에서 변화된 개념들을 비교하는 것 또한 흥미롭다. 결국 이 책은 『수고』의 해석을 도울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도 충분히 유의미한 저작이라 할 수 있다. 혹은 『옥중수고 이전』이야말로 이 시기 그의 활동과 저작들에 대한 방대한 사후 해설인지도 모른다.
Contents
개요
문헌에 대하여
연표
용어해설
정치, 노동, 기타 조직들의 용어해설
약전

1부 우리의 맑스

능동적이고 효과적인 중립 (1914년 10월 31일)
사회주의와 문화 (1916년 1월 29일)
역사 (1916년 8월 29일)
사회주의와 협동조합 (1916년 10월 30일)
세 가지 원칙과 세 종류의 정치질서 (1917년 2월 11일)
자유와 규율 (1917년 2월 11일)
사회주의와 이탈리아 (1917년 9월 22일)
러시아혁명에 관한 노트 (1917년 4월 29일)
우리에게 문화연합이 필요한 이유 (1917년 12월 18일)
{자본}에 반한 혁명 (1917년 12월 24일)
비판적 비판주의 (1918년 1월 12일)
사회주의와 경제 조직 (1918년 2월 9일)
사회주의와 행동주의 철학 (1918년 2월 9일)
도덕생활 클럽 (1918년 3월)
우리의 맑스 (1918년 5월 4일)
계급 비타협성과 이탈리아 역사 (1918년 5월 18일)
코카인 (1918년 5월 21일)
축구와 스코포네 (1918년 8월 27일)
문화적 시적 신비 (1918년 10월 19일)
인간들, 사상들, 신문들, 그리고 화폐 (1918년 10월 23일)

2부 신질서

법의 지배 (1919년 6월 1일)
역사의 대가 (1919년 6월 7일)
노동자 민주주의 (1919년 6월 21일)
국가와 사회주의 (1919년 6월 28일∼7월 5일)
국가의 정복 (1919년 7월 12일)
노동조합과 평의회 (1919년 10월 11일)
노동조합과 프롤레타리아 독재 (1919년 10월 25일)
생디칼리즘과 평의회 (1919년 11월 8일)
딜레마에서 벗어나기 (1919년 11월 29일)
도시의 역사적 역할 (1920년 1월 17일)
이탈리아 국가 (1920년 2월 7일)
술 취한 병사들 (1920년 2월 18일)
공장 노동자 (1920년 2월 21일)
사회당의 혁신을 위하여 (1920년 5월 8일)
공장평의회 (1920년 6월 5일)
두 개의 혁명 (1920년 7월 3일)
공산주의 그룹들 (1920년 7월 17일)
「오르디네 누오보」의 계획 (1920년 8월 14일과 28일)
공산당 (1920년 9월 4일과 10월 9일)
붉은 일요일 (1920년 9월 5일)

3부 사회주의와 파시즘

러시아와 인터내셔널 (1921년 1월 9일)
리보르노 당 대회 (1921년 1월 13일)
사회주의자들과 파시스트들 (1921년 6월 11일)
왜 부르주아지는 더 이상 나라를 다스릴 수 없는가? (1921년 7월 2일)
「라 스탐파」와 파시스트들 (1921년 7월 24일)
도덕적 문제들과 계급투쟁 (1921년 8월 7일)
두 개의 파시즘 (1921년 8월 25일)
합법성 (1921년 8월 28일)
1920년 4월과 9월 (1921년 9월 7일)
국가의 대들보 (1921년 11월 13일)
위기의 본질 (1922년 2월 5일)
이탈리아 미래주의에 대해 트로츠키에게 보내는 편지 (1922년 9월 8일)

4부 이탈리아 공산당의 건설

우리의 노조 정책 (1923년 10월 18일)
비관주의에 반대하여 (1924년 3월 15일)
메조지오르노와 파시즘 (1924년 3월 15일)
당 학교 (1925년 4월 1일)
당은 반레닌주의적 편향과의 투쟁을 통해 강화된다 (1925년 7월 5일)
세포 조직과 세계대회 (1925년 7월 28일)
당의 조직적 기반 (1925년 8월 15일)
이탈리아 상황에 대한 연구 (1926년 8월 2∼3일)
공산주의로 가고 있는 소비에트 연방 (1926년 9월 7일)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에 보내는 편지 (1926년 10월 14일)
남부문제의 몇 가지 측면 (1926년 9월∼11월)

부록 / 이탈리아의 상황과 PCI의 과제 (리용테제)

역자후기
찾아보기
Author
안토니오 그람시,리처드 벨라미,김현우,장석준
'시민사회의 이론가' '실패한 서구의 혁명가' '지성의 비관주의와 의지의 낙관주의'. 그는 이탈리아의 사상가이자 혁명가이다. 샤르데냐의 한 작은 마을인 알레스에서 일곱 형제 중 넷째로 태어났다. 토리노 대학에 입학하여 인문과학 및 사회과학, 그리고 특히 언어학에 깊은 관심을 갖고 공부하였다. 사회당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였으며, 「전진Avanti!」의 칼럼니스트로서, 연극 비평가로서 활동하였다. 타스카, 테라치니, 톨리야티와 함께 「신질서」를 만들었는데, 이 잡지는 그 후 5년 간 이탈리아의 급진적인 좌파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유럽과 러시아와 미국에서도 주목받았다.

1921년 이탈리아 공산당의 창립을 주도해 중앙위원을 지냈으며, 기관지 '신질서'의 발기인이자 기고자로, 의회 의원이자 코민테른 파견 공산당 대표로 활약했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및 모두 세력들이 단결해야만 무솔리니의 파시즘에 대항하여 앞으로 다가올 재앙을 막을 수 있다고 예언하였고, 모스크바에서 아내 줄카를 만났으며 아들 델리오와 줄리아노가 있다. 1926년 그람시가 체포되어 11년 간의 감옥 생활이 시작되었다. 『옥중 수고』에서 그람시의 왕성한 지적활동의 결정체를 볼 수 있으며 『감옥에서 보낸 편지』를 통해 그의 끊이지 않는 연구 계획과 굽힐 줄 모르는 의지를 엿볼 수 있다.

그의 정치 사상은 한 계급에 대한 다른 계급의 지배가 경제적, 물리적 힘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피지배 계급이 지배 계급의 신념체계를 받아들이며 그들이 사회적, 문화적, 도덕적 가치를 공유하게끔 동의를 구하고 설득하는 데도 의존한다는 헤게모니 이론으로 요약되곤 한다.

유능한 편집자이자 문화평론가이기도 했던 그에게 1916년부터 시작된 평론 활동은 '시민사회'와 '헤게모니'라는 개념으로 나아가는 가교 역할을 했다. 또 의회 선거와 공장평의회 시기를 거치면서 남부주의의 정치적 중요성에 눈을 뜨면서 이를 자신의 이론과 유기적으로 통합시켜 독창적인 이론 체계를 완성하기에 이른다.

1937년 질병들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면서 지내온 감옥생활을 이기지 못하고 뇌일혈로 눈을 감았다.
'시민사회의 이론가' '실패한 서구의 혁명가' '지성의 비관주의와 의지의 낙관주의'. 그는 이탈리아의 사상가이자 혁명가이다. 샤르데냐의 한 작은 마을인 알레스에서 일곱 형제 중 넷째로 태어났다. 토리노 대학에 입학하여 인문과학 및 사회과학, 그리고 특히 언어학에 깊은 관심을 갖고 공부하였다. 사회당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였으며, 「전진Avanti!」의 칼럼니스트로서, 연극 비평가로서 활동하였다. 타스카, 테라치니, 톨리야티와 함께 「신질서」를 만들었는데, 이 잡지는 그 후 5년 간 이탈리아의 급진적인 좌파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유럽과 러시아와 미국에서도 주목받았다.

1921년 이탈리아 공산당의 창립을 주도해 중앙위원을 지냈으며, 기관지 '신질서'의 발기인이자 기고자로, 의회 의원이자 코민테른 파견 공산당 대표로 활약했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및 모두 세력들이 단결해야만 무솔리니의 파시즘에 대항하여 앞으로 다가올 재앙을 막을 수 있다고 예언하였고, 모스크바에서 아내 줄카를 만났으며 아들 델리오와 줄리아노가 있다. 1926년 그람시가 체포되어 11년 간의 감옥 생활이 시작되었다. 『옥중 수고』에서 그람시의 왕성한 지적활동의 결정체를 볼 수 있으며 『감옥에서 보낸 편지』를 통해 그의 끊이지 않는 연구 계획과 굽힐 줄 모르는 의지를 엿볼 수 있다.

그의 정치 사상은 한 계급에 대한 다른 계급의 지배가 경제적, 물리적 힘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피지배 계급이 지배 계급의 신념체계를 받아들이며 그들이 사회적, 문화적, 도덕적 가치를 공유하게끔 동의를 구하고 설득하는 데도 의존한다는 헤게모니 이론으로 요약되곤 한다.

유능한 편집자이자 문화평론가이기도 했던 그에게 1916년부터 시작된 평론 활동은 '시민사회'와 '헤게모니'라는 개념으로 나아가는 가교 역할을 했다. 또 의회 선거와 공장평의회 시기를 거치면서 남부주의의 정치적 중요성에 눈을 뜨면서 이를 자신의 이론과 유기적으로 통합시켜 독창적인 이론 체계를 완성하기에 이른다.

1937년 질병들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면서 지내온 감옥생활을 이기지 못하고 뇌일혈로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