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기현 주교는 1953년 2월 1일 영문학자였던 아버지 배덕환(요셉)과 산부인과 의사였던 어머니 전풍자(모니카) 사이에서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유복한 가정에서 부족할 것 없이 자랐고, 자유분방한 분위기에서 생활했다. 자유는 방종으로까지 이어졌고, 고등학교 시절 정학을 네 번이나 받을 만큼 말썽도 많이 피웠다. 흔히 말하는 ‘문제아’였다.
하지만 자식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던 어머니는 그런 그를 묵묵히 기다려 주었다. 1976년 개업의를 그만두고 소록도로 이사해 한센인들을 돌보는 일에 헌신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배 주교는 새로운 삶을 결심하게 됐다. 그는 우여곡절 끝에 신학교에 입학했지만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삶을 살았던지라, 신학교 생활에 적응하기 어려웠다. 아침마다 일어나기는커녕 기도와 미사도 빠지기 일쑤였다. 결국 1학년 2학기 신학교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1985년 사제품을 받았는데, 그의 어머니는 “죄 많은 집안에서 신부가 나왔다”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1989년 유학을 떠나 1996년까지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대학교, 독일 뮌헨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귀국 후 부산가톨릭대학교 교수를 지냈고, 교포 사목(미국 덴버), 사천·덕산 본당 주임, 교포 사목(미국 LA)을 거쳤다. 2015년 1월부터 마산교구 총대리 겸 사무처장을 맡았으며, 2016년 4월 19일 주교로 임명되었고, 6월 8일 창원 마산체육관에서 주교 서품 및 착좌식이 거행되어 현재 천주교 마산 교구 교구장으로 있다.
배기현 주교는 1953년 2월 1일 영문학자였던 아버지 배덕환(요셉)과 산부인과 의사였던 어머니 전풍자(모니카) 사이에서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유복한 가정에서 부족할 것 없이 자랐고, 자유분방한 분위기에서 생활했다. 자유는 방종으로까지 이어졌고, 고등학교 시절 정학을 네 번이나 받을 만큼 말썽도 많이 피웠다. 흔히 말하는 ‘문제아’였다.
하지만 자식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던 어머니는 그런 그를 묵묵히 기다려 주었다. 1976년 개업의를 그만두고 소록도로 이사해 한센인들을 돌보는 일에 헌신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배 주교는 새로운 삶을 결심하게 됐다. 그는 우여곡절 끝에 신학교에 입학했지만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삶을 살았던지라, 신학교 생활에 적응하기 어려웠다. 아침마다 일어나기는커녕 기도와 미사도 빠지기 일쑤였다. 결국 1학년 2학기 신학교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1985년 사제품을 받았는데, 그의 어머니는 “죄 많은 집안에서 신부가 나왔다”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1989년 유학을 떠나 1996년까지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대학교, 독일 뮌헨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귀국 후 부산가톨릭대학교 교수를 지냈고, 교포 사목(미국 덴버), 사천·덕산 본당 주임, 교포 사목(미국 LA)을 거쳤다. 2015년 1월부터 마산교구 총대리 겸 사무처장을 맡았으며, 2016년 4월 19일 주교로 임명되었고, 6월 8일 창원 마산체육관에서 주교 서품 및 착좌식이 거행되어 현재 천주교 마산 교구 교구장으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