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부산에서 태어나 1987년 인제 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 군의관으로 군 복무를 마친다. 의사로서 보장된 삶을 포기하고 돌연 사제의 삶을 살기로 결심한다. 1991년 살레시오회에 입회하고, 1994년 첫 서원을 한다. 1997년 1월 로마 교황청 살레시오 대학교 유학 후 2000년 4월 살레시오회 종신 서원을 통해 살레시오인으로, 2001년 12월 남수단 톤즈에 부임한다.
이태석 신부는 아프리카 수단 톤즈에서 오랜 내전과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희망과 사랑의 꽃을 피운 삶을 살다가 뒤늦게 발견한 대장암과 싸우며 ‘하루빨리 톤즈로 돌아가 아이들을 만나기’를 희망했지만, 1년간의 투병생활 끝에 2010년 1월 14일 선종 후 1월 16일 전남 담양 광주교구공원묘지 내 살레시오 묘역에 안장 되었다.
“에브리싱 이즈 굿(Everything is good)"이라며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마지막까지 위로한 그의 삶은 사제로서의 나눔과 봉사의 실천이 무엇인가를 보여 준 본보기이자, 사랑의 모습이 무엇인가를 온몸으로 보여 준 하느님 사랑의 증표다.
가장 낮은 이의 모습으로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실천과 헌신적인 봉사의 삶으로 인제인성대상특별상(2006년), 보령의료봉사상(2007년), 한미자랑스런의사상(2009년), 국민훈장 무궁화장(2011년)을 수상했다.
1962년 부산에서 태어나 1987년 인제 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 군의관으로 군 복무를 마친다. 의사로서 보장된 삶을 포기하고 돌연 사제의 삶을 살기로 결심한다. 1991년 살레시오회에 입회하고, 1994년 첫 서원을 한다. 1997년 1월 로마 교황청 살레시오 대학교 유학 후 2000년 4월 살레시오회 종신 서원을 통해 살레시오인으로, 2001년 12월 남수단 톤즈에 부임한다.
이태석 신부는 아프리카 수단 톤즈에서 오랜 내전과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희망과 사랑의 꽃을 피운 삶을 살다가 뒤늦게 발견한 대장암과 싸우며 ‘하루빨리 톤즈로 돌아가 아이들을 만나기’를 희망했지만, 1년간의 투병생활 끝에 2010년 1월 14일 선종 후 1월 16일 전남 담양 광주교구공원묘지 내 살레시오 묘역에 안장 되었다.
“에브리싱 이즈 굿(Everything is good)"이라며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마지막까지 위로한 그의 삶은 사제로서의 나눔과 봉사의 실천이 무엇인가를 보여 준 본보기이자, 사랑의 모습이 무엇인가를 온몸으로 보여 준 하느님 사랑의 증표다.
가장 낮은 이의 모습으로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실천과 헌신적인 봉사의 삶으로 인제인성대상특별상(2006년), 보령의료봉사상(2007년), 한미자랑스런의사상(2009년), 국민훈장 무궁화장(2011년)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