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은 2010년 ‘사제의 해’를 보내며, 성모님과 가정의 소중함을 생각하는 5월에 사제들이 고백하는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모아 펴낸 책이다. 책에는 다양한 어머니의 모습이 등장한다.
고달픈 살림에도 미소를 잃지 않고 어린 자식에게 신앙을 심어 준 어머니, 어려운 시절 자식에게 라면을 먹이겠다는 일념으로 온가족을 이끌고 상경한 어머니, 사제 아들의 걱정 섞인 푸념에도 끊임없이 당신의 사랑을 퍼 날라 주는 어머니, 방황하는 사제 아들을 위해 밤새도록 뜬 눈으로 묵주알을 굴리는 어머니, 아들이 선택한 사제의 길을 극렬하게 반대했지만 이제는 오히려 그 누구보다 더 깊은 신앙생활을 하는 어머니…….
Contents
추천의 글ㅣ 고맙습니다 - 박완서
1 집으로 돌아가는 길
김수환 - 어머니, 우리 어머니
김인국 - 불씨에서 반딧불이가 되어
김종섭 - 십자가 밑둥치가 뭉그러진 장난감 묵주
김찬진 - 어머니 무릎을 베고 누워
배갑진 - “어머니!” 하고 부를 수 있는 행복
양승국 - 수동의 인생
2 바다보다 깊고 하늘보다 넓은
임희택 -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조환길 - 강림공소 팔 남매 이야기
김강정 - 피에타 상의 성모님처럼
황창연 - 라면과 성체
구경국 - 먼발치에서 바라보시던 어머니
박문수 - 목숨보다 더 소중한 축복
3 선물 보따리
오세민 - 어머니가 주신 선물 보따리
이병호 - “나는 너를 믿으니까”
신대원 - 어머니의 어깨춤
이중섭 - 진정한 나눔을 가르쳐 준 스승
이회진 - 자신을 포기하는 사랑
박준양 - 어머니의 손길사제의 손길
Author
김수환
1922년 대구에서 태어나 1951년 사제품을 받았다. 안동천주교회 주임(1951), 김천 성의중고등학교장(1955), 주간 가톨릭시보사 사장(1964)을 거쳐 1966년 44세 때 마산교구장으로 임명됐으며, 1968년 제12대 서울대교구장으로 임명되면서 대주교가 되었다. 1969년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한국 최초의 추기경이 되었다. 1998년 서울대교구장에서 물러나 2009년 2월 16일 87세를 일기로 선종했다.
‘교회는 가난한 이들의 눈물을 닦아 주어야 한다’는 믿음으로 평생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해 살아온 추기경은 한국 사회의 정신적인 지도자이며, 사상가이자 실천가였다. 김수환 추기경은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라는 자신의 사목 표어처럼 ‘세상 속의 교회’를 지향하면서 현대사의 중요한 고비마다 종교인의 양심으로 바른 길을 제시해왔다. 추기경으로서의 삶은 그에게 영광인 동시에 ‘행복한 고난’이었다. 하지만 그는 평소 세상에 태어나 가장 잘한 일로 ‘신부가 된 것’을 꼽았고, “나는 행운아였다”라고 고백할 만큼 이 시대의 가장 사랑받은 목자였다. 평생을 나눔과 사랑의 사회활동을 통해 항상 살아 있는 시대정신을 보여주었다.
한국사회의 정신적 지도자이자 사상가, 실천가로 여전히 우리 마음속에 남아 있다.
1922년 대구에서 태어나 1951년 사제품을 받았다. 안동천주교회 주임(1951), 김천 성의중고등학교장(1955), 주간 가톨릭시보사 사장(1964)을 거쳐 1966년 44세 때 마산교구장으로 임명됐으며, 1968년 제12대 서울대교구장으로 임명되면서 대주교가 되었다. 1969년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한국 최초의 추기경이 되었다. 1998년 서울대교구장에서 물러나 2009년 2월 16일 87세를 일기로 선종했다.
‘교회는 가난한 이들의 눈물을 닦아 주어야 한다’는 믿음으로 평생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해 살아온 추기경은 한국 사회의 정신적인 지도자이며, 사상가이자 실천가였다. 김수환 추기경은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라는 자신의 사목 표어처럼 ‘세상 속의 교회’를 지향하면서 현대사의 중요한 고비마다 종교인의 양심으로 바른 길을 제시해왔다. 추기경으로서의 삶은 그에게 영광인 동시에 ‘행복한 고난’이었다. 하지만 그는 평소 세상에 태어나 가장 잘한 일로 ‘신부가 된 것’을 꼽았고, “나는 행운아였다”라고 고백할 만큼 이 시대의 가장 사랑받은 목자였다. 평생을 나눔과 사랑의 사회활동을 통해 항상 살아 있는 시대정신을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