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펼치면, 오래도록 조국 산천을 그리워하며 이 땅의 산과 들, 강과 바람을 닮은 조선화를 그려 온 화가의 내공이 느껴집니다. "우리 나라를 '조선'이라고 하던 옛날, 햇수로 쳐서 몇백 년이나 먼 옛날 이야기"가 홍영우의 조선화를 만나 축지법을 쓰는 홍길동처럼 시공간을 훌쩍 넘어 이곳에 이르렀습니다. 사람들이 우리 그림에 대해 이야기할 때 "수묵이 정신을 점령하기 위한 그림이라면 채색은 공간을 점령하기 위한 그림"이라는 말들을 합니다. 이 그림책은 수묵화로 시작해 채색화로 진행되다가 다시 수묵화로 맺습니다. 그림책 《홍길동》이 모순과 부조리로 가득 찬 조선의 한계로부터 출발해 새로운 시대 정신을 제시하며 마무리된다는 점을 생각할 때, 실로 놀라운 구성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술적 품격을 고추 갖춘 글과 그림이 완벽한 철학적 짜임새로 서로 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홍영우 그림책 《홍길동》은 우리 어린이들이 겨레의 얼을 담은 가장 훌륭한 예술 형태를 만날 수 있는 빼어난 그림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