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돈황본 『육조단경』을 번역하고, 장을 구분하고, 주제별 평설을 더한 것입니다. 원래 돈황본은 장 구분이 없는 내리닫이 글의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책으로 읽기에 불편한 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장과 소절로 나누어 독서의 편의를 도모하고자 한 것입니다. 장 구분은 그 기술 순서가 크게 다르지 않은 혜흔본의 것을 참고하되 순서가 다르거나 내용상 일치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조정을 가했습니다. 장의 이름과 순서가 혜흔본과 상당히 다르게 된 이유입니다. 또한 이 책에서는 돈황본과 유통본[덕이본, 종보본 등]의 상이한 내용들을 상호 비교하여 육조 스님의 본래 뜻을 확인하는 자료로 삼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유통본에 추가된 내용들 역시 가능하면 모두 번역과 평설의범위에 포함시키고자 했습니다. 미끄러져 버리기 쉬운 경전의 독서에 낯섦을 입힘으로써 성찰적 경전 읽기가 가능하도록 해보자는 뜻이었습니다. 다만 이 세 그룹 간의 작은 차별성보다는 큰 동질성에 주목하고자 하였습니다. 차별성과 그에 대한 세밀한 논의는 학문적으로는 의미가 있을 수 있겠지만, 자칫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함정에 빠질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서기 638년(당태종 정관 12년) 2월 8일에 중국의 신주(新州:현재 광동성 신흥현)에서 태어났으며, 24세 때 『금강경』의 “응당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낸다(應無所住 而生其心).”는 말씀을 듣고, 마음이 밝아져 문득 깨달았다. 5조 홍인(弘忍) 대사를 참례하여 법기(法器)임을 인정받고, 행자로 입문하였다. 8개월 동안 방아 찧는 일을 하다가 게송을 지어 인가를 받고, 5조 홍인 대사로부터 의발(衣鉢)을 전수받았다. 3년 동안 은둔 수행 후 광주 법성사에서 인종 법사로부터 구족계를 받고 법을 설하였다. 그 후 조계 보림사에서 본격적으로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단박에 깨닫는 돈오 견성(頓悟見性)의 선법(禪法)을 펼쳐 중국뿐만 아니라 전 동양 정신과 문화를 특색지운 선사상을 꽃피웠다. 서기 713년 8월 3일 세수 76세로 입멸하였다.
서기 638년(당태종 정관 12년) 2월 8일에 중국의 신주(新州:현재 광동성 신흥현)에서 태어났으며, 24세 때 『금강경』의 “응당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낸다(應無所住 而生其心).”는 말씀을 듣고, 마음이 밝아져 문득 깨달았다. 5조 홍인(弘忍) 대사를 참례하여 법기(法器)임을 인정받고, 행자로 입문하였다. 8개월 동안 방아 찧는 일을 하다가 게송을 지어 인가를 받고, 5조 홍인 대사로부터 의발(衣鉢)을 전수받았다. 3년 동안 은둔 수행 후 광주 법성사에서 인종 법사로부터 구족계를 받고 법을 설하였다. 그 후 조계 보림사에서 본격적으로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단박에 깨닫는 돈오 견성(頓悟見性)의 선법(禪法)을 펼쳐 중국뿐만 아니라 전 동양 정신과 문화를 특색지운 선사상을 꽃피웠다. 서기 713년 8월 3일 세수 76세로 입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