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마더 테레사(Sant Mother Teresa)의 삶
- 가난하고 병든 외로운 사람들의 어머니 -
이 작은 책 『하나님께 드리는 선물』은 테레사 수녀의 명언, 기도문, 명상, 서신, 그리고 강연 중에서 대표적인 것만 엄선한 글 모음집이다.
1910년 8월 27일 유고슬라비아 스코프에서 출생하여 13세 때 수녀가 되기로 결심한 그녀는 18세가 되자, 아일랜드로 가서 로레토 수녀원에 입교하여 예비 수녀가 된다. 그 후 수녀가 된 그녀는 1928년 인도로 파견되어 콜카타의 성 아그네스 고교 교사로 20여 년 동안 봉직하여 교장에까지 이르렀으나, 어느 날 학교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부유한 이들의 자녀를 가르치기보다는 가난한 사람, 외롭게 죽어가는 사람을 돌보는 게 나의 사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퇴임의 말이었다. 1948년도에 콜카타의 빈민굴에서 ‘사랑의 선교회’를 설립한 후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에 힘입어 전 세계 68개국에서 빈민을 돕는 대규모 단체로 번창한다. 그녀의 봉사 정신을 기리며 뒤따르는 수녀 1,600여 명, 수사 180여 명, 자원봉사자 10만여 명이 70개의 빈민 학교와 260개의 병원과 진료소, 58개의 나환자 수용소, 32개의 ‘임종의 집’을 운영하는 그리스도의 동행자가 되었다.
이에 테레사 수녀는 그녀의 위업 덕분에 로마법왕 요한 23세 상을 비롯하여, 인도의 네루상, 미국의 조셉 케네디로부터 효행상을 받는다.
한편 노벨상 위원회는, ‘노벨상 위원회는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가난과 불행을 줄이기 위해서 분투하고 노력한 공로 때문에 테레사 수녀에게 노벨평화상을 주지 않을 수 없었다.’라고 격찬하고 있다. 그 당시 우리나라에 있는 ‘사랑의 선교회’ 원장 페더 울머(인도인, 한국명 문반석)는 이렇게 말한다. “테레사 수녀님은 평안을 안겨주는 성자이십니다. 그분은 매일 새벽 4시 30분에 기상하여 아침 기도와 미사를 올린 후 빵 한 개, 바나나 하나, 차 한 잔으로 아침 식사를 마치고 임종의 집과 나환자 수용소를 순회합니다. 오후 7시 30분에 저녁을 들면 기도로 주님의 은총을 호소합니다. 그분이 잠자리에 드는 시간은 오후 10시 30분, 24시간 중 18시간을 보낸 노수녀가 평화 속으로 돌아가는 시간입니다. 5척이 될까 말까 한 작은 테레사 수녀는 우리 농촌의 할머니와 같은 모습입니다. 단 두 벌의 무명 수녀복과 십자가, 안경, 물통, 시계, 구두 한 켤레가 그녀의 전 재산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무한한 사랑의 힘을 갖고 있습니다. 그녀는 암흑의 빛입니다.” 마더 테레사는 1977년 9월 5일 88세로 임종, 2016년 9월 5일 그녀의 탄생일을 기념하여 로마교황청으로부터 성인으로 추대받은 삶을 살았다.
Contents
테레사 수녀에 대하여
가난하고 병든 외로운 사람들의 어머니│8
편자의 말
천국에는 빈민가가 없다│12
역자의 말
테레사 수녀가 쓴 책 『하나님께 드리는 선물』은│18
사랑은 가정에서 시작된다│23
믿음 Faith│31
고통 Suffering│39
그리스도를 본받음 Imitation of christ│53
그리스도 사랑의 전달자 Carriers of christ’s love│63
성모 마리아 Our lady│93
풍성함 Riches│103
동정심 A geography of compassion│109
하나님의 봉사자 Willing slaves to the will of god│137
기도를 사랑함 Love to pray│149
기쁨 Joy│163
A Gift for God
Mother Teresa
Love Begins At Home│171
Faith│175
Suffering│179
Imitation Of Christ│185
Carriers Of Christ’s Love│189
Our Lady│201
Riches│205
A Geography Of Compassion│207
Willing Slaves To The Will Of God│219
Love To Pray│223
Joy│229
No Slums In Heaven│231
Author
마더 테레사,전민식
1910년 8월 26일 유고슬라비아의 스코프예에서 3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린시절 아니스 곤히아 브약스히야 (Agnes Gonx-ha Bojaxhiu3)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마더 데레사는 열어덟 살 때 가톨릭 선교 수녀로 최초 부름을 받았다. 1928년 아일랜드 로레토 수녀원에 들어가 수녀가 된 후 인도 캘커타의 빈민가에서 수도 생활을 시작했으며, 1929년부터 20여 년 동안 인도 콜카타의 성 마리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1931년 자신의 수도명으로 데레사라는 이름을 선택했는데, 이는 예수님의 작은 꽃으로 알려진 리지외의 성 데레사의 이름을 딴 것이다.
가난한 이들 가운데 가장 가난한 이들에게 대기없이 봉사하라는 부름을 받고 1950년 인도 콜카타에 사랑의 선교회를 설립했다. 이후 임종자를 위한 집, 나환자를 위한 집, 어린이들을 위한 집, 에이즈 환자를 위한 집 등을 마련하여 버림받고 사랑받지 못한 이들에게 평범하지 않은 사랑을 베풀었다. 1979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으며, 1997년 9월 5일 심장질환으로 87세를 일기로 삶을 마감했다.
2003년 10월 19일 데레사 수녀에 대한 시복식이 로마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집전으로 거행됐다. 20세기의 마지막을 장식한 데레사 수녀는 이로써 사후 불과 6년이라는 최단기간에 복자반열에 오르게 되는 기록을 낳았다. 가톨릭 품계에서 복자는 성인 다음이다. 현재 로마 교황청에 의해 시성이 추진되고 있다.
1910년 8월 26일 유고슬라비아의 스코프예에서 3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린시절 아니스 곤히아 브약스히야 (Agnes Gonx-ha Bojaxhiu3)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마더 데레사는 열어덟 살 때 가톨릭 선교 수녀로 최초 부름을 받았다. 1928년 아일랜드 로레토 수녀원에 들어가 수녀가 된 후 인도 캘커타의 빈민가에서 수도 생활을 시작했으며, 1929년부터 20여 년 동안 인도 콜카타의 성 마리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1931년 자신의 수도명으로 데레사라는 이름을 선택했는데, 이는 예수님의 작은 꽃으로 알려진 리지외의 성 데레사의 이름을 딴 것이다.
가난한 이들 가운데 가장 가난한 이들에게 대기없이 봉사하라는 부름을 받고 1950년 인도 콜카타에 사랑의 선교회를 설립했다. 이후 임종자를 위한 집, 나환자를 위한 집, 어린이들을 위한 집, 에이즈 환자를 위한 집 등을 마련하여 버림받고 사랑받지 못한 이들에게 평범하지 않은 사랑을 베풀었다. 1979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으며, 1997년 9월 5일 심장질환으로 87세를 일기로 삶을 마감했다.
2003년 10월 19일 데레사 수녀에 대한 시복식이 로마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집전으로 거행됐다. 20세기의 마지막을 장식한 데레사 수녀는 이로써 사후 불과 6년이라는 최단기간에 복자반열에 오르게 되는 기록을 낳았다. 가톨릭 품계에서 복자는 성인 다음이다. 현재 로마 교황청에 의해 시성이 추진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