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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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24/05/15
Pages/Weight/Size 147*213*20mm
ISBN 9788982030505
Categories 인문 > 서양철학
Description
신(神)들을 대중에게 보급하고 ‘설득력 있는 그의 말에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들에게 그는 세상의 거짓을 발가벗겨 보여 주는 기쁨’이라고 칭송한 단테의 말처럼 중세 사상을 구원한 보이티우스가 사형선고를 받고 처형될 날을 기다리며 유배지 감옥에서 쓴 『철학의 위안』은 이제까지 많은 사람에 의해 매우 가치 있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또한 영국의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은 그의 저서 『로마 제국의 쇠망사』에서 ‘이 책은 플라톤이나 키케로의 책들 못지않은 귀중한 책’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보이티우스의 폭넓은 시야와 부드러운 어조의 ‘중세의 가장 맑고 친절한 지혜의 책’이라고 평가받는 『철학의 위안』은 도덕에 관한 일반적인 성찰보다 훨씬 높은 사상의 단순성과 명료성이 중세의 혼란 속에 압도되려 할 시기에 위대한 스콜라 철학자들이 세상 전체에 관한 일반적 · 포괄적 견해를 얻은 데에는 다른 어느 철학적 저술가보다 보이티우스의 영향이 컸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으리라.
Contents
· 서문 · 6
· 보이티우스 생애와 사상 · 12

제1권 철학의 여신 · 25
제2권 신성한 가르침 · 61
제3권 영혼을 위한 위안 · 107
제4권 징벌당하지 않는 악(惡) · 173
제5권 우연이 존재하는 것 · 229

· 보이티우스 연보 · 268
Author
아니키우스 보이티우스,박병덕
480년경 로마의 전통적 귀족 가문 아니시아((Anicia) 명문가에서 태어났다(생몰 연대와 태어난 곳이 확실하지 않음). 그의 아버지는 오도아케르의 치하에서 집정관을 지냈으며 집안은 보수적이었지만 빠르게 기독교로 개종했으며 그 후 막강한 권력과 부(富)를 누렸다. 그는 어릴 때 신동(神童)이었으며 어릴 때부터 학문에 대한 비상한 열의를 보였다. 그러다 그가 소년이었을 때 집정관이던 아버지가 갑자기 죽자, 이때부터 스콜라 철학자이며 로마 집정관과 원로원의 우두머리인 아우렐리우스 심마쿠스의 집에서 자라게 된다. 그는 심마쿠스에게 문학과 철학에 관한 것을 배우고 성장한 뒤 그의 딸 루스티시아나와 결혼했다. 그가 받은 교육의 질(質)은 최고였으며 수사학 · 논리학 · 천문학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의 학문에 뛰어난 자질을 보였다. 그 후 이른 나이에 오도아케르를 멸망시킨 동고트족의 테오도리쿠스 왕의 눈에 들어 부르군디족의 왕 군도바드를 위해 물시계와 해시계를 만들고 프랑크족의 왕 클로비스를 위해 수금(竪琴)을 연주할 사람을 뽑는 일을 맡았다. 그리고 회계 담당원에 의한 화폐 품질 저하 사건을 조사하는 일에 기용되었다. 그 후 로마의 전통적 공직 중에서 가장 화려한 직위인 집정관에 오르고 국가 관리 전체의 우두머리로 궁정 관리들의 장(長)이 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 그의 두 아들이 집정관으로 임명된 후 523년경 동로마 편인 요한 1세의 선출을 지원했다는 반역죄에 연루된 후 그 일로 체포되어 사형 판결을 받고 파비아로 귀양을 가 처형을 기다리다 고문을 당한 후 옥사한다. 이때 그는 귀양지 파비아에서 처형당하기 전까지 ≪철학의 위안≫을 집필하였다. 그는 그리스어를 모르는 로마인에게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의 사상을 알리기 위해 두 사람의 모든 저작에 설명을 붙여 이해하기 쉽게 번역과 주해를 계획했지만 처형되어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가 옥중에서 쓴 대표작 ≪철학의 위안≫은 철학과 신학을 비롯해 수학이나 음악에까지 영향을 끼치고 철학자 플라톤의 영향을 받아 그리스도교의 여러 문제를 응용해 스콜라 철학의 선구자가 된다. 그가 남긴 작품으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론(Categoriae)≫ ≪명제론(De Interpretatione)≫ ≪변증론(Topics)≫ ≪분석론 전서(Prior Analytics)≫ ≪분석론 후서(Posterior Analytics)≫ ≪궤변론(Sophistical Fallacies)≫ 등의 번역과 주해서가 있다.
480년경 로마의 전통적 귀족 가문 아니시아((Anicia) 명문가에서 태어났다(생몰 연대와 태어난 곳이 확실하지 않음). 그의 아버지는 오도아케르의 치하에서 집정관을 지냈으며 집안은 보수적이었지만 빠르게 기독교로 개종했으며 그 후 막강한 권력과 부(富)를 누렸다. 그는 어릴 때 신동(神童)이었으며 어릴 때부터 학문에 대한 비상한 열의를 보였다. 그러다 그가 소년이었을 때 집정관이던 아버지가 갑자기 죽자, 이때부터 스콜라 철학자이며 로마 집정관과 원로원의 우두머리인 아우렐리우스 심마쿠스의 집에서 자라게 된다. 그는 심마쿠스에게 문학과 철학에 관한 것을 배우고 성장한 뒤 그의 딸 루스티시아나와 결혼했다. 그가 받은 교육의 질(質)은 최고였으며 수사학 · 논리학 · 천문학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의 학문에 뛰어난 자질을 보였다. 그 후 이른 나이에 오도아케르를 멸망시킨 동고트족의 테오도리쿠스 왕의 눈에 들어 부르군디족의 왕 군도바드를 위해 물시계와 해시계를 만들고 프랑크족의 왕 클로비스를 위해 수금(竪琴)을 연주할 사람을 뽑는 일을 맡았다. 그리고 회계 담당원에 의한 화폐 품질 저하 사건을 조사하는 일에 기용되었다. 그 후 로마의 전통적 공직 중에서 가장 화려한 직위인 집정관에 오르고 국가 관리 전체의 우두머리로 궁정 관리들의 장(長)이 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 그의 두 아들이 집정관으로 임명된 후 523년경 동로마 편인 요한 1세의 선출을 지원했다는 반역죄에 연루된 후 그 일로 체포되어 사형 판결을 받고 파비아로 귀양을 가 처형을 기다리다 고문을 당한 후 옥사한다. 이때 그는 귀양지 파비아에서 처형당하기 전까지 ≪철학의 위안≫을 집필하였다. 그는 그리스어를 모르는 로마인에게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의 사상을 알리기 위해 두 사람의 모든 저작에 설명을 붙여 이해하기 쉽게 번역과 주해를 계획했지만 처형되어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가 옥중에서 쓴 대표작 ≪철학의 위안≫은 철학과 신학을 비롯해 수학이나 음악에까지 영향을 끼치고 철학자 플라톤의 영향을 받아 그리스도교의 여러 문제를 응용해 스콜라 철학의 선구자가 된다. 그가 남긴 작품으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론(Categoriae)≫ ≪명제론(De Interpretatione)≫ ≪변증론(Topics)≫ ≪분석론 전서(Prior Analytics)≫ ≪분석론 후서(Posterior Analytics)≫ ≪궤변론(Sophistical Fallacies)≫ 등의 번역과 주해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