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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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05/03/30
ISBN 9788980970902
Categories 사회 정치 > 사회학
Description
『군주론』에서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국가를 통치·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권력에 대한 의지·야심·용기가 있어야 하며, 필요하면 불성실·몰인정·잔인해도 무방하고, 종교까지도 이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통치자의 통치방법과 명성을 얻기 위한 처세방법, 측근 각료를 선택하는 방법과 간신을 피하는 방법, 신의를 지키는 방법, 경멸과 증오를 피하는 법 등 세세한 부분까지 자세하게 언급하고 있는 『군주론』은 여러 사람들의 칭송과 논란의 화제가 되었으며, 5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변치 않는 통치방법의 고전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비록 '마키아벨리즘'이라 불리게 된 권모술수주의(權謀術數主義)를 주장하였다 하여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근대 정치학을 개척한 획기적인 문헌임에는 틀림이 없다.
Contents
역자서문
헌정사 : 니콜로 마키아벨 리가 위대한 로렌초 데 메디치 전하께 올리는 글

마키아벨리의 생애와 사상
-생애
-사상

제1장 군주국의 종류와 성립과정
제2장 세습군주국
제3장 복합군주국
제4장 알렉산더 대왕이 정복한 다리우스 왕국에서 그가 죽은 후 후계자를 둘러싼 반란이 왜 없었는가
제5장 점령되기 이전의 자신의 법에 따라 살아온 도시나 국가를 다스리는 방법
제6장 자신의 무력과 능력으로 획득한 새로운 군주국
제7장 외국의 무력과 호의로 획득한 새로운 군주국
제8장 사악한 방법으로 군주가 된 사람들
제9장 시민형 군주국
제10장 군주국의 국력 추정방법
제11장 교회형 군주국
제12장 군대의 조직과 용병
제13장 외국원군?혼성군 그리고 자국군
제14장 군주가 그 외 시민군을 조직하는 방법
제15장 군주가 찬양 받거나 비난받는 일들
제16장 관후함과 인색함
제17장 잔인함과 인자함, 그리고 사랑 받는 것과 두려움을 받는 것 중 어느 편이 더 나은가
제18장 군주는 어떻게 신의를 지켜야 하는가
제19장 경멸과 증오는 어떻게 피해야 하는가
제20장 군주가 의지해 온 요새와 다른 많은 방책들은 유익한가 그렇지 않은가
제21장 명성을 얻기 위한 군주의 처세방법
제22장 군주의 측근 각료
제23장 간신을 피하는 방법
제24장 군주들이 나라를 잃은 이유
제25장 인간사는 얼마만큼의 운명에 지배되며 어떻게 운명에 대처하는가
제26장 야만족의 지배로부터 이탈리아를 해방시키려는 권고

작품해설
연보
인명색인
마키아벨리의 연보
Author
마키아벨리,정영하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 공화국의 외교관이자 탁월한 정치이론가. 이탈리아(피렌체)의 관료이자 외교관이자 군사 전략가였으나, 말년의 저술로 정치사상가의 반열에 오른 마키아벨리는 피렌체에서 몰락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의 기록은 많지 않은데, 변변치 않은 교육 환경에서 홀로 역사와 정치에 관한 공부를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청년 시절에는 말직으로 근무하다가 서른 살이 되어서야 80인회의 사무국의 서기에 임명되었고, 능력을 인정받았는지 곧 10인군사위원회의 사무국장과 서기를 맡았다.

1492년 피렌체가 ‘위대한 로렌초(로렌초 일 마니피코)’의 사망으로 통치력 부재 상황을 맞았을 때, 마키아벨리는 공화국의 외교관으로서 국운이 풍전등화인 피렌체를 살려내려고 강대국 사이를 필사적으로 오갔고, 국제 정치의 민낯을 낱낱이 목격하며 ‘강한 군대, 강한 군주’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교황청에 사절로 파견갔다가 만난 발렌티노 공작(체사레 보르자)에게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해줄 강력한 신생군주의 역할을 기대했지만 체사레는 맥없이 병사해버렸다. 마키아벨리는 시민군 양성을 추진하는 등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메디치 가문이 군주로 돌아오자 공화국의 일꾼이었던 죄로 감옥에 갇혔다. 이후 특별사면을 받고 나와서 새 군주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필요한 경우에는 비도덕적인 수단도 행사해서 평화를 지키는 강력한 지도자가 되어라’는 조언을 담은 『군주론』을 썼다.

1506년에 피렌체 시민군의 조직을 계획하여 이듬해 9인위원회의 서기장이 되어 피렌체의 정복 전쟁에서 군대를 양성하는 책임을 맡았다. 1512년에 공직을 떠난 그는 산 카스치아노 근처의 저택에서 집필하며 루첼라이 가문의 소유인 오르티 오리첼라리 정원에서 여러 문인을 만났다. 이때 그는 메디치가의 요청을 받아 주로 통치론에 관한 글을 써 권력자들에게 헌정했다. 그러나 그는 불우한 말년을 보내다 1527년에 사망했다.

대표 저서로는 『군주론』을 포함하여 『카스트루치오 카스트라카니의 생애』, 『결혼한 악마 벨파고르』, 『리비우스 역사 논고』, 『만드라골라』, 『우리나라의 언어에 관한 연구 또는 대화』, 『이탈리아 10년사: 1494~1504』, 『전술론』, 『카피톨리』, 『클리치아』, 『트리시노』, 『프랑스 사정기事情記』, 『피렌체 정부 개혁론』, 『피렌체사』, 『황금 나귀』, 『후회에 대한 권고』 등이 있다.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 공화국의 외교관이자 탁월한 정치이론가. 이탈리아(피렌체)의 관료이자 외교관이자 군사 전략가였으나, 말년의 저술로 정치사상가의 반열에 오른 마키아벨리는 피렌체에서 몰락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의 기록은 많지 않은데, 변변치 않은 교육 환경에서 홀로 역사와 정치에 관한 공부를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청년 시절에는 말직으로 근무하다가 서른 살이 되어서야 80인회의 사무국의 서기에 임명되었고, 능력을 인정받았는지 곧 10인군사위원회의 사무국장과 서기를 맡았다.

1492년 피렌체가 ‘위대한 로렌초(로렌초 일 마니피코)’의 사망으로 통치력 부재 상황을 맞았을 때, 마키아벨리는 공화국의 외교관으로서 국운이 풍전등화인 피렌체를 살려내려고 강대국 사이를 필사적으로 오갔고, 국제 정치의 민낯을 낱낱이 목격하며 ‘강한 군대, 강한 군주’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교황청에 사절로 파견갔다가 만난 발렌티노 공작(체사레 보르자)에게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해줄 강력한 신생군주의 역할을 기대했지만 체사레는 맥없이 병사해버렸다. 마키아벨리는 시민군 양성을 추진하는 등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메디치 가문이 군주로 돌아오자 공화국의 일꾼이었던 죄로 감옥에 갇혔다. 이후 특별사면을 받고 나와서 새 군주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필요한 경우에는 비도덕적인 수단도 행사해서 평화를 지키는 강력한 지도자가 되어라’는 조언을 담은 『군주론』을 썼다.

1506년에 피렌체 시민군의 조직을 계획하여 이듬해 9인위원회의 서기장이 되어 피렌체의 정복 전쟁에서 군대를 양성하는 책임을 맡았다. 1512년에 공직을 떠난 그는 산 카스치아노 근처의 저택에서 집필하며 루첼라이 가문의 소유인 오르티 오리첼라리 정원에서 여러 문인을 만났다. 이때 그는 메디치가의 요청을 받아 주로 통치론에 관한 글을 써 권력자들에게 헌정했다. 그러나 그는 불우한 말년을 보내다 1527년에 사망했다.

대표 저서로는 『군주론』을 포함하여 『카스트루치오 카스트라카니의 생애』, 『결혼한 악마 벨파고르』, 『리비우스 역사 논고』, 『만드라골라』, 『우리나라의 언어에 관한 연구 또는 대화』, 『이탈리아 10년사: 1494~1504』, 『전술론』, 『카피톨리』, 『클리치아』, 『트리시노』, 『프랑스 사정기事情記』, 『피렌체 정부 개혁론』, 『피렌체사』, 『황금 나귀』, 『후회에 대한 권고』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