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개집

화개집속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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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05/04/05
Pages/Weight/Size 153*224*30mm
ISBN 9788980721665
Categories 소설/시/희곡 > 중국소설
Description
이 책은 루쉰이 1926년에 출판한 『화개집』과 1927년에 출판한『화개집 속편』을 완역한 것이다. 『화개집』에는 1925년에 쓴 잡문 31편이 수록되어 있고, 『화개집 속편』에는 1926년과 1927년에 쓴 잡문 33편이 수록되어 있다.

그 당시 루쉰의 모든 글들은 그가 여러 가지 난관에 부딪치면서 경험하게 된, 허위와 가식으로 가득 찬 중국의 어두운 현실 속에서 깊은 통찰을 통해 얻어낸, 중국 또는 중국인들의 감추어진 진면목을 보여준다. 중국인에 대한 루쉰의 예리한 통찰과 신랄한 풍자는 현대를 살고 있는 인간의 부정적인 측면을 관통하고 있다. 중국과 중국인의 어두운면을 파고드는 루쉰의 글들은 오늘의 중국과 중국인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Contents
역자 서문

화개집 華蓋集
제기
글자를 곱씹다
청년필독서
문득 떠오른 생각
통신
논변의 혼령
희생을 부추기는 계략
전사와 파리
여름의 세 가지 벌레
문득 떠오른 생각 5, 6
잡감
북경 통신
스승
장성
문득 떠오른 생각 7, 8, 9
"벽에 부딪친" 뒤
결코 한담이 아니다
나의 "적"과 "계"
글자를 곱씹다 3
문득 떠오른 생각 10, 11
여백 메우기 1, 2
KS군에게 답함
"벽에 부딪친" 나무지
결코 한담이 아니다 2
민국 14년의 "경서 읽기"
평심조룡
이것과 저것
결코 한담이 아니다 3
내가 본 북경대학
자질구레한 이야기
"공리"의 장난
이번은 "다수"의 장난이다
후기

화개집속편 華蓋集續編
소인
쓸데없는 일 참견, 학문하기, 회색 등에 대하여
흥미로운 소식
학계의 삼혼
고서와 백화
약간의 비유
편지가 아니다
나는 아직 "그만둘" 수 없다
조왕신에게 제사지내는 날의 만필
황제에 대하여
꽃 없는 장미
꽃 없는 장미 2
"사지 "
비참함과 가소로움
유화진 군을 기념하여
공허한 이야기
이런 "빨갱이 토벌"
꽃 없는 장미 3
새로운 장미 - 그렇지만 여전히 꽃이 없다
다시 한번 더
반농을 위해- 『하전』에 대한 머리말을 쓴 후에 지음
즉흥일기
즉흥일기 속편
즉흥일기 2
"급료 지급"이야기
강연 기록
상해 통신

화개집속편의 속편
하문 통신
하문 통신 2
『아Q정전』의 유래
『삼장취경기』등에 관하여
이른바 "사상계의 선구자" 노신에 대해 알림
하문 통신 3
바다 위 통신

부록
라듐에 대하여
『달나라여행』 변언
『역외소설집』 서언
『월탁』 창간사
미술 보급을 위한 의견서
중국의 문학가, 사상가, 혁명가이자 교육가. 본명은 저우수런이고 자는 위차이이다. 중국 현대 문학의 창시자로 여겨지는 루쉰은 당대의 중국 예술과 화에서 다른 어떤 작가와도 비견될 수 없는 위치를 차지한다. 중국 공산당이 국민적 영웅으로 찬양한 루쉰은 중국혁명의 지적 원천으로서 추앙받아 왔으며, 마오쩌둥을 위해 사상적 기반을 마련한 인물이기도 하다.

저장성 사오싱(紹興)의 지주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조부의 하옥, 아버지의 병사 등으로 어려서부터 고생스럽게 살았다. 청년시대에 진화론과 니체의 초인철학, 톨스토이의 박애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1898년 난징의 강남수사학당에 입학, 당시의 계몽적 신학문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1902년 졸업 후 일본에 유학, 고분학원을 거쳐 1904년 센다이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였으나, 문학의 중요성을 통감하고 의학을 단념, 국민정신의 개조를 위하여 문예 활동에 힘썼다.

1905~1907년 혁명당원의 활동에 참가하고, ‘마라시력설’, ‘문화편지론’ 등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 무렵 유럽의 피압박민족 및 슬라브계 작품에 공감하여 1909년 동생 저우쭤런(周作人)과 ‘역외소설집’을 공역하는 한편, 망명중인 장빙린(章炳麟)에게 사사하였다. 1909년 귀국하여 고향에서 교편을 잡다가 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나자, 남경임시정부와 북경정부의 교육부원이 되어 일하면서 틈틈이 금석 탁본의 수집, 고서 연구 등에 심취하였다. 1918년 문학혁명을 계기로, 처음으로 ‘루쉰(魯迅)’이라는 필명을 사용, 중국현대문학사상 첫번째의 백화소설인 ‘광인일기’를 발표하여 신문학운동의 기초를 다졌다.

5·4운동 전후 ‘신청년’ 잡지의 일에 참가하여 ‘5·4’ 신문화운동의 선봉이 되었다. 1918년에서 1926년에 이르는 동안 창작을 계속하여 소설집 ‘눌함’, ‘방황’, 논문집 ‘분(墳)’, 산문시집 ‘야초’, 산문집 ‘조화석습’, 잡문집 ‘열풍’, ‘화개집(華蓋集)’, ‘화개집 속편’ 등을 출판하였다. 이 중에 ‘공을기(孔乙己)’, ‘고향’, ‘축복’ 등을 발표하여 중국 근대문학을 확립하였는데, 1921년 12월에 발표된 중편소설 ‘아Q정전(阿Q正傳)’은 중국현대문학사상 불후의 대표작으로 세계적 수준의 작품이다. 많은 외국 작가의 작품을 번역하였고, 1920년 이후에는 베이징대학, 베이징여자사범대학 등에서 교편을 잡았다.

1924년 저우쭤런과 어사사를 조직하고, 1925년 청년문학사와 미명사(未名社)를 조직하였으나, 1926년 8월 베이양 군벌의 문화 탄압과 격돌한 베이징 학생애국운동 지지로 말미암아 베이징을 탈출, 아모이대학 중문과 주임으로 부임하고, 1927년 1월 당시의 혁명 중심 광저우(廣州)에 이르러 중산대학의 교무주임이 되었다. 1927년 가을 상하이의 조계에 숨어 쉬광핑(許廣平)과 동거하며 문필생활에 몰두하는 한편, 창조사, 태양사 등 혁명문학을 주창하는 급진적 그룹 및 신월사(新月社) 등 우익적 그룹에 대한 논전을 통하여 매우 전투적인 사회 단평(短評)의 문체를 확립하였다.

한편 소비에트 러시아 문학작품을 번역하여 소개하기도 하였다. 1930년 전후하여 중국자유운동대동맹, 중국좌익작가연맹과 중국민권보장동맹에 참가하여 국민당 정부의 독재 통치와 정치 박해에 항거하였다. 1931년 만주사변 뒤에 대두된 민족주의 문학, 예술지상주의 및 소품문파(小品文派)에 대하여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였다. 1927년부터 1936년까지 역사소설집 ‘고사신편’을 출판하였고, 대부분의 작품과 잡문은 ‘이이집’, ‘삼한집’, ‘이심집’, ‘남강북조집’, ‘위자유서’, ‘준풍월담’, ‘화변문학’, ‘차개정잡문’, ‘차개정잡문 이편’, ‘차개정잡문 말편’, ‘집외집’과 ‘집외집습유’ 등에 수록되었다.

또 1931년부터 판화 운동도 지도하여 중국 신판화의 기틀을 다졌다. 루쉰의 일생은 중국 문화사업에 지대한 공헌을 이룩하였다. ‘미명사(未名社)’, ‘조화사(朝花社)’ 등 문학 단체를 영도하고 지지하였으며, ‘국민신보부간’, ‘망원(莽原)’, ‘어사(語絲)’, ‘분류(奔流)’, ‘맹아(萌芽)’, ‘역문(譯文)’ 등 문예잡지를 주편하였고, 청년 작가를 열성적으로 적극 배양하였다. 외국의 진보된 문학 작품을 번역하는 데 힘쓰고, 국내외의 저명한 회화, 목각을 소개하였으며, 대량의 고전문학을 수집, 연구, 정리하고, ‘중국소설사략’, ‘한문학사강요’를 저술하였으며, ‘혜강집’을 정리하고 ‘회계군고서잡록’, ‘고소설구침(古小說鉤沈)’, ‘당송전기록’, ‘소설구문초’ 등등을 집록하였다. 죽기 직전에는 항일투쟁 전선을 둘러싸고 저우양(周揚) 등과 논쟁을 벌이기도 하였으나, 그가 죽은 뒤에는 대체로 그의 주장에 따른 형태로 문학계의 통일전선이 형성되었다.

그의 문학과 사상에는 모든 허위를 거부하는 정신과 언어의 공전이 없는, 어디까지나 현실에 뿌리박은 강인한 사고가 뚜렷이 부각되어 있다. 1936년 10월 19일 폐결핵으로 말미암아 상하이에서 세상을 떠나고 민중 만여 명이 자발적으로 공제(公祭)를 거행하여 훙자오만국공묘에 묻혔다. 1956년 루쉰의 유해는 훙커우공원에 이장되었다. 1938년 ‘루쉰전집’ 20권이 출판되었다. 그를 혁명의 모범이자 사상의 근원으로 여긴 마오쩌둥에 의해 20세기 내내 중국을 지배한 개혁과 혁명적 변화의 선동가로서 거의 신적인 존재로까지 추앙받았다.

인민정부 성립 후, 루쉰의 저서는 분야별로 나뉘어 ‘루쉰전집’ 10권, ‘루쉰역문집’ 10권, ‘루쉰일기’ 2권, ‘루쉰서신집’이 간행되었고, 루쉰이 편교(編校)한 고적(古籍) 여러 종류도 다시 간행되었다. 1981에는 ‘루쉰전집’ 16권이 출판되었다. 베이징, 상하이, 사오싱, 아모이 등지에는 전후하여 루쉰 박물관, 기념관 등이 건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