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허 대사?虛大師(1721~1785)의 유집遺集은 두 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는 단 한 편뿐이며 나머지는 모두 문文이다. 권1에는 서序 5편, 기記 9편, 제문 6편, 상량문 6편이 있고, 권2에는 문文 10편, 서書 19편 등이 있으며, 부록에는 대사의 행장인 「충허당 기실?虛堂記實」과 당대의 유학자가 대사에게 보낸 편지 2편과 발문跋文이 수록되어 있다.
당대의 유학자 강재 이승연이 충허 대사의 문장을 두고서 “재주가 뛰어나고 기상이 거침없으며 선택한 소재가 넓고 부리는 힘도 깊어 불가의 거벽巨擘이요 선림禪林의 대가라 하기에 충분하다.”라고 평한 것처럼, 대사의 뛰어난 문장 솜씨는 이 문집 곳곳에 잘 드러나 있다. 특히 문집에서 많은 양을 차지하고 있는 편지 같은 경우는 당대의 사대부나 스님들과 교류한 편지가 많은데 그 문장이 매우 아름답고 다채로운 점이 주목할 만하다. 그리고 대사가 평생을 거처한 곳이 경상북도 지역이어서 문집에는 당대 경상도 지역의 사찰과 인물들에 관한 구체적인 기록이 많다는 점에서 사료로서도 문헌적 가치가 높다고 볼 수 있다.
제문祭文-6편
어떤 사람에게 제사를 올리는 글【어떤 사람을 대신해서 짓다.】 祭人文【代人作】 ......... 81
신중들에게 제사를 올리는 글 祭神衆文 ......... 85
성신에게 축원하는 글 城神祝文 ......... 88
부도를 봉안하는 글 浮屠奉安文 ......... 90
신중께 축원하는 글 祝神衆文 ......... 93
벌목하며 축원하는 글 伐木祝文 ......... 96
경상북도 상주尙州 출신으로 어린 시절의 자字는 응문應文이었으며, 집안은 대대로 유현儒賢의 후예로 알려져 있다. 25세 때인 1745년(영조 21)에 출가하여 지리산의 벽송사碧松寺, 불령산의 청암사淸巖寺, 희양산의 봉암사鳳巖寺, 속리산의 청계사淸溪寺, 천주산의 북장사北長寺, 노악露岳의 남장사南長寺 등지에 머물렀다. 스승은 은사恩師로는 시탄時坦, 계사戒師로는 벽허碧虛, 법사法師로는 쌍운雙運을 모셨다. 불경과 유교 경전을 많이 읽은 덕에 문장에 해박하고 막힘이 없어 유학자들 사이에도 명성이 자자하였고, 자리를 펴고 설법을 하면 수많은 생도들이 찾아들었다고 한다. 1785년(정조 9)에 관음전 조실祖室에서 65세를 일기로 천화天化하였다.
경상북도 상주尙州 출신으로 어린 시절의 자字는 응문應文이었으며, 집안은 대대로 유현儒賢의 후예로 알려져 있다. 25세 때인 1745년(영조 21)에 출가하여 지리산의 벽송사碧松寺, 불령산의 청암사淸巖寺, 희양산의 봉암사鳳巖寺, 속리산의 청계사淸溪寺, 천주산의 북장사北長寺, 노악露岳의 남장사南長寺 등지에 머물렀다. 스승은 은사恩師로는 시탄時坦, 계사戒師로는 벽허碧虛, 법사法師로는 쌍운雙運을 모셨다. 불경과 유교 경전을 많이 읽은 덕에 문장에 해박하고 막힘이 없어 유학자들 사이에도 명성이 자자하였고, 자리를 펴고 설법을 하면 수많은 생도들이 찾아들었다고 한다. 1785년(정조 9)에 관음전 조실祖室에서 65세를 일기로 천화天化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