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화악 지탁에게는 '풍사록風使錄' 2권의 저술이 있었는데 속인이 훔쳐가서 사라지고, 학도學徒들이 전송되는 글들을 널리 모은 것이 '삼봉집' 1권이라고 한다. 문경 금룡사金龍寺에 전하는 스님의 진영에는 ‘화엄종주화악당대선사華嚴宗主華嶽堂大禪師’라 하여 그 위상을 보여주고 있다. '삼봉집'은 19세기 초반에 유자들과 교류가 긴밀해진 불교계의 모습을 보여주는 문집이다. 후배에게 시평詩評을 읽도록 하고 문장을 쓸 때 천기를 유출하도록 권하는 모습은 이전에 보이지 않던 면모라 하겠다. 주희朱熹와 왕양명王陽明의 문장을 인용하는 데서도 이전과 다른 폭넓은 독서 경향을 보여준다. 한편 '삼봉집'은 자료가 많지 않은 관북 지역의 사찰과 승려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도 귀중한 문헌이다.
?백두산기?의 경우, 천지연의 장엄한 형상과 기이한 일들을 기록하고 말미에 불교적 전설을 언급하였다. 삼봉의 기문은 백두산에 대한 갑산 부로夫老의 말을 인용하여 당시 사람들의 인식을 전해 주는데, 불교 색채는 거의 없다. 이러한?백두산기?와 달리?천불산록千佛山錄?은 안거와 은거에 대해 시자侍者와 나눈 대화 내용을 기록하는 방식을 취하여 불교 색채가 강하게 드러난다. '삼봉집'에서 또 주목되는 부분은 자연 언어에 대한 관심이다. ?철대사가 말을 구함에 답하여?哲大師求語?에서는 “언어의 지극함은 말로써 말을 없앤다.(言說之極 因言遣言)”는 '대승기신론'의 구절을 중심으로 글을 전개하였다. 삼봉은 이것이 시비와 자타를 논쟁하는 것처럼 그저 말로 말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비판하여 비판 없는 경지에 이르는 것이라 하였다. 비판 없는 경지에서 조화하는 것이 상대를 굴복시키려 하는 것보다 낫다고 하였다. 유교와 불교의 근원이 같다고 여기는 입장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