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생몰연도는 알 수 없다. 『동문선』 등에 따르면, 그의 법명은 체원體元이고, 법호는 牧庵·향여香如이며, 각해대사覺海大師의 호를 받았다. 이진李?(1244~1321)의 둘째 아들이고, 이제현李齊賢(1287~1367)의 바로 위 형이다. 체원이 이제현의 형이라는 점에서 그가 태어난 해를 대략 1280년대 초중반으로 보고 있다. 그는 태정泰定 초(1324~1325)에 반룡사盤龍社의 주법으로 추천되었고, 치화致和 원년(1328)에는 해인사에서 『화엄경관자재보살소설법문별행소』와 『백화도량발원문약해』를 편찬하였으며, 1334년에는 계림부에서 『백화도량발원문약해』를 개판하였다. 1338년에 『화엄경』을 사경하면서 남긴 발문을 보면 당시 체원은 양가도승통兩街都僧統의 지위에 있었다. 체원이 남긴 저술을 통해 14세기 고려 불교의 화엄 교학에 대한 높은 수준을 볼 수 있다.
정확한 생몰연도는 알 수 없다. 『동문선』 등에 따르면, 그의 법명은 체원體元이고, 법호는 牧庵·향여香如이며, 각해대사覺海大師의 호를 받았다. 이진李?(1244~1321)의 둘째 아들이고, 이제현李齊賢(1287~1367)의 바로 위 형이다. 체원이 이제현의 형이라는 점에서 그가 태어난 해를 대략 1280년대 초중반으로 보고 있다. 그는 태정泰定 초(1324~1325)에 반룡사盤龍社의 주법으로 추천되었고, 치화致和 원년(1328)에는 해인사에서 『화엄경관자재보살소설법문별행소』와 『백화도량발원문약해』를 편찬하였으며, 1334년에는 계림부에서 『백화도량발원문약해』를 개판하였다. 1338년에 『화엄경』을 사경하면서 남긴 발문을 보면 당시 체원은 양가도승통兩街都僧統의 지위에 있었다. 체원이 남긴 저술을 통해 14세기 고려 불교의 화엄 교학에 대한 높은 수준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