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정본/중용발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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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17/09/25
Pages/Weight/Size 150*220*18mm
ISBN 9788976822765
Categories 인문 > 동양철학
Description
주자학이 횡행하던 시절, 경전 탐구에 있어서 지배적 담론에 포섭되지 않고 끊임없이 그 본의가 무엇인지를 묻고, 자기 나름의 해답을 구해낸 이례적이고도 선구적인 유학자가 있었다. 그는 바로 일본 고의학(古義學)의 창시자 이토 진사이(伊藤仁齋, 1627~1705)이다. 2013년 『동자문』을 시작으로 2016년 『논어고의』와 『맹자고의』의 출간에 이어, 이번에 『어맹자의』, 『대학정본·중용발휘』가 발간됨으로써 이토 진사이 선집이 총 5권으로 완간되었다.

『대학정본·중용발휘』는 『대학』과 『중용』에 대한 주석을 합본한 책이다. 널리 알려진 대로 『대학』과 『중용』은 『예기』에 포함된 독립된 성격의 논문인데 송나라에 와서 특히 주희의 손에 의해 경전으로까지 승격된 드라마틱한 곡절을 겪은 책이다. 『대학정본』에서 진사이는 『대학』이란 글 자체를 의심하고 『대학』이 공자와 관련된 글이 아니라고까지 주장한다. 여기서 두 가지 점이 중요하다. 진사이가 옳다 그르다하는 시비 문제가 아니다. 첫째 주자학을 전면 비판함으로써 자신의 학문을 완성했다는 사실. 올바른 의미로써의 비판이란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보여준다. 뻔한 비판, 하나마나한 말을 되풀이 하는 게 아니라 거대한 학문체계와 고투함으로써 진사이는 진사이가 될 수 있었다. 두 번째, 진사이의 『대학』 비판은 주희의 사서체계를 붕괴시켰다. 『중용발휘』에서 진사이는 『논어』에 보이는 공자의 말(“선생님은 괴이한 것[怪], 폭력[力], 난리[亂], 귀신[神]을 말씀하지 않으셨다”)을 엄격하게 해석, 적용해 『중용』에 보이는 귀신에 대한 언급을 공자와 관련이 없는 말로 보고 텍스트에서 괄호치고 볼 것을 권한다. 이 때문에 『중용』이란 책이 전례 없는 방식으로 분리돼 상하로 나뉘게 된 것이다. 『중용발휘』라고 제명한 데에는 이렇게 ‘중용의 뜻을 제대로 드러내 보였다’[發揮]는 의미가 담긴 것이다. 중용 주석에 대한 흥미로운 한 예라 할 수 있다.

Contents
대학정본

『대학정본』 서문
대학정본
부록_?『대학』은 공씨가 남긴 책이 아님을 변증함

중용발휘

『중용발휘』 서문
책의 유래를 서술함
강령
상편
하편

원문
대학정본
중용발휘

옮긴이 해제_??사서 체계의 붕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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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이토 진사이,최경열
에도 시대 전기에 활약한 유학자, 고의학파(古義學派)의 창시자. 초명은 고레사다(維貞)이고 뒤에 고레에다(維禎)로 개명했으며, 보통 겐시치(源七), 겐키치(源吉), 겐스케(源佐) 등으로 불렸다. 진사이는 그의 호이며, 고학선생(古學先生)으로도 불렸다. 경제와 문화의 중심지 교토에서 재목상(材木商) 가문의 아들로 태어나, 당시 가장 유명했던 화가 오가타 고린(尾形光琳)의 사촌 여동생과 결혼했다. 청년 시절 주자학에 몰두하였고 이십대 후반에는 가업을 포기하고 불도(佛道)에 전념했으나, 삼십대에 이르러서는 이를 비판하며 유교 고전의 새로운 읽기를 시도하였다. 1662년 사립 유학 학교인 고의당(古義堂)을 설립하여 후학을 양성하기도 한 그는 『논어고의』(論語古義), 『맹자고의』(孟子古義), 『어맹자의』(語孟字義), 『동자문』(童子問), 『중용발휘』(中庸?揮), 『고학선생문집』(古學先生文集), 『진사이일찰』(仁齊日札), 『동지회필기』(同志會筆記) 등의 저서를 남겼으며, 사후 그의 아들 이토 도가이(伊藤東涯)가 모두 교감해서 출판하였다.
에도 시대 전기에 활약한 유학자, 고의학파(古義學派)의 창시자. 초명은 고레사다(維貞)이고 뒤에 고레에다(維禎)로 개명했으며, 보통 겐시치(源七), 겐키치(源吉), 겐스케(源佐) 등으로 불렸다. 진사이는 그의 호이며, 고학선생(古學先生)으로도 불렸다. 경제와 문화의 중심지 교토에서 재목상(材木商) 가문의 아들로 태어나, 당시 가장 유명했던 화가 오가타 고린(尾形光琳)의 사촌 여동생과 결혼했다. 청년 시절 주자학에 몰두하였고 이십대 후반에는 가업을 포기하고 불도(佛道)에 전념했으나, 삼십대에 이르러서는 이를 비판하며 유교 고전의 새로운 읽기를 시도하였다. 1662년 사립 유학 학교인 고의당(古義堂)을 설립하여 후학을 양성하기도 한 그는 『논어고의』(論語古義), 『맹자고의』(孟子古義), 『어맹자의』(語孟字義), 『동자문』(童子問), 『중용발휘』(中庸?揮), 『고학선생문집』(古學先生文集), 『진사이일찰』(仁齊日札), 『동지회필기』(同志會筆記) 등의 저서를 남겼으며, 사후 그의 아들 이토 도가이(伊藤東涯)가 모두 교감해서 출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