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에 대한 철학적 관점들’이라는 부제를 지닌 《헤르메스 콤플렉스》는 기존의 번역이론을 비판하며 시학으로서의 번역, 독서행위로서의 번역, 낯섦이 아닌 동일성에 토대를 둔 번역, 그리고 창조적 결과물로서의 번역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이 책에 따르면 번역은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의 이동이 아니라 한 편의 시에서 다른 한 편의 시로의 이동, 언어의 창조력을 극단까지 밀고 나가는 텍스트에 대한 시학적 접근의 결과이다.
번역은 사실이 아니라 의미의 가정들에 오히려 기반을 두기 때문에, 번역이론에는 합리적인 토대가 있지 않다. 따라서 모든 번역이론은 어떤 객관적 의미도 지니지 않은 가정에 기초한다. 정신이나 글자에 대한 충실이라는 추상성에 머물고 있는 번역이론을 비판하며 저자는 낯섦과 타자이론의 주인공들인 베르만, 벤야민, 데리다 등을 검토하고, 전기 독일낭만주의 철학을 참조하며 총체성을 지향하는 번역, 재창조의 영역 안에 위치한 번역의 시학과 미학에 대한 관점을 전개한다. 중요한 것은 번역해야 할 텍스트는 언제나 열려있으며, 텍스트의 의미를 구성하는 것은 언어가 아니라 미학이다. 그에 따르면 번역에 대한 성찰은 이론의 협소함을 벗어나야 한다. 번역에 관한 하나의 이론이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고, 텍스트에 관한 그리고 언어의 전이에 관한 다양한 층위의 진실임 직한 가정들만이 있을 뿐기에 그러하다.
이 책에 따르면 번역학에서 다루어지는 수많은 이론들은 ‘헤르메스 콤플렉스’의 징후이다. 자유를 상실하였지만 리라를 아폴론에게 건네준 자로서의 헤르메스에게 예술성과 창의성을 누리며 신의 반열 맨 앞자리에 자리를 마련하려는 욕망이 초래한 콤플렉스가 낳은 현상들이다. 그것은 무한한 자유를 누리게 된 전령사 헤르메스가 가져온 비극, 그리고 아폴론의 메시지를 자기 의도대로 해석하는 오류를 범하게 된 헤르메스 스스로가 처하게 될 불행이다.
가정과 추측에 근거할 뿐인 이론을 정론으로 수용하는 것은, 텍스트에 기초한 분석이 아니라 ‘의도’라는 이론적 개념에서 궁극을 맛보려 하는 것은, 번역을 그리고 번역에 대한 성찰을, 자기 의도대로 메시지를 자유롭게 해석하게 된 헤르메스처럼, 초월적 행위로 만들어 버리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그래서 번역은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옮겨가는 표현활동이 아니라 도착언어 안에 출발언어를 재창조하는 시도의 차원에서 고찰될 필요가 있음을 이 책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