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양명 좌천지 귀주성 용장(龍場) 관련 자료를
국내 처음 역주(譯註)하고 사상사적 의미와 특징을 해설
이 책은 ‘양명심학의 탄생지’인 중국 귀주성 용장 좌천 시기에 왕양명이 남긴 자료를 모아 국내에서 처음으로 역주(譯註)한 것이다. 왕양명의 『연보』를 기반으로, 용장에서 지은 시(詩) 105수, 기사(記事)류 8편, 교유(敎諭)류 2편, 논술(論述)류 2편, 서문(序文)류 5편, 서신(書信)류 6편, 제문(祭文)류 3편, 서예 작품 5편에 대해 역주하였다. 이 책을 통해 왕양명 사상의 발전과정과 용장에서의 사회, 교육, 문화, 예술 활동 정황을 두루 살펴볼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 학계에는 『왕양명전집(王陽明全集)』 가운데 『전습록(傳習錄)』 정도만 번역되어 있다. 따라서 학술적 논의도 주로 『전습록』 에 한정되어 있어, 양명학을 입체적으로 그려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용장 좌천 시기 왕양명의 자료들에 대한 역주와 더불어 각각의 자료들이 지니고 있는 사상사적 의미와 특징 해설을 자세하게 해설하고 있는 점에서 이 책은 의미가 크다.
왕수인王守仁(1472-1528)은 중국 명나라의 사상가, 정치가, 교육가로, 중국사상사에서 ‘양명심학陽明心學’이라는 장르를 만들었다. 자는 백안伯安, 호는 양명陽明, 시호는 문성文成이다. 중국 절강성浙江省 여요餘姚 사람이다. 1506년 환관 유근劉瑾 탄핵 운동에 참가했다가 화를 불러 투옥되었다. 그 다음 1508년 중국 귀주貴州 수문현修文縣 용장역龍場驛 역승驛丞으로 좌천되었다. 왕양명은 용장에서 약 3년간(1508 봄∼1510년 3월)을 머문다. 그 동안 그는 “성인聖人의 도는 자신의 본성 속에 자족한 것[吾性自足]”이라는, 양명학의 탄생을 알리는 깨달음을 얻는다. 이후 ‘심즉리’를 토대로, 그는 지행합일설, 치양지설, 만물일체론 등의 학설을 전개해 간다. 왕양명은 비로소 당시 유행하던 주자의 이학理學에서 벗어나 심학心學 중심의 양명학파를 형성하게 된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로는 『전습록傳習錄』과 『왕문성공전서王文成公全書』가 있다.
왕수인王守仁(1472-1528)은 중국 명나라의 사상가, 정치가, 교육가로, 중국사상사에서 ‘양명심학陽明心學’이라는 장르를 만들었다. 자는 백안伯安, 호는 양명陽明, 시호는 문성文成이다. 중국 절강성浙江省 여요餘姚 사람이다. 1506년 환관 유근劉瑾 탄핵 운동에 참가했다가 화를 불러 투옥되었다. 그 다음 1508년 중국 귀주貴州 수문현修文縣 용장역龍場驛 역승驛丞으로 좌천되었다. 왕양명은 용장에서 약 3년간(1508 봄∼1510년 3월)을 머문다. 그 동안 그는 “성인聖人의 도는 자신의 본성 속에 자족한 것[吾性自足]”이라는, 양명학의 탄생을 알리는 깨달음을 얻는다. 이후 ‘심즉리’를 토대로, 그는 지행합일설, 치양지설, 만물일체론 등의 학설을 전개해 간다. 왕양명은 비로소 당시 유행하던 주자의 이학理學에서 벗어나 심학心學 중심의 양명학파를 형성하게 된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로는 『전습록傳習錄』과 『왕문성공전서王文成公全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