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을 받아서 땅에 심고, 다시 작물이 자란다.
그런 자연의 법칙이 어느 새인가 사라진 오늘의 농업!
씨앗은 종묘상에서 사는 물건이 되었으며 누가 심든 어디에서 심든 모두 같은 작물이 자란다. 열매가 품은 씨앗은 그저 버리거나 없애버려야 할 장애물이 되었다.
“다시 씨앗을 받아보고 싶다”
풀무학교 학생들과 씨앗농사꾼 오도 선생이
씨앗과 울고 웃으며 10년간 기록한 씨앗농사 매뉴얼!
농업의 순환고리가 사라졌다
어릴 때 꽃씨나 과일씨를 받아 땅에 묻은 뒤 싹이 나는지 어떤지 두근대며 기다려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 자란 식물의 씨앗을 받아 땅에 심으면 다시 식물이 자라난다’는 자연의 법칙을 알고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 농가에서 그런 자연의 법칙을 이용하는 농업은 찾아보기 힘들다. 씨앗은 종묘상에서 사 와 뿌리고, 수확한 열매나 작물에 맺힌 씨앗은 그저 버려야 할 쓰레기에 불과해졌다. 품종 개량을 해 씨가 없는 과일 등을 개발하기도 한다. 다음해에 심을 씨감자나 옥수수를 갈무리해 고이고이 보관해 놓는 모습은 옛 풍경이 되었다.
이것은 종묘상의 씨앗이 훨씬 ‘효율적인’ 농사를 가능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요즘 판매되는 씨앗은 대부분 F1 씨앗이다. F1 씨앗이란 우수한 종자끼리 교배해 만든 씨앗으로, 모계 작물의 우수한 유전적 형질만을 이어받은 후대 작물을 거둘 수 있다.
하지만 이 씨앗은 1대에서만 그 우수한 유전적 형질이 나타날 뿐, 2대, 3대로 내려갈수록 퇴화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씨앗을 받을 수 없다. 때문에 F1 씨앗을 사서 심고 수확을 한 뒤 다시 농사를 짓고 싶다면 다시 씨앗을 사서 심어야 한다. 수확한 작물에서 씨앗을 받아 그것을 심을 수는 없는 것이다.
이렇게 된 데는 복합적인 이유가 있다. 첫 번째 이유는 농업 구조의 변화다. 자급자족을 1차적 목표로 했던 전통적 농업과 달리 현대의 농업의 목표는 보다 많은 수익이다. 때문에 최대한 많은 수확물이 상품 가치를 가져야 한다. 유기농업이 장기적인 농업환경과 건강에 좋다는 것을 알면서도 농부들이 쉬이 농약이나 화학비료 등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다. 공산품으로 따지면 ‘불량 생산품’을 줄이는 방책인 것이다. 종묘상의 종자를 심으면 자연 상태에서 받은 씨앗을 심는 것보다 상품 가치 높은 작물들을 보다 많이 수확할 수 있다.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농사를 지을 때 종묘상의 씨앗을 이용한다.
두 번째 이유는 종묘상들의 움직임 때문이다. 종묘 기업 중에는 대기업이 많다. 특히 ‘몬산토’라는 세계적 종묘 기업은 여러 언론 매체에서 다룰 정도로 유명하다. 그 내용 중에는 악명도 있다. 몬산토는 여러 종자에 특허를 냈다. 씨앗에 저작권이 생기면서, 농부들은 돈을 내고 씨앗을 사지 않으면 불법 농업을 하는 형국이 되어버렸다. 이미 캐나다나 미국 등 몇몇 대규모 농업 중심 국가에서는 개별 농가가 종자를 보유하는 것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들 국가의 농부들은 반드시 종묘상에 돈을 내고 산 씨앗만을 이용해 농사를 지어야 한다. 캐나다에서는 바람에 날려 들어온 종묘상의 종자가 발아해 자라났다는 이유로 불법 농업 소송에 휘말린 경우도 있다. 종묘상들은 종자를 독점해 그것으로 이익을 창출하고자 한다. 따라서 ‘씨앗을 받아 농사를 짓는’ 자연농법을 배척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씨앗을 받는 이유
이 책의 저자 오도는 대안학교이자 농업기술고등학교인 ‘풀무학교’의 교사다. 풀무학교에는 고등학교 과정 외에도 ‘전공부’라고 해서 고교 졸업생들을 위한 좀 더 심도 있는 농업 교육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저자와 전공부 학생들이 약 10년 전부터 시작한 일이 있다. 바로 채종이다. 우리말로 하자면 ‘씨앗 받기’다. 종묘상에서 사서 심는 것이 당연해진 씨앗. 하지만 저자가 어릴 때만 해도 수확 후에는 씨앗을 갈무리해 다음해에 뿌리고는 했었다. 그 기억을 되짚으며 ‘지금도 씨앗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도달하게 되었고, 저자는 직접 씨앗을 받고 그것을 뿌려 거두기에 도전했다.
‘씨앗 받는 농사’는 ‘작물을 수확하기 위한 농사’와 다르다. 이제까지의 농사가 먹을 열매를 따고 곡물을 얻기 위해서였다면 씨앗을 받기 위한 농사는 그 방법부터 바꾸어야 한다. 그것을 모르고 기존 농법에만 의지한다면 씨앗 받기에 실패할 확률이 높아진다.
저자는 자기 자신과 학생들이 10년 동안 직접 성공과 실패를 오가며 얻어낸 ‘씨앗 받는 농사’의 정수를 이 책에 모았다. 씨앗을 직접 받아보고 싶은 농부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실패를 줄여주기 위해서다.
작물을 분류한 기준부터가 이채롭다. 보통은 가지과, 박과, 십자화과 등 수확물을 기준으로 작물을 분류한다. 그러나 이 책 속에서 모든 작물들은 오직 ‘씨앗’에 의해 분류된다. ‘후두둑 떨어지는 씨앗’, ‘따뜻하면 옷을 벗는 씨앗’, ‘탁탁 털어내는 씨앗’ 등 씨앗의 형태와 씨앗을 거두는 방법에 따라 작물을 나누고, 각 작물의 씨앗을 어떻게 농사지어 수확해야 하는지를 상세하게 알려준다. 또 풍부한 그림과 사진 자료가 있어 채종이 낯선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번거롭게 왜 씨앗을 받아야 하는가?”라고 묻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자와 풀무학교 학생들은 말한다. “씨앗을 받는 것은 생명을 잇고 땅을 잇는 일”이라고. 우리에게는 아주 오래 전부터 이 땅에서 태어나 긴 세월 동안 이어지던 우리만의 씨앗이 있었다. 그러나 종묘상에서 판매하는 종자들이 농업을 점령하면서부터 누가 심든, 어디에 심든 모두 같은 작물만 자라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토종이라 할 만한 씨앗들 중에는 절멸한 종류도 꽤 많다. 때문에 이 책은 채종은 씨앗과 함께 살아남기 위한 소농의 몸부림이라고 말한다. 씨앗 받기는 생물다양성을 보존하는 일이고, 곧 지구환경을 지키는 소농의 몫이자, 현재의 농업 패러다임에 저항하는 소농의 저항이라는 것이다. 풀무학교 전공부의 학생이나 이 책의 그림을 그린 장은경의 일기 한 쪽이 채종을 하는 이유, 그리고 그 의미에 대해 알려준다.
‘그동안 이렇게 잘 자라서 씨앗을 맺었구나. 내 기분 내키는 대로 어느 때는 자식처럼 돌봐주고 어느 때는 무심하기 짝이 없었는데. 이 씨 중에 당근과 시금치, 무, 대파, 양파는 올해 심어서 내년에 씨앗 받을 준비를 한다. 이렇게 계속 전공부만의 씨앗을 만든다. 전공부 땅에 적응한, 홍동 땅에서 자라, 홍동에 내리는 비와 바람과 햇볕을 받은 씨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