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스튜어트 밀 자서전

$14.95
SKU
9788974531553
+ Wish
[Free shipping over $100]

Standard Shipping estimated by Fri 12/6 - Thu 12/12 (주문일로부 10-14 영업일)

Express Shipping estimated by Tue 12/3 - Thu 12/5 (주문일로부 7-9 영업일)

* 안내되는 배송 완료 예상일은 유통사/배송사의 상황에 따라 예고 없이 변동될 수 있습니다.
Publication Date 2010/04/27
Pages/Weight/Size 153*224*30mm
ISBN 9788974531553
Categories 청소년 > 청소년 역사/인물
Description
19세기의 사회적 정세와 사상적 상황에 처하여 심각하게 고민하고 진지하게 사색하고 인류의 복리를 위하여 분투한 밀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일생을 통하여 진리를 추구하고, 자유와 인간 존엄성을 옹호한 밀의 생애를 만나 볼 수 있다. 특히 밀의 아버지가 밀에게 베푼 천재교육은 인류의 모든 고귀한 사상을 터득하게 하고, 또 그것을 종합하여 전 인류 역사를 통하여 가장 고귀한 인격과 가장 심오한 사상을 형성하게 된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오늘날 전 세계가 모범으로 삼는 영국의 건전한 민주주의와 온 인류가 부러워하는 영국의 훌륭한 사회보장제도 같은 것도 그로 말미암은 것이 크다는 점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 일 것이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일생동안 진리를 추구하였고, 자유와 인간 존엄성을 옹호한 그의 삶을 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Contents
1. 1806-1819 어린 시적과 그 때에 받은 교육
2. 1813-1821 소년기에 받은 도덕적 영향 -아버지의 성격과 사상
3. 1821-1823 교육의마지막 단계와 독학의 시작
4. 1823-1828 젊은 날의 전도 '웨스트민스터 평론'
5. 1826-1832 내 정신사의 한 위기-한 단계 위로
6. 1830-1840 내 생애 가장 귀중한 교제의 시작, 아버님의 별세 1840년까지의 저작과 그 밖의 한 일들
7. 1840-1870 그 후의 내 생애의 개관 '논리학 체계'의 완성, '경제학원리'의 출판, 결혼,동인도 회사 퇴직, '자유론'의 출판, '대의정치에 대한 고찰 ' 미국의 남북전쟁 해밀턴 철학의 검토, 의원 생활
그 후의 내 생활
Author
존 스튜어트 밀,최명관
영국의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인 밀은 1806년, 스코틀랜드 출신의 철학자이며 경제학자였던 제임스 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아주 어릴 때부터 그에게 극도로 엄격한 영재교육을 시켰다. 그 결과 밀은 3살 때부터 그리스어를 배워서 8살에 헤로도토스와 플라톤의 저작들을 원어로 읽었고, 8살부터는 라틴어를 배워서 오비디우스 등이 쓴 라틴어 고전도 읽었다. 12살부터는 스콜라 철학의 논리학을 공부했고,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저작들을 원어로 읽었다. 13살 때는 애덤 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도의 저작을 통해 정치경제학을 공부했다. 14살 때는 프랑스에서 1년을 지내면서 몽펠리에 대학에서 화학, 논리학, 고등수학에 관한 강의를 들었다. 17세 때인 1823년에는 영국 동인도 회사에 입사하여 아버지의 조수로 일했으며, 그 후 1858년까지 재직하며 연구와 저술 활동을 병행했다.

20살 무렵 밀은 심각한 정신적 위기에 부딪힌다. 신경쇠약으로 우울증에 빠져 자살을 생각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의 작품을 읽고 다시 재기했다. 이때부터 밀의 사상은 변하기 시작했다. 그는 엄격한 공리주의적 이성 제일주의의 문제점을 깨달았고, 사색과 분석뿐만 아니라 수동적인 감수성이 능동적 능력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후 그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을 비판하고, 자본주의의 모순을 바로잡기 위해 제한적인 정부 개입을 옹호하는 경제학 사상을 주장했다. 그러면서 사회주의 사상과, 자유주의 정치철학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밀은 행동하는 사상가였다. 그는 사상에만 갇혀 있지 않았다. 1865년부터 1868년까지 세인트앤드루스 대학의 학장으로 재임했고, 같은 기간 동안 런던 웨스트민스터에서 하원의원으로 활동했다. 1866년, 그는 하원의원으로서 헌정사상 최초로 여성 참정권을 주장했고, 보통 선거권의 도입 같은 선거제도의 개혁을 촉구했다. 또한 노동조합과 협동농장을 중심으로 한 사회개혁과 아일랜드의 부담 경감 등도 주장했다.

주요 저서로 『논리학 체계』(1843), 『정치경제학 원리』(1848), 『자유론』(1859), 『대의정부론』(1861), 『공리주의』(1863), 『자서전』(1873) 등이 있다.
영국의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인 밀은 1806년, 스코틀랜드 출신의 철학자이며 경제학자였던 제임스 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아주 어릴 때부터 그에게 극도로 엄격한 영재교육을 시켰다. 그 결과 밀은 3살 때부터 그리스어를 배워서 8살에 헤로도토스와 플라톤의 저작들을 원어로 읽었고, 8살부터는 라틴어를 배워서 오비디우스 등이 쓴 라틴어 고전도 읽었다. 12살부터는 스콜라 철학의 논리학을 공부했고,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저작들을 원어로 읽었다. 13살 때는 애덤 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도의 저작을 통해 정치경제학을 공부했다. 14살 때는 프랑스에서 1년을 지내면서 몽펠리에 대학에서 화학, 논리학, 고등수학에 관한 강의를 들었다. 17세 때인 1823년에는 영국 동인도 회사에 입사하여 아버지의 조수로 일했으며, 그 후 1858년까지 재직하며 연구와 저술 활동을 병행했다.

20살 무렵 밀은 심각한 정신적 위기에 부딪힌다. 신경쇠약으로 우울증에 빠져 자살을 생각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의 작품을 읽고 다시 재기했다. 이때부터 밀의 사상은 변하기 시작했다. 그는 엄격한 공리주의적 이성 제일주의의 문제점을 깨달았고, 사색과 분석뿐만 아니라 수동적인 감수성이 능동적 능력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후 그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을 비판하고, 자본주의의 모순을 바로잡기 위해 제한적인 정부 개입을 옹호하는 경제학 사상을 주장했다. 그러면서 사회주의 사상과, 자유주의 정치철학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밀은 행동하는 사상가였다. 그는 사상에만 갇혀 있지 않았다. 1865년부터 1868년까지 세인트앤드루스 대학의 학장으로 재임했고, 같은 기간 동안 런던 웨스트민스터에서 하원의원으로 활동했다. 1866년, 그는 하원의원으로서 헌정사상 최초로 여성 참정권을 주장했고, 보통 선거권의 도입 같은 선거제도의 개혁을 촉구했다. 또한 노동조합과 협동농장을 중심으로 한 사회개혁과 아일랜드의 부담 경감 등도 주장했다.

주요 저서로 『논리학 체계』(1843), 『정치경제학 원리』(1848), 『자유론』(1859), 『대의정부론』(1861), 『공리주의』(1863), 『자서전』(1873)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