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시간 동안 인간은 스스로를 ‘이성적 동물’로 정하고 살아 왔다. 인간에게 있는 본능적 동물성을 어떻게 이성으로 질서화하고 비율을 잘 맞추어 행사되게 하는가가 ‘덜 인간’보다 나은 ‘더 인간’을 가려내는 척도였다. 인간을 ‘계산’의 능력인 이성의 틀로 이해했던 삶은 보편적 계산의 얼개에 자신을 편입시키지 않고는 자신의 존재가 스스로 의미를 갖지 못하였다. 산다는 것은 정작 집단적 이념의 공간 속으로 내몰리게 되는 과정이었다. 결국 집단적 이념을 내재화한 것을 자신의 가치로 착각한 인간은 자신이 종속적인 주체로 전락해 가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자신이 정말 자신으로 존재한다고 착각한 채 시간을 겪어야 했다.
예술가로서 심업은 이것을 동물적 촉수로 느끼고 부단히 저항하고 갈망했다. 저항과 갈망, 이 불일치 속에서 심업은 “의리는 있으나 주의가 산만하고 난폭”해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최근 글에서 밝힌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어떤 권위도 다 시큰둥”하였으며, “모범생 얼굴을 가졌지만 내면은 거칠고 삐딱”했다는 최진석의 고백과 겹친다. “문제아로 남고 싶었지, 정해진 이론에 의해 정련되기를 거부”해 온 그의 철학적 여정 또한 그 거친 결의 감촉이 비슷하다. 이제, 우리는 “구멍이 좀 듬성듬성 나고 허점이 가려지지 않더라도, 그냥 그렇게 걷고 싶었을 뿐”이라는 철학자 최진석만의 무늬를 바투 대면한다.
Contents
서문
1부 노자와 장자, 현대의 철학자들
노자는 은둔의 철학자인가?
털 한 올을 뽑아서라도 천하를 이롭게 하지 않으리라 ― 노자가 말하는 ‘자신을 귀하게 여김’에 관하여
지식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가?
노장(老莊)에게 인간은 어떠한 존재인가? ― 공맹(公孟)과의 비교를 통하여
쾨니히스베르크의 위대한 중국인과 노장의 어색한 만남
2부 경계 위를 걷는 철학
대립들의 꼬임으로 존재하라 ― 노자의 자연관 : 생태 문제 극복을 위한 대안
사람이 죽는다는 것 ― 도교의 생사관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의 유학 읽기
노자와 유가 사이 ― 곽점(郭店) 초간(楚簡) 출토 이후
3부 틈새를 견디는 긴 호흡을 위하여
중국 사유의 현상성 ― 선진(先秦) 철학에서의 두 유형을 중심으로
‘툭’ 하고 드러나는 마음 ― 공자의 직(直)
겸손한 주체들의 행복한 일상 ― 공공(公共) 철학의 공복(共福) 사상
욕망(欲) : 선진 철학을 읽는 또 하나의 창
개별자들의 철학적 등장 ― 곽상 철학의 자성(自性) 개념
4부 불안은 탄성을 낳는다
심업과 ‘뽕뽕이’ ― 경계를 세우다
사소(事小)의 지혜로 빚는 ‘부드러운 권력’
차이는 보편의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다 ― 78회 교토포럼 참가 인상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