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 살짜리 만삭의 임신부가 동갑인 남편을 권총으로 살해하는 것으로 시작되어 엉뚱하게도 작가의 죽음으로 끝나는 이 짤막한 소설은 아멜리 노통을 이미 알고 있는 독자들에게조차 충격적인 강렬한 '노통표' 소설이다. 여기에서는 그녀의 소설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유년과 더불어, 살인과 에로티즘의 문제가 특유의 간결하고 경쾌한 필치로 다루어진다. "인간의 몸을 가지고 하는 행위라는 점에서" 살인과 성행위를 같이 보는 작가의 시각은 섹스를 작은 죽음으로 인식했던 바타이유를 연상시키지만, 훨씬 가볍고 단순하다. 바타이유가 폭력적 희열의 절정으로서 에로티즘과 죽음의 의미를 물었다면, 노통의 주인공들이 고민하는 것은 그저 저 골치 아픈 시체를 어떻게 처리할까 하는 식이다. 또한 이 작품에서 비교적 깊이 있게 다루어지는 모성애의 폐해 역시, "영원히 여성적인 것의 구원"을 말하면서도 모성애의 폐해를 경계했던 괴테의 맥을 잇고 있지만 한결 단선적이다. 플렉트뤼드와 클레망스의 관계는 충분히 예측가능한 선을 넘지 않는다.
이 작품에서 역자가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은 '명명(命名)'에 대한 인식이다. 뤼세트가 남편을 살해하는 이유는 표면적으로 그가 태어날 아기에게 마련해둔 이름 때문이다. 그녀로서는 자기 아기에게 탕기나 조엘이라는,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철수나 순이라는 이름이 붙여지는 것을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어느 정도로? 자는 남편의 잘생긴 얼굴에 대고 권총의 탄환을 모두 비워낼 정도로. 감옥에 갇힌 그녀는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타협적인 이름 제르트뤼드 역시 거부한다. 뱃속의 아기를 위해 '플렉트뤼드'라는 이름을 고르면서 그녀는 모험적이면서도 위험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호신부를 지닌 인생을 예비한다. 그런 다음 그 인생에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자신 역시 감옥에서 목을 맨다. 하나의 이름이 곧 하나의 인생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어미에 의한 아비 살해와 어미 자신의 자살이라는 엽기적 상황에서 태어나 이모이자 새엄마의 편집적인 사랑 속에서 성장한 플렉트뤼드는, 노래를 부르기 위해 스스로 로베르라는 예명을 선택한다. 그런데 이 로베르라는 이름은 사전의 이름이기도 하다. 사전이란, 곧 말의 숲, 말의 우주가 아니던가.
몇 년 전 『사랑의 파괴』와 『오후 네시』를 번역하면서 유쾌하게 만난 기발함과 재치, 경쾌함 속에 담긴 풍자 같은 작가적 특징을 『두려움과 떨림』이나 『적의 화장법』 같은 다른 작품들을 통해 줄곧 확인하면서, 내공이 있는 몇몇 북클럽에서 노통의 소설이 자주 언급되는 것을 보아왔다. 이 소설에서도 역시 '좀더 깊게, 좀더 자세히, 좀더 진지하게'를 외치는 역자의 요구를 노통은 그저 가볍게 건드리며 빠르게 나아가고 갑작스럽게 다리 아래로 몸을 던지려다가 옛사랑을 만나고 가수가 되고 작가를 살해한다. 이야기의 끝에 이르렀다는 것을 알고 역자가 다급하게 외친다. 아앗, 그게 아니야, 명명의 문제를 좀더 파고들란 말이야, 몰리에르를 동원한 외모나 클래식 발레 얘긴 안 해도 돼. 그럼 이건 볼륨에 관계없이 대작이 될 거야.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게 바로 대작의 강박관념에서 훌쩍 벗어나 있는 프랑스 현대 소설의 한 현상, 아멜리 노통인 것을. - 역자 주
Author
아멜리 노통,김남주
잔인함과 유머가 탁월하게 어우러진 작품으로 현대 프랑스 문학에서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 벨기에 출신의 작가. 본명은 파비엔 클레르 노통브이며 1967년 일본 고베에서 태어났다. 외교관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일본, 중국, 미국, 방글라데시, 미얀마, 영국, 라오스 등지에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냈다. 스물다섯 살에 발표한 첫 소설 『살인자의 건강법』(1992)이 '천재의 탄생'이라는 비평계의 찬사를 받으며 단번에 10만 부가 팔리는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발표하는 작품마다 화제를 낳았고 지금까지 노통브의 작품은 전 세계 1천6백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 『두려움과 떨림』(1999)이 프랑스 학술원 소설 대상을 받으며 작가로서의 입지를 굳혔고 그 외에도 르네팔레상, 알랭푸르니에상, 자크샤르돈상, 보카시옹상 등 수많은 상을 수상했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매년 거르지 않고 하나씩 작품을 발표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2015년 벨기에 왕국 남작 작위를 받았으며, 현재 브뤼셀과 파리를 오가며 작품 활동을 이어 가고 있다. 최근 노통브는 『갈증』(2019)으로 공쿠르상 최종 후보에 오르고 『첫 번째 피』(2021)로 르노도상을 수상해 대중성과 더불어 그 문학성을 다시금 인정받고 있다.
잔인함과 유머가 탁월하게 어우러진 작품으로 현대 프랑스 문학에서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 벨기에 출신의 작가. 본명은 파비엔 클레르 노통브이며 1967년 일본 고베에서 태어났다. 외교관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일본, 중국, 미국, 방글라데시, 미얀마, 영국, 라오스 등지에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냈다. 스물다섯 살에 발표한 첫 소설 『살인자의 건강법』(1992)이 '천재의 탄생'이라는 비평계의 찬사를 받으며 단번에 10만 부가 팔리는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발표하는 작품마다 화제를 낳았고 지금까지 노통브의 작품은 전 세계 1천6백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 『두려움과 떨림』(1999)이 프랑스 학술원 소설 대상을 받으며 작가로서의 입지를 굳혔고 그 외에도 르네팔레상, 알랭푸르니에상, 자크샤르돈상, 보카시옹상 등 수많은 상을 수상했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매년 거르지 않고 하나씩 작품을 발표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2015년 벨기에 왕국 남작 작위를 받았으며, 현재 브뤼셀과 파리를 오가며 작품 활동을 이어 가고 있다. 최근 노통브는 『갈증』(2019)으로 공쿠르상 최종 후보에 오르고 『첫 번째 피』(2021)로 르노도상을 수상해 대중성과 더불어 그 문학성을 다시금 인정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