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이라는 것이 저 피안의 세계에 있지 않고 다국적기업의 간부진 가운데 존재한다면 어떨까? 신성불가침의 전략위원회가 열리는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열한 명의 중역들이 발언을 한다. 이제 그 열한 가지 목소리들은 흡사 단테의 지옥을 이루는 동심원들처럼 이 소설을 구성해나간다. 논의되는 안건들은 이익배당과 구조조정, 해고문제 등등이지만 그 이면에는 지극히 치졸한 속내와 차마 공개할 수 없는 욕망들이 어지러이 혼재한다.
주부임원의 촘촘하게 짜인 일상과 전직 사장의 자기파괴적 광기, 젊은 게이의 퇴폐적인 냉소주의와 여성 인사책임자의 싸늘한 좌절감, 권력욕에 눈먼 변태여성과 겉멋만 잔뜩 든 고위간부의 성적 망상이 뒤죽박죽 얽히는 가운데 유일한 공통분모로 떠오르는 것이 있으니, 다름 아닌 그 모두가 서로서로 타인에 대한 처절한 전쟁을 치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울러 이 기괴한 ‘신곡(神曲)’의 한복판에는 일종의 금전적 마왕인 로르티, ‘깔끔한 청소부이자, 푸른 눈의 연쇄살인범’인 회장께서 턱하니 버티고 앉아 있다. 이것은 비즈니스의 정글과 그 안에서 연명하는 신경증환자들 면전에 유쾌하면서도 냉혹한 일격을 날리는 소설이다.
중역들의 회의, 안건은 회사의 조직개편 문제이나 그 배후에 개인 저마다의 속내가 드러난다. 회의실은 이윤산출의 대기실, 상대의 면상을 공개매매하고 그 에너지를 인수합병하면서 심리적, 생리적 파산선고를 서슴없이 한다. 상대에 대한 보이지 않는 인신공격이 교활하기까지 하지만 유머와 메시지를 담은 가운데 소설은 오늘날 기업과 기업인들의 실상을 폭로한다. 주목할 것은 이 소설의 독특한 구성 방식, 11명의 중역들이 각기 지옥, 연옥, 낙원에 속해 있다. “단테의 지옥”을 연상시키는 아홉 개의 서클, 이른바 9계의 밑바닥 세계가 낱낱이 파헤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