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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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06/11/13
Pages/Weight/Size 153*224*30mm
ISBN 9788970635330
Categories 청소년 > 청소년 문학
Description
김동인은 예술의 자율성 확보를 위한 노력, 소설의 지위 격상, 합리주의, 남성적 미학, 육체의 긍정 등을 통하여 한국문학의 일면성 타파에 크게 이바지한 소설가이다. 작가는 「감자」에서 가난이라는 물리적 환경이 한 인간의 정신과 삶에 미치는 영향을 자연주의 기법으로 서술하고 있다.

논술과 한국문학의 이상적인 만남, 현직 중 고등학교 국어교사들이 모여 만든 열림원 논술한국문학전집 2차분으로 시대적 배경과 사회문화적 현상을 더욱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작품의 주제와 밀착시켜 풀어내었다. 곳곳에 첨가된 친절한 해설이 청소년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들도 좀더 쉽고 편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Contents
일러두기

감상의 길잡이 | 약한자의 슬픔
생각해 볼 거리
깊이 생각해보기

감상의 길잡이 | 배따라기
생각해 볼 거리

감상의 길잡이 | 태형
생각해 볼 거리

감상의 길잡이 | 감자
생각해 볼 거리
깊이 생각해보기

감상의 길잡이 | 명문
생각해 볼 거리

감상의 길잡이 | K박사의 연구
생각해 볼 거리

감상의 길잡이 | 광염 소나타
생각해 볼 거리

감상의 길잡이 | 발가락이 닮았다
생각해 볼 거리

감상의 길잡이 | 붉은 산
생각해 볼 거리

감상의 길잡이 | 대동강은 속상인다
생각해 볼 거리

감상의 길잡이 | 광화사
생각해 볼 거리

감상의 길잡이 | 곰네
생각해 볼 거리

김동인의 생애와 문학
논술 | 예술은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 있는가?
Author
김동인
호는 금동琴童, 춘사春士. 평양 진석동에서 출생했다. 기독교 학교인 평양숭덕소학교와 숭실중학교를 거쳐 일본의 도쿄 학원, 메이지 학원, 가와바타 미술학교 등에서 공부하였다. 1917년 일본 유학 중 이광수(李光洙), 안재홍(安在鴻) 등과 교제하였다. 1919년 전영택, 주요한 등과 우리나라 최초의 문예지 [창조]를 발간하였다. 처녀작 「약한 자의 슬픔」을 시작으로 「목숨」, 「배따라기」, 「감자」, 「광염 소나타」, 「발가락이 닮았다」, 「광화사」 등의 단편소설을 통하여 간결하고 현대적인 문체로 문장 혁신에 공헌하였다.

1923년 첫 창작집 『목숨』을 출판하였고, 1924년 폐간된 [창조]의 후신 격인 동인지 [영대]를 창간했다. 1930년 장편소설 『젊은 그들』을 [동아일보]에 연재, [삼천리]에 「광염 소나타」를 발표했다. 1932년 [동광]에 「발가락이 닮았다」, [삼천리]에 「붉은 산」을 발표하였다 .1933년에는 [조선일보]에 『운현궁의 봄』을 연재하는 한편 조선일보에 학예부장으로 입사하였으나 얼마 후 사임하고 1935년 월간지 [야담]을 발간하였다.

극심한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소설 쓰기에 전념하다 마약 중독에 걸려 병마에 시달리던 중 1939년 ‘성전 종군 작가’로 황국 위문을 떠났으나 1942년 불경죄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1943년 조선문인보국회 간사로 활동하였으며, 1944년 친일소설「성암의 길」을 발표하였다. 1948년 장편 역사소설『을지문덕』과 단편「망국인기」를 집필하던 중 생활고와 뇌막염, 동맥경화로 병석에 누우며 중단하고 1951년 6·25 전쟁 중에 숙환으로 서울 하왕십리동 자택에서 사망하였다.
호는 금동琴童, 춘사春士. 평양 진석동에서 출생했다. 기독교 학교인 평양숭덕소학교와 숭실중학교를 거쳐 일본의 도쿄 학원, 메이지 학원, 가와바타 미술학교 등에서 공부하였다. 1917년 일본 유학 중 이광수(李光洙), 안재홍(安在鴻) 등과 교제하였다. 1919년 전영택, 주요한 등과 우리나라 최초의 문예지 [창조]를 발간하였다. 처녀작 「약한 자의 슬픔」을 시작으로 「목숨」, 「배따라기」, 「감자」, 「광염 소나타」, 「발가락이 닮았다」, 「광화사」 등의 단편소설을 통하여 간결하고 현대적인 문체로 문장 혁신에 공헌하였다.

1923년 첫 창작집 『목숨』을 출판하였고, 1924년 폐간된 [창조]의 후신 격인 동인지 [영대]를 창간했다. 1930년 장편소설 『젊은 그들』을 [동아일보]에 연재, [삼천리]에 「광염 소나타」를 발표했다. 1932년 [동광]에 「발가락이 닮았다」, [삼천리]에 「붉은 산」을 발표하였다 .1933년에는 [조선일보]에 『운현궁의 봄』을 연재하는 한편 조선일보에 학예부장으로 입사하였으나 얼마 후 사임하고 1935년 월간지 [야담]을 발간하였다.

극심한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소설 쓰기에 전념하다 마약 중독에 걸려 병마에 시달리던 중 1939년 ‘성전 종군 작가’로 황국 위문을 떠났으나 1942년 불경죄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1943년 조선문인보국회 간사로 활동하였으며, 1944년 친일소설「성암의 길」을 발표하였다. 1948년 장편 역사소설『을지문덕』과 단편「망국인기」를 집필하던 중 생활고와 뇌막염, 동맥경화로 병석에 누우며 중단하고 1951년 6·25 전쟁 중에 숙환으로 서울 하왕십리동 자택에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