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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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13/09/06
Pages/Weight/Size 153*224*20mm
ISBN 9788968170614
Categories 인문 > 기호학/언어학
Description
언어와 사회의 기원에 관한 성찰

언어의 기원은 항상 수많은 가설을 야기했으며, 인류학자들은 물론 고고학자, 언어학자, 심지어 유전학자들까지도 여러 연구로 이 주제를 탐구하는데 이바지하였다. 『언어의 기원』은 이렇듯 무궁한 탐구심을 불러일으키는 주제에 관해 성찰한 루소의 저작이다.『언어의 기원』은 총 20개 장으로 구성된 소책자로 제1장부터 11장까지는 언어의 발생과 쇠퇴, 음성언어와 문자언어의 관련성, 북방 언어와 남방 언어의 형성과 그 차이점 등을 주제로 다룬다. 제12장에서 19장은 음악의 기원, 멜로디와 화음, 색과 소리의 관계, 음악의 쇠퇴를 논했으며, 마지막 20장은 언어와 정치체제의 관계를 고찰하면서 언어의 다양성 문제를 다루었다.

루소는 인간의 언어는 욕구가 아니라 정념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는 최초의 목소리를 토해낸 것이 배고픔도 목마름도 아니고 사랑, 증오, 동정, 분노였다고 주장한다. 또 인간의 최초의 언어는 일종의 노래였다고 본다. 그러므로 인간의 언어가 노래, 춤, 등 예술과 같이 발달한 것으로 생각했으며, 이러한 발달은 사회조직의 연속적인 단계와 일치한다고 보았다.

『언어의 기원』의 이번 번역본은 교육적 측면에서 데리다의 『그라마톨로지』, 아르노와 랑슬로의 『일반이성문법』을 확실히 이해시키는 길잡이 역할을 한다. 또한, 여러 면에서 루소가 자신의 관점을 따르고 있다는 콩디야크의 주장, 더불어 종종 비교되는 독일의 언어학자인 헤르더의 기원론도 함께 짚어보고 있다. 이러한 해설, 주석을 바탕으로 앞선 학자들과의 사상적 연관성 및 분석관 비교 등을 통해 독자들에게 더 논리적인 비평적 안목을 함께 제시했다.
Contents
역자 서문
일러두기

01 우리의 생각을 전달하는 다양한 방법
02 말의 최초 발명은 욕구가 아닌 정념에서 왔다
03 최초의 언어는 비유적이었을 것이다
04 최초 언어의 변별적 특성과 그 언어가 겪었을 많은 변화
05 문자에 관하여
06 호메로스가 십중팔구 글자를 쓸 줄 알았다면
07 근대적 운율에 대하여
08 언어의 기원에서 일반적 차이와 지역적인 차이
09 남방 언어의 형성
10 북방 언어의 형성
11 이들 차이점에 관한 고찰
12 음악의 기원과 여러 가지 관계
13 멜로디에 관하여
14 화음에 대하여
15 우리의 가장 생생한 감각은 종종 정신적 느낌으로 움직인다는 사실
16 색과 소리 사이의 잘못된 유추
17 자신의 예술에 해를 끼치는 음악가들의 오류
18 그리스의 음악 체계와 우리의 음악 체계는 아무 관련성이 없다는 사실
19 음악은 어떻게 쇠퇴하였는가
20 언어와 정치체제의 관계

저자 연보
저자에 대하여
작품에 대하여
1. 작품의 집필 구성 연대
2. 수사본과 초판본
3. 작품해설
루소와 콩디야크
루소와 헤르더

참고서적
찾아보기
Author
장 자크 루소,한문희
18세기 프랑스의 사상가이자 소설가. 1712년 '유럽의 가장 작은 공화국’ 제네바의 시계 수리공 집안에서 태어난 루소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 손에서 자랐다. 10살이 되던 해 아버지가 칼부림 사건으로 도피한 후부터는 외숙부 밑에서 자랐다. 그는 외사촌과 함께 한 목사의 집에서 라틴어를 비롯한 여러 교육을 받았으나 엄격하고 인위적인 교육 방법은 그에게 맞지 않았다. 그 후 법원 서기의 필사 수습 사환, 동판 조각사의 견습공 등으로 일했으나 독서열과 상상력을 펼칠 수 없는 나날은 그에게 크나큰 짐이 되었다.

열여섯에 제네바를 떠난 루소는 바랑 부인을 만나게 된다. 바랑 남작부인과 루소의 관계는 마치 모자간의 사랑과 이성간의 사랑이 기묘하게 뒤섞인 것 같았다고 한다. 바랑 부인은 그에게 지적 성장의 기회를 제공했고, 루소는 이때 철학과 문학에 대한 소양을 풍부히 갖추게 된다. 불우한 소년기를 보낸 그는 스물여덟에 가정교사로 일하는 등 사회 활동을 하다가 파리에 정착하게 되었다.

1742년 파리로 나온 그는 디드로가 공동 편집을 진행하던 『백과전서』의 여러 항목을 집필하면서 본격적인 저술가로 활동하게 된다. 선되었고 이것이 『학문과 예술론』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어 사상가로서의 출발점에 서게 되었다. 그 후 저작에만 몰두하여 『불평등기원론』, 『정치 경제론』, 『신 엘로이즈』등 많은 저술활동을 하였다. 마흔이 되던 1762년 4월에 자유 실현에 관한『사회계약론』을, 5월에 인간 교육에 관한 사상을 담은 『에밀』을 출간했으나, 파리 의회는 『에밀』을 압수하는 한편 루소를 체포하라고 명령한다. 그는 스위스로 도피했지만 제네바 당국도 『사회계약론』과 『에밀』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리고 책을 불태우는 등 적대 분위기는 고조되었다.

1768년에는 1745년 이래 지내온 테레즈 르바쇠르와 정식으로 이혼한 루소는 피해망상에 괴로워하기도 하였다. 1770년 파리로 돌아와 자기 변호를 위한 작품 『루소, 장 자크를 재판하다』를 쓰기도 했다. 주변의 박해로 여러 곳을 떠돌던 그는 지라르댕 후작의 배려로 그의 영지에서 집필 활동을 하다가 집필 중이던 『고독한 산책가의 몽상』을 완성하지 못하고 1788년 생을 마쳤다.

그는 이성 중심의 사상을 허물고 낭만주의의 탄생에 공헌했으며, 자유가 보편적인 동경의 대상이라고 역설하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찬미했다. 그의 개혁 사상은 당시 예술에 혁신을 가져왔고 사람들의 생활 방식과 교육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프랑스 혁명에서 그의 자유민권사상은 혁명지도자들의 사상적 지주가 되었으며 19세기 프랑스 낭만주의 문학의 선구자 역할을 하였다. 주요 저작으로 『학예론』, 『인간 불평등 기원론』, 『신 엘로이즈』, 『음악 사전』 ,『고백록』,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등이 있다.
18세기 프랑스의 사상가이자 소설가. 1712년 '유럽의 가장 작은 공화국’ 제네바의 시계 수리공 집안에서 태어난 루소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 손에서 자랐다. 10살이 되던 해 아버지가 칼부림 사건으로 도피한 후부터는 외숙부 밑에서 자랐다. 그는 외사촌과 함께 한 목사의 집에서 라틴어를 비롯한 여러 교육을 받았으나 엄격하고 인위적인 교육 방법은 그에게 맞지 않았다. 그 후 법원 서기의 필사 수습 사환, 동판 조각사의 견습공 등으로 일했으나 독서열과 상상력을 펼칠 수 없는 나날은 그에게 크나큰 짐이 되었다.

열여섯에 제네바를 떠난 루소는 바랑 부인을 만나게 된다. 바랑 남작부인과 루소의 관계는 마치 모자간의 사랑과 이성간의 사랑이 기묘하게 뒤섞인 것 같았다고 한다. 바랑 부인은 그에게 지적 성장의 기회를 제공했고, 루소는 이때 철학과 문학에 대한 소양을 풍부히 갖추게 된다. 불우한 소년기를 보낸 그는 스물여덟에 가정교사로 일하는 등 사회 활동을 하다가 파리에 정착하게 되었다.

1742년 파리로 나온 그는 디드로가 공동 편집을 진행하던 『백과전서』의 여러 항목을 집필하면서 본격적인 저술가로 활동하게 된다. 선되었고 이것이 『학문과 예술론』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어 사상가로서의 출발점에 서게 되었다. 그 후 저작에만 몰두하여 『불평등기원론』, 『정치 경제론』, 『신 엘로이즈』등 많은 저술활동을 하였다. 마흔이 되던 1762년 4월에 자유 실현에 관한『사회계약론』을, 5월에 인간 교육에 관한 사상을 담은 『에밀』을 출간했으나, 파리 의회는 『에밀』을 압수하는 한편 루소를 체포하라고 명령한다. 그는 스위스로 도피했지만 제네바 당국도 『사회계약론』과 『에밀』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리고 책을 불태우는 등 적대 분위기는 고조되었다.

1768년에는 1745년 이래 지내온 테레즈 르바쇠르와 정식으로 이혼한 루소는 피해망상에 괴로워하기도 하였다. 1770년 파리로 돌아와 자기 변호를 위한 작품 『루소, 장 자크를 재판하다』를 쓰기도 했다. 주변의 박해로 여러 곳을 떠돌던 그는 지라르댕 후작의 배려로 그의 영지에서 집필 활동을 하다가 집필 중이던 『고독한 산책가의 몽상』을 완성하지 못하고 1788년 생을 마쳤다.

그는 이성 중심의 사상을 허물고 낭만주의의 탄생에 공헌했으며, 자유가 보편적인 동경의 대상이라고 역설하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찬미했다. 그의 개혁 사상은 당시 예술에 혁신을 가져왔고 사람들의 생활 방식과 교육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프랑스 혁명에서 그의 자유민권사상은 혁명지도자들의 사상적 지주가 되었으며 19세기 프랑스 낭만주의 문학의 선구자 역할을 하였다. 주요 저작으로 『학예론』, 『인간 불평등 기원론』, 『신 엘로이즈』, 『음악 사전』 ,『고백록』,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