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지성사의 난해한 몇몇 인물 중에서도 우뚝 솟아 있는 발터 벤야민을 다루는 책은 여러 권 출간된 바 있다. 이들 2차 문헌은 벤야민을 다루면서 서로의 내용과 입장이 만장일치를 이룬 게 한 편도 없을 만큼 벤야민은 수렴될 수 없는 다면적, 다층적 면모를 지닌 인물이었다. 수천 명의 선행 연구자의 어깨를 딛고 선 이 평전의 저자들은 그러나 앞선 책들에서 아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전기나 비평을 막론하고 취사선택적인 경향, 즉 하나의 주제를 설정하고 나머지를 배제하는 경향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 결과 벤야민의 초상은 편파적으로 그려졌고, 그를 신화화하거나 곡해하는 방식들도 나타났다.
영미권에서 가장 권위 있는 벤야민 연구자들인 아일런드와 제닝스의 이 평전은 벤야민의 전체적인 윤곽을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를 위해 엄밀한 연대기적 접근법을 취했고, 벤야민 작업들의 숨은 무대였던 일상에 주목하면서 그가 남긴 주저들의 학문적, 역사적 맥락들을 밝히고자 한다. 이런 접근법은 벤야민 삶의 각 단계와 작업들의 역사성을 조명할 수 있도록 하면서, 평전을 쓰는 저자들이 파악하는 벤야민의 학문적 궤적에 신뢰성을 담보해주기도 한다.
이 책은 가령 벤야민의 어린 시절이 한 개인의 사적 자취로 사라지지 않으며 경험과 기억의 비평적 대상으로 남는 면모를 추적해가는 가운데, 그의 삶을 온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전기적 요소도 충분히 갖추고 있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것은 그의 삶에 대한 객관적 접근과 동시에 연민·이해의 잣대이며, 다른 한편 한 개인의 삶을 철저히 학술과 비평의 관점에서 꿰어내는 점이다. 즉 단락 하나하나, 페이지 한 쪽 한 쪽이 그의 논문과 에세이들을 인용·압축하고 그에 대한 비평적 서술을 곁들여 삶에 대한 평전이면서 텍스트에 대한 서평이나 비평에세이의 성격을 갖는다.
벤야민은 지식인의 글쓰기에서 ‘가독성’을 중요한 기준으로 삼지 않았다. 하지만 2차 문헌으로서 이 책은 벤야민의 해독되지 않는 난해함을 좀더 명료한 초상으로 그려내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있다. 물론 그럼으로써 벤야민이라는 수수께끼를 풀거나 그의 모순된 모습들을 하나로 용해시키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우리가 그의 이해 불가능의 면모들을 좀더 분명히 인식할 수 있도록, 그 원인이나 배경이나 의미를 조금 더 풀어놓고자 했다. 이것이 이 평전에 학술적 깊이를 부여한다.
Contents
서론
1장 베를린의 유년: 1892~1912
2장 청년의 형이상학: 베를린, 프라이부르크, 1912~1914
3장 비평의 개념: 베를린, 뮌헨, 베른, 1915~1919
4장 친화력: 베를린, 하이델베르크, 1920~1922
5장 학계의 유목민: 프랑크푸르트, 베를린, 이탈리아, 1923~1926
6장 바이마르 시대의 지식인: 베를린, 모스크바, 1925~1928
7장 파괴적 성격: 베를린, 파리, 이비사, 1929~1932
8장 망명: 파리, 이비사, 1933~1934
9장 파리의 길, 파리의 글: 파리, 산레모, 스코우스보스트란, 1935~1937
10장 보들레르, 그리고 파리의 길바닥: 파리, 산레모, 스코우스보스트란, 1938~1940
11장 역사의 천사: 파리, 느베르, 마르세유, 포트보우, 1939~1940
에필로그
옮긴이 후기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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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하워드 아일런드,마이클 제닝스,김정아
현재 ‘발터 벤야민의 유대인다움’과 ‘자각으로서의 교육’을 연구 중이다. 2011년 MIT에서 최고의 교수들에게 시상하는 제임스 A. 앤드 루스 레비턴 상을 수상했으며, 같은 대학에서 ‘서양 문학의 기원’ ‘현대소설’ ‘소설 연구: 카프카’ 등 문학을 가르친다.
현재 ‘발터 벤야민의 유대인다움’과 ‘자각으로서의 교육’을 연구 중이다. 2011년 MIT에서 최고의 교수들에게 시상하는 제임스 A. 앤드 루스 레비턴 상을 수상했으며, 같은 대학에서 ‘서양 문학의 기원’ ‘현대소설’ ‘소설 연구: 카프카’ 등 문학을 가르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