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메시스를 말할 때 우리는 흔히 ‘모방’이란 개념을 떠올리며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으로 거슬러 올라가 그 기원을 추적한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미메시스는 특히 미학적 구성의 개념으로 부각되었는데, 이를테면 화가가 그림을 그릴 때 자연을 재현하면서 미메시스적 행위를 한다는 식이었다. 하지만 미메시스를 ‘imitation’으로 번역하는 것은 커다란 오해의 소지가 있다. 왜냐하면 예술가는 모범(대상) 속에서 그 모범이 그때까지 인식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지니고 있던 일정한 특성들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즉 미메시스는 세계 속에 이미 현전하는 것을 단순히 따라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여러 실천적인 지점을 드러내는 행위다.
그러므로 미메시스 개념은 전면적으로 재정립될 필요가 있는데, 그간 많은 이들은 ‘미메시스’를 다룰 때 고전적 저작으로 꼽히는 에리히 아우어바흐의 『미메시스』를 연구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이 책은 오늘날까지 수많은 문예학자를 고취시키며 여전히 중요한 저작으로 평가받는다. 다만 한계점을 짚자면, 아우어바흐는 미메시스에 대한 해석을 사회적 발전과 실천들을 향해 열어놓지 않고, 문학적 재현의 전통을 재구성하는 작업에 한정지었다. 즉 그는 ‘사회적 미메시스’에 대한 생각에 천착하지 않았는데, 그가 그러한 작업에 착수하려면 문학사적 연구를 버리고 사회학적 시각을 취했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들은 바로 이 지점에서 그들만의 독보적인 연구를 수행한다. ‘사회적 미메시스’ 개념을 중심으로 문화, 미학, 사회과학, 교육학 등 여러 분과학문에 걸쳐 그 개념을 확장시키며, 특히 미메시스로 인해 실천적 지평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는가를 탐색한다. ‘미메시스’라는 말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계를 향해 취하는 태도를 특징짓는다. 사람들은 세계를 받아들이지만, 그 세계가 자기 위에 군림하도록 수동적으로 내버려두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들은 세계에 건설적인 행동을 하며 응답한다. 게바우어와 불프 두 학자는 20년 넘게 공동 연구를 수행하면서 이처럼 미메시스 개념을 확장해왔고, 그것이 플라톤 시대 이전에 지녔던 전통적 의미까지 새롭게 되살리면서 오늘날 차이, 주체 구성, 사회적 행동의 구성 이론과 어떤 접점을 가질 수 있는가를 논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들은 세계를 다시 한번 만들어내는 일에 몰두하는데, 그것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아닌, 미메시스함으로써 변별성을 창출해낸 새로운 세계가 될 것이다.
Contents
한국어판 서문
서문
제1장 문화에서의 미메시스
1. 플라톤에서 데리다까지 미메시스의 구상
굴곡이 많은 미메시스의 변천사│플라톤: 아름다운 것과 위험한 가상│아리스토텔레스: 자연을 산출하는 힘에 대한 미메시스│권력의 도구로서의 미메시스│인류학적 범주로서의 미메시스│미메시스와 연기演技
2. 인류학적 개념으로서의 미메시스
의태擬態: 생태학적 미메시스│미메시스와 마법│대중의 형성│미메시스와 폭력│미메시스와 타자│사회적 미메시스와 미학적 미메시스의 수렴
3. 시간의 미메시스
일상생활에서의 시간│문학의 시간 모델들
제2장 미학에서의 미메시스
4. 미메시스와 시각성
5. 세계로 향하는 미학적 길들: 미메시스와 교육의 관계에 대하여
문제│사회적 영향과 교육적 영향│상들을 미메시스적으로 다루기│추기
6. 미메시스와 미의 가상
7. 미의 미메시스와 프루스트적 실망
8. 알려지지 않은 화자: 누가 이야기를 들려주는가?
제3장 사회세계에서의 미메시스
9. 사회과학의 개념으로서의 미메시스
10. 사회적 미메시스
11. 사회적 행동의 미메시스적 토대: 세계의 전유와 의례 행위
세계의 전유와 주체의 구성│의례, 주체의 구성, 공동체│전망
12. 놀이, 언어, 몸
스포츠에서의 놀이│언어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