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배우기만하고 사색하지 않으면 얻음이 없고, 사색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논어』 「위정」(2-15)
배우는 사람이 공부하는 것은 연단煙丹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으니, 반드시 먼저 100여 근의 숯불로 한꺼번에 달구고 나서 바야흐로 약한 불로써 잘 달여 완성할 수 있다. 요즘 사람들은 100여 근의 숯불로 달구지도 않고 바로 약한 불로 달이려고 하니, 어떻게 이룰 수 있겠는가?
『주자어류』 「학2·총론위학지방」(8-66)
“글을 쓰는 도중에 예기치 않은 어려움에 봉착했다. 내가 무엇보다 익숙하고 그래서 잘 알고 있다고 믿었던 주자의 학론이 이상하리만치 글로 풀어내기 어려웠던 점이 그것이었다. 처음에는, 이미 머릿속에는 주자의 학론에 대한 정형화된 나만의 인식의 틀이 있었고 그것을 글로 옮기기만 하면 될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종의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등 뒤를 잡아끌며 나를 움직이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한동안 왜 이럴까, 왜 이럴까, 당황하며 안절부절했다. 그런데 석연치 않은 느낌의 정체는 필자가 마음을 비우고 주자의 학론을 다시 천천히 돌아보면서 드러나기 시작했다. 주자는 자신의 학론 및 독서론을 통해, 배우는 자 자신의 견해를 앞세우기보다는 마음을 비우고서 보다 투명하고 열린 관점으로 익숙하게 읽어가는 공부, 하나하나 자기 체험에서 이해하는 공부, 큰 진리에 대한 지향성은 놓치지 않되 일상의 평이한 실천과 평이한 언어로 담아낼 수 있는 공부를 주장한다. 그런데 나는 주자가 제안하는 이와 같은 공부 자세와는 적지 않게 동떨어진 태도, 즉 어설픈 선입견을 관철해서 쉽게 정리하려 들고, 또한 평이하기보다는 고원한 언어를 주로해서 설명해보려는 태도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Contents
책머리에
‘본성 체현體現’으로서의 유교의 학
1장 유교의 학론學論, 그 전개와 전망
1. 유교의 ‘학學’과 현대의 ‘배움’, 그 거리 따져보기
2. 공자의 학
3. 맹자의 학
4. 주자의 학
5. ‘본성 체현體現’으로서의 배움, 지금 가능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