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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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13/05/29
Pages/Weight/Size 128*188*20mm
ISBN 9788966809677
Categories 인문 > 동양철학
Description
≪인역≫은 ≪주역≫에 대한 새로운 해석 체계다. ≪주역≫은 텅 빈 집과 같다. 성이심은 거기에 인간의 마음을 채워 넣었다. 역의 이치로 인간의 마음과 감정을 이해하려 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인간의 마음에 대한 연구서이며 감정에 대한 백과사전이라 할 만하다.≪인역≫의 의의도설과 전체 5권 가운데 권1, 문자회1권을 번역했다.
Contents
해설
지은이에 대해

반곡선생(盤谷先生) 인역(人易) 의의도설(擬議圖說)
견주어 보고서 논의하는 도표[擬議圖]
견주어 보고서 논의하는 글[擬議說]
문답의 프롤로그[問答張本]
문자회 범례(文字膾凡例)

반곡선생(盤谷先生) 인역(人易) 1권
문자를 잘게 회 치다[文字膾] 1권
1. 인역(人易)
2. 천명[命]
3. 모습[貌]
4. 마음[心]
5. 몸과 마음[身心]
6. 말[言]
7. 들음[聽]
8. 봄[視]
9. 사려[思]
10. 기쁨[喜]
11. 분노[怒]
12. 슬픔[哀]
13. 두려움[懼]
14. 사랑 혹은 아낌[愛]
15. 미움 혹은 증오[惡]
16. 욕심[欲]
17. 경건함 혹은 공경함[敬]

옮긴이에 대해
Author
성이심,심의용
성이심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인물이다. 그가 살던 시대는 숙종(肅宗), 경종(景宗), 영조(英祖) 세 명의 왕이 통치한 시기였다. 그는 세상을 등지고 학문에만 매진했던 은둔거사였으며, 명시적으로 드러난 학맥(學脈)은 없었다. 그의 문인인 이뢰(李磊)가 쓴 <반곡성선생행장(盤谷成先生行狀)>에 따르면 그의 휘(諱)는 이심(以心)이고 자(字)는 덕성(德盛)으로 그 선친은 창녕(昌寧) 사람이다. 그래서 본관은 창녕이고 검교공파(檢校公派) 화천부원군(花泉府院君) 후손으로 시조로부터 20세손이다.

나주(羅州) 금안동(金鞍洞)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총명했으나 18세에 일찍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로 빈곤하게 살면서 공부에 매진했다. 1722년 41세 때 고부(古阜) 반용곡(盤龍谷)에 옮겨 와 살았는데 함께 살았던 사람이 일곱 명이 되어 사람들이 그 마을을 ‘처사촌(處士村)’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학문은 우계(牛溪) 선생을 따랐다고 한다. 우계란 성혼(成渾, 1535∼1598)을 말한다. 성혼은 율곡 이이와 사칠론(四七論)을 전개했고, 평생 친구로 지냈으며 함께 서인으로 분류되지만, 또한 노론의 시조는 율곡 이이이고 소론의 시조는 우계 성혼이라고 평가되기도 한다. 이로 보아 성이심은 노론 계열보다는 소론 계열에 속한 사람이 아닐까 추측한다.

죽기 한 해 전인 1738년 7월에 부인과 아들을 불러 “꿈에 내가 죽는 날짜에 대한 고함이 있었다(夢有告我死期)”고 하고, 그날로부터 병이 깊어져 한 해를 지내고 1739년 11월 12일 반곡(盤谷)의 청화재(淸和齋)에서 죽었으니, 향년 58세였다. ≪인역≫ 외에도 ≪광망록(狂妄錄)≫, ≪남강정해몽설(南崗亭解蒙說)≫, ≪선비고몽기≫, 서찰(書札), 소초(疏草), 시고(詩稿) 등을 남겼다고 하지만 전해지지는 않는다.
성이심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인물이다. 그가 살던 시대는 숙종(肅宗), 경종(景宗), 영조(英祖) 세 명의 왕이 통치한 시기였다. 그는 세상을 등지고 학문에만 매진했던 은둔거사였으며, 명시적으로 드러난 학맥(學脈)은 없었다. 그의 문인인 이뢰(李磊)가 쓴 <반곡성선생행장(盤谷成先生行狀)>에 따르면 그의 휘(諱)는 이심(以心)이고 자(字)는 덕성(德盛)으로 그 선친은 창녕(昌寧) 사람이다. 그래서 본관은 창녕이고 검교공파(檢校公派) 화천부원군(花泉府院君) 후손으로 시조로부터 20세손이다.

나주(羅州) 금안동(金鞍洞)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총명했으나 18세에 일찍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로 빈곤하게 살면서 공부에 매진했다. 1722년 41세 때 고부(古阜) 반용곡(盤龍谷)에 옮겨 와 살았는데 함께 살았던 사람이 일곱 명이 되어 사람들이 그 마을을 ‘처사촌(處士村)’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학문은 우계(牛溪) 선생을 따랐다고 한다. 우계란 성혼(成渾, 1535∼1598)을 말한다. 성혼은 율곡 이이와 사칠론(四七論)을 전개했고, 평생 친구로 지냈으며 함께 서인으로 분류되지만, 또한 노론의 시조는 율곡 이이이고 소론의 시조는 우계 성혼이라고 평가되기도 한다. 이로 보아 성이심은 노론 계열보다는 소론 계열에 속한 사람이 아닐까 추측한다.

죽기 한 해 전인 1738년 7월에 부인과 아들을 불러 “꿈에 내가 죽는 날짜에 대한 고함이 있었다(夢有告我死期)”고 하고, 그날로부터 병이 깊어져 한 해를 지내고 1739년 11월 12일 반곡(盤谷)의 청화재(淸和齋)에서 죽었으니, 향년 58세였다. ≪인역≫ 외에도 ≪광망록(狂妄錄)≫, ≪남강정해몽설(南崗亭解蒙說)≫, ≪선비고몽기≫, 서찰(書札), 소초(疏草), 시고(詩稿) 등을 남겼다고 하지만 전해지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