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라 감독, 양다솔 작가 추천
안네 프랑크 재단이 공인한 단 한 권의 그래픽 노블
『안네의 일기』에는 인간의 감정을 그린 전쟁의 구체적인 얼굴이 있다.
이 탁월한 글은 전쟁의 기록을 넘어 생을 향한 빛나는 의지와 영감으로 충만하다.
─ 김보라(영화 〈벌새〉 감독)
김보라 감독, 양다솔 작가 추천
안네 프랑크 재단이 공인한 단 한 권의 그래픽 노블
『안네의 일기』에는 인간의 감정을 그린 전쟁의 구체적인 얼굴이 있다.
이 탁월한 글은 전쟁의 기록을 넘어 생을 향한 빛나는 의지와 영감으로 충만하다.
─김보라(영화 〈벌새〉 감독)
『안네의 일기』는 안네 프랑크가 제2차 세계대전 시기 나치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2년간 네덜란드의 은신처에서 생활하며 기록한 일기를 주로 엮은 책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힌 열 권의 책 가운데 한 권으로 꼽힐 정도로 시대와 언어를 뛰어넘어 오늘날까지 수많은 독자에게 사랑받고 있다. 안네가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하는 고민과 경험, 감정, 꿈 등을 내밀하게 털어놓은 이 일기는 함께 은신했던 가족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안네의 아버지 오토 프랑크에 의해 종전 이후인 1947년 ‘은신처’를 뜻하는 네덜란드어 “Bet Achterhuis”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이 책은 영어로 번역되어 1952년 “The Diary of a Young Girl”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이후 지금까지 6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최초 발간 당시 『안네의 일기』는 많은 부분이 삭제, 편집되어 판본마다 내용의 범위가 달랐다. 안네 프랑크 재단 설립자이기도 한 오토 프랑크가 1980년 사망한 뒤 안네의 자필 원고는 암스테르담 국립전시자료연구소에 기증되었고, 저작이 지닌 가치와 중요성을 인정받아 2007년 네덜란드 주요 문헌 목록(De Canon van Nederland), 2009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저작권을 소유한 안네 프랑크 재단은 삭제되었던 내용을 모두 복구해 1991년 네덜란드를 시작으로 영국, 독일, 미국, 프랑스 등 15개국에 무삭제 완전판을 발간했다. 초판보다 4분의 1가량 늘어난 내용을 통해 은신처라는 비참하고 불안한 환경에서도 “희망이 있는 곳에 삶이 있다”라는 신념을 지킨 안네의 짧은 삶을 더욱 온전하게 보여준다.
『안네의 일기』 그래픽 노블은 『안네의 일기』 완전판을 바탕으로 〈바시르와 왈츠를〉(Waltz with Bashir)을 감독한 아리 폴만과 미술감독 데이비드 폴론스키가 각색해 안네 프랑크 재단의 공인을 받은 유일한 그래픽 노블이다. 전체 내용을 그래픽으로 옮긴다면 10년 이상 소요되고 분량이 3,500쪽에 달할 것이었기에 일기의 많은 부분을 통합했고, 일부를 활용하면서도 전체 내용을 충실히 담아냈다. 안네 프랑크의 정신과 유산을 보존한다는 사명감 아래 안네가 지닌 특유의 유머 감각과 성숙함, 호기심, 상상력은 물론 자신감 넘치고 인기 많았던 학생이었던 시절부터 전쟁의 그늘 아래서도 빛을 잃지 않으려는 소녀의 삶까지 신중하게 구현했다. 안네의 세계를 시각화한 이 책은 안네의 세계가 무의미하게 파괴된 것이 아니라 영원히 살아 숨 쉴 것임을 증명한다.
Author
안네 프랑크,아리 폴만,데이비드 폴론스키,박미경
1929년 독일의 상업 도시 프랑크푸르트에서 유대인 은행가 오토 프랑크와 어머니 에디트 사이에서 태어났다. 에디트는 독실한 개혁파 유대교 신자였다. 안네는 언니 마르고트와 함께 어려서부터 시나고그에서 유대교 신앙을 배웠다. 1938년 이후 나치는 유대인들을 유럽 사회에서 소외시키기 위해 학교 진학에서도 차별을 했다. 이 때문에 안네는 몬테소리 학교에서 개별 자유 수업을 받고 유대인 중학교에 진학하였다.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하자 가족과 함께 네덜란드로 이주했다. 네덜란드에까지 반유대법이 도입되자 1942년부터 독일 군대를 피해 가족들과 함께 숨어 지냈다.
안네가 일기를 쓰기 시작한 지 2년이 지났을 무렵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이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안네 가족에게 전해졌다. 일기를 쓰며 두려움을 달래고 희망을 가졌지만, 1944년 8월 4일 독일 비밀경찰이 안네 가족을 찾아냈고, 그들은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갔다. 결국 연합국이 승리를 거두기 두 달 전인 1945년 3월 안네는 열여섯 살의 어린 나이로 베르겐벨젠 수용소에서 영양실조와 장티푸스로 세상을 떠났다. 전쟁이 끝난 뒤 1947년, 『안네의 일기』가 출간되며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1929년 독일의 상업 도시 프랑크푸르트에서 유대인 은행가 오토 프랑크와 어머니 에디트 사이에서 태어났다. 에디트는 독실한 개혁파 유대교 신자였다. 안네는 언니 마르고트와 함께 어려서부터 시나고그에서 유대교 신앙을 배웠다. 1938년 이후 나치는 유대인들을 유럽 사회에서 소외시키기 위해 학교 진학에서도 차별을 했다. 이 때문에 안네는 몬테소리 학교에서 개별 자유 수업을 받고 유대인 중학교에 진학하였다.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하자 가족과 함께 네덜란드로 이주했다. 네덜란드에까지 반유대법이 도입되자 1942년부터 독일 군대를 피해 가족들과 함께 숨어 지냈다.
안네가 일기를 쓰기 시작한 지 2년이 지났을 무렵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이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안네 가족에게 전해졌다. 일기를 쓰며 두려움을 달래고 희망을 가졌지만, 1944년 8월 4일 독일 비밀경찰이 안네 가족을 찾아냈고, 그들은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갔다. 결국 연합국이 승리를 거두기 두 달 전인 1945년 3월 안네는 열여섯 살의 어린 나이로 베르겐벨젠 수용소에서 영양실조와 장티푸스로 세상을 떠났다. 전쟁이 끝난 뒤 1947년, 『안네의 일기』가 출간되며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