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초 SNS를 점령했던 건 다름 아닌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 선언이었다. 도화선은 “IS보다 무뇌아적 페미니즘이 더 위험해요”라는 제목이 붙은 칼럼이었다. 항의가 빗발치자 칼럼니스트가 교체되고 사과문이 게재되었지만, 사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여성혐오 발언에 대한 분노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선언은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에서 “내가 메갈이다”까지 이어졌다.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부르기 망설이던 이들을 포함해, 무수히 많은 여성이 선언에 동참했다. 선언이란 단순히 대중 앞에서 의견을 표명하는 것이 아니라, 허공에 부유하는 언어들을 한데 모아 구체화하는 것이다.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라고 선언하는 순간, 머릿속으로만 무언가 잘못됐다고, 무언가 부당하다고 생각해왔던 것들이 폭발적으로 분출됐다. 그런 점에서 선언은 진짜 무기다.
『페미니즘 선언』은 1960~70년대 미국을 휩쓸었던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의 선언문 9편을 한데 엮은 것이다. 계속되는 베트남전쟁, 격렬한 반전 시위, 흑인민권운동 등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한 열기 속에서 발표된 이 선언문들은 성차별적인 사회를 거침없이 고발한다. 이 책은 시국선언이 그러하듯 급박한 정세 속에 발표된 글들이었기에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할 뿐만 아니라, 논쟁적이거나 강력한 글 위주로 실렸기 때문에 거친 표현까지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메갈리아’의 원조 격이라 말해도 좋겠다. 적어도 당분간은, 이보다 더 센 책을 마주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페미니즘 선언』은 여성단체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옮긴이가 각 선언문마다 당시 시대적 맥락이나 페미니스트 그룹을 소개하는 해제를 덧붙여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동시에 1960~70년대 미국의 ‘제2물결 페미니즘’과 2010년대 한국의 페미니스트들, 즉 ‘영 페미니스트’, ‘넷 페미니스트’, ‘메갈리안’ 등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리지만 모두 페미니스트인 이들을 잇는 발판을 마련해준다. 우리는 『페미니즘 선언』이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점검하며, 미래를 그릴 수 있는 상상력을 제공해주리라 믿는다.
Contents
추천사_ ‘선언’이라는 사건의 마술적인 힘
서문_ 선언이 우리가 될 때
레드스타킹 선언문
드센 년 선언문
강간 반대 선언문
미스 아메리카 대회를 멈춰라!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
레즈비언 페미니즘 선언문
전미여성협회 창립 선언문
흑인 페미니스트 선언문
남성거세결사단 선언문
페미니즘 운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