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여성 참정권 운동을 이끈 시민운동가. 1858년 맨체스터의 급진주의자 가정에서 태어났고, 여성 참정권 운동을 지지하는 변호사 리처드 팽크허스트를 남편으로 맞아들였으며, 세 딸과 함께 참정권 운동에 투신했다. 여성으로서 공적 능력을 증명해 보이라는 자유당의 요구에 따라 빈민구제위원회, 교육위원회 등 지자체에서 봉직하는 동안 남자들이 만든 세상의 비참함과 불행을 아프게 확인하고, 여성의 정치적 현실을 더욱 절감했다. 1903년에 여성사회정치연맹(WSPU)을 설립해 어느 정당에도 의지하지 않는 독자적인 운동을 펼치기 시작하며 ‘서프러제트’라는 명칭을 얻었다. 팽크허스트가 진두지휘한 서프러제트는 가두시위와 날 선 연설, 유리창 깨기, 방화, 단식 투쟁을 서슴지 않았고 구타, 체포, 투옥, 고문에도 움츠리지 않았다. 1918년 30세 이상의 영국 여성이 투표를 할 수 있게 되었고, 1928년 팽크허스트 사망 직후, 영국 정부는 투표권을 21세 이상의 모든 여성에게 확대했다.
영국의 여성 참정권 운동을 이끈 시민운동가. 1858년 맨체스터의 급진주의자 가정에서 태어났고, 여성 참정권 운동을 지지하는 변호사 리처드 팽크허스트를 남편으로 맞아들였으며, 세 딸과 함께 참정권 운동에 투신했다. 여성으로서 공적 능력을 증명해 보이라는 자유당의 요구에 따라 빈민구제위원회, 교육위원회 등 지자체에서 봉직하는 동안 남자들이 만든 세상의 비참함과 불행을 아프게 확인하고, 여성의 정치적 현실을 더욱 절감했다. 1903년에 여성사회정치연맹(WSPU)을 설립해 어느 정당에도 의지하지 않는 독자적인 운동을 펼치기 시작하며 ‘서프러제트’라는 명칭을 얻었다. 팽크허스트가 진두지휘한 서프러제트는 가두시위와 날 선 연설, 유리창 깨기, 방화, 단식 투쟁을 서슴지 않았고 구타, 체포, 투옥, 고문에도 움츠리지 않았다. 1918년 30세 이상의 영국 여성이 투표를 할 수 있게 되었고, 1928년 팽크허스트 사망 직후, 영국 정부는 투표권을 21세 이상의 모든 여성에게 확대했다.